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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기 칼럼] 당신의 가족은 안녕하십니까

그것을 보게 된 것은 실로 우연이었다. TV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다 마주친 한 방송 프로에 눈길이 꽂혀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나중에 VOD로 찾아 처음부터 다시 봤다. EBS가 지난주 방송한 이 2부작 다큐멘터리는 ‘가족 해체’라는 주제 아래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667번지. 이곳을 기억하고 계신가요? 여기에 아이들이 있습니다”고 시작하는 이 다큐는 “그들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가족은 안녕하냐고…”로 끝을 맺는다.

단원고 학생 희생자 학부모 96명의 증언을 모아 만든 이 다큐 속에는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삶이 적나라하게 묘사됐다.

아들을 잊지 못해 아이가 입던 티셔츠와 바지와 신발과 양말을 신은 채 합동분향소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아버지. 두 달 반 만에 진흙투성이로 되돌아온 딸의 여행가방 속에서 자신이 챙겨 줬던 옷과 멀미약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오열하는 어머니. 아들 책상 서랍에서 2030년에 개봉할 타임캡슐 편지를 발견하고 ‘사랑한다’는 아이의 편지 속 고백을 차마 끝까지 읽지 못하는 아버지….

외환위기의 자락에 태어나 초등학교 때 신종플루로, 중학교 때 조류인플루엔자로 수학여행이 취소되는 바람에 고교생이 돼서야 생애 첫 수학여행을 떠났지만 그게 마지막이 된 아이의 기막힌 사연도 소개된다.

이 다큐는 러닝타임 100분 내내 ‘말하지 말고 보여 주기(show, don’t tell)’라는 탐사 언론 피처스토리 작법을 충실하게 따른다. 특정한 의견을 제시하기보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자세히 보여 준다. 절제된 감정의 시선 속에 남은 가족들의 억제할 수 없는 분노와 좌절감에서 괜스러운 죄책감까지 담담하게 전달된다. 그들은 우리에게 아이를 잃은 것에서 끝나지 않고 남은 가족 전체가 흔들리고 있는 아픈 이야기를 내보여 주면서 ‘대한민국의 가족은 과연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말을 할 수 있을 때 가족들에게, 아이들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는 말을 해 주세요.” 이제 더 이상 아들에게 그런 말을 건넬 수 없으니 너무나 아프고 미안하다며 울부짖는 한 희생자 아버지의 애절한 부탁이다.

화면 속에서 이어지는 희생자 가족들의 사연들은 우리가 그동안 그들로부터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데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지금까지 언론에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대책위라는 이름 아래 분노에 찬 무서운 모습으로만 비쳤던 게 아닐까. 참사의 충격이 시간이 흐르며 퇴색해 가면서 그들은 피해자이기보다는 갈등의 당사자로 여겨져 왔을지도 모른다. 정상으로의 회귀를 위한 적응의 관점에선 세월호는 하루라도 빨리 잊어야 할 기억이었다.

하지만 희생자 가족들은 말한다. “그날 이전으로만 돌아갈 수 있게 해 달라. 세상은 변한 게 없는데, 우리 아이만 없는 세상을 살아야 하는 게 고통스럽다”고. 그 어떤 부모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바람이다. 그 하나하나의 흐느낌이 통곡처럼 들려오는 장면을 보며 그들에게 ‘이제 그만 잊자’는 말은 쉽사리 꺼낼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그날 아이들이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에 대해 우리 사회는 아직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혹여 유병언의 죽음과 이준석 선장의 징역형이라는 그림자 뒤에 숨어 책임을 마무리해 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 실종자 수색도 중단되고, 진도 팽목항의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도 철수했다. 다들 하루빨리 4월 16일 이후의 ‘비정상’에서 일상의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들 말한다.

23일로 세월호 참사 222일째가 된다.

그날 별이 된 아이들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 사회는 이제 안전한가요? 이제 우리가 그들에게 진정으로 응답해야 할 때다.


홍병기 기획 에디터 klaat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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