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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섭의 시대공감] ‘창업’에 대한 환상이 불러온 비극

한국 경제는 지금 지루한 저성장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언제 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을지 막막하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드러나는 몇 가지 수치들은 우리 마음을 더 암울하게 한다.

2010년 말 94조원이었던 자영업자 대출이 올해 10월 말까지 약 4년 동안에 40조원이나 늘었다. 이 기간에 대기업 대출 증가액은 29조원에 불과했다. 중소기업 대출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자영업자 대출은 지금 중소기업 대출액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고 앞으로 더 많아지는 건 시간문제다. 금융권 입장에서 보면 돈 떼일 가능성이 큰 부문의 대출이 가장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영업자 대출 급증에는 오래 지속되고 있는 내수 부진이 한 원인으로 꼽힌다. 경쟁은 심해지는데 내수가 침체되니까 매출이 줄어들고 할 수 없이 빚으로 연명하는 업체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왜 우리 주변에 이렇게 자영업자들이 많아졌는가?

자영업 급증의 분기점은 1997~98년 한국 금융위기 때의 정리해고와 기업 구조조정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직장을 잃게 된 중·장년층이 창업의 길로 많이 나섰다. 직장 내에서 성공과 안정을 이루는 것이 어렵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청년들도 취직보다는 창업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정부도 창업을 미화하고 부추겼다. 한국 경제는 그동안 너무 대기업 위주로 성장했기 때문에 구조적인 문제에 부딪혔고 미국의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처럼 창업의 길로 나가는 유능한 젊은이들이 많아져야만 경제의 활력이 회복된다는 진단이 따라붙었다. 벤처기업 육성정책이 ‘과감하게’ 펼쳐졌고 대학과 지방자치단체에 수많은 창업지원센터가 만들어졌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니까 정부에서 청년 창업을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는 얘기들도 쉽게 나왔다.

그러나 경제 문제는 투입 대비 산출로 따져야 하고, 정책은 그에 따라 우선순위를 잘 설정해야 한다. 상식선에서 살펴보자. 흔히 “벤처기업은 10개 중 1개가 성공하면 성공”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뒤집으면 창업은 아무리 잘돼도 90%가 성공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창업 자체는 상대적으로 쉽다. 성공하지 못한 90%에 들어가더라도 “창업을 해봤다” “평균만큼은 했다”고 스스로 자위할 수 있다. 국민 세금을 여기에 넣더라도 “실패를 교훈 삼아 성공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데 투자한 것”이라고 합리화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실패라는 멍에를 걸머지게 되고 사회적 낭비가 벌어지는가.

실제로 성공의 길은 항상 좁다. 그리고 성공한 소수의 기업들이 비약적으로 크면서 경제성장을 이끌어간다. 그렇다면 창업을 해보는 것보다 성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잘 따져보고 행동하는 것이 개인의 행복을 위해 훨씬 중요하다. 사회적으로도 창업을 지원하기보다 만들어진 기업들이 잘 성장할 수 있는 분위기와 틀을 만드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기업가 정신을 오래 연구한 대니얼 아이젠버그 하버드대 교수는 그래서 “창업은 아이를 낳는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아이를 잘 키우는 일”이라며 기업 정책의 초점을 ‘창업(start-up)’보다는 ‘성장(scale-up)’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샐러리맨의 신화’를 일구었던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도 같은 생각을 했다. 본인은 회사생활 5년 만에 창업했지만 지금 베트남에서 키우고 있는 청년 사업가들에게는 10년 후에 창업하라고 권고한다. 평균수명이 늘어났으니까 10년 동안 충분히 경험을 쌓고 인간관계도 만든 뒤 창업을 해도 늦지 않고, 또 그래야 실패 확률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동안 창업에 대한 지원이 사회보장 대책과 혼재돼 있었던 것 같다. “약자에게 기회를 준다”든지 “청년에게 취업 이외의 대안을 제공한다”는 등의 목표가 경제논리와 뒤섞였다. 경제논리로 따지면 창업 성공은 극도로 불균등한 과정이다. 수많은 실패를 뒤로하고 소수의 성공이 이루어진다. 실패하는 사람들을 많이 지원한다고 해서 성공이 많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하는 사람들을 잘 솎아내야 사회적 낭비가 줄어든다.

창업 정신은 물론 중요하다. 도전적인 창업가가 계속 나와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성공하는 기업인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다. 기업 투자가 전반적으로 부진한 가운데 자영업자 대출이 제일 빠르게 늘어나는 것은 한국 경제가 뭔가 거꾸로 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창업에 대한 환상이 불러온 비극을 지금 아프게 체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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