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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외면한 ‘아날로그 검찰’ 감청 해석도 ‘아날로그’ 미·유럽, 새 기술 나오면 사회 합의 거쳐 법적용

“피고인이 ‘클라우드(cloud·인터넷으로 접속하는 저장공간)’에서 삭제한 데이터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돼 있었나요?”(재판장)
“대상기간 안에 저장된 데이터는 모두 제공했습니다.”(A클라우드업체 직원)

카카오톡 감청 논란 2라운드

“삭제된 데이터까지 포함한다는 표현이 영장에 나옵니까?”(재판장)
“대상기간 내의 데이터이기 때문에 포함된다고 판단했습니다.”(A클라우드업체 직원)

최근 법정에서 재판장과 증인으로 나온 클라우드업체 직원 사이에 실제 오간 대화다. 수사기관이 위탁집행한 압수수색영장에는 대상기간이 특정돼 있었지만 삭제한 것까지 포함하는지는 명시되지 않았다. 이날 재판장은 삭제 후 복원한 데이터를 증거로 인정할지 판단하지 못했다.

카카오톡 감청 문제도 마찬가지다. 전통적 감청은 실시간 대화를 ‘합법적으로 엿듣는’ 것이었지만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실시간으로 가로채는 것은 현재 기술론 불가능하다. 이미 송수신이 완료돼 데이터 형태로 저장된 대화 내용은 감청영장의 대상이 될까.

법이, 그리고 법을 집행하는 국가기관이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사례는 카카오톡 감청 논란과 직결된다.

검찰 “기존 법으로 카톡 감청 적법”
현행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은 위탁집행 규정(9조)을 두고 있다. 수사기관은 통신제한조치(감청) 영장의 집행을 관련 기관에 위탁 요청할 수 있고 기관은 협조할 의무가 있다. 다음카카오는 3~7일 단위로 저장된 대화 내용을 모아 수사기관에 전달하는 방식의 위탁집행에 더 이상 협조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태다.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2012년 대법원 판례가 근거다.

문자메시지 발송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A씨는 2009년 서버관리 프로그램이 해킹당해 광고 문자메시지가 대량 발송되자 자신이 보낸 게 아니란 걸 확인하기 위해 서버에 보관된 문자메시지 2만8811건을 복사해 열람했다가 기소됐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은 무죄였다. 통비법상 ‘감청’이란 전기통신의 송수신과 동시에 이뤄지는 경우만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미 수신이 완료된 통신 내용을 지득하는 행위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검찰은 카카오톡 영장집행에 이 판례를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대검 관계자는 “유선전화 시대에도 감청영장을 위탁집행할 때에는 중계기에 녹음기를 설치한 뒤 시차를 두고 확인하는 형태였다”며 “대법원 판례는 저장된 자료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열람한 것이지만 서버에 저장된 카카오톡 대화를 약간의 시차를 두고 확인하는 것은 감청에 해당된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감청이라는 게 송수신이 이뤄지는 순간 가로채는 것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통비법 개정 과정을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1990년대까지 협조공문을 통해 통신제한조치나 통신사실확인자료를 받던 것이 해당 지검장의 승인을 받도록 바뀌었고, 이후 법원의 영장을 받는 것으로 개정된 건 디지털 프라이버시권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중대범죄에 국한돼 있는 감청 범위를 축소한다면 압수수색영장으로 확보할 수 있는 통신 내용의 범위가 넓어져 국민의 권리가 더 침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디지털 증거에서 범죄 관련만 추려야”
통신법 전문가인 오길영 신경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행법으로 카카오톡 감청영장 집행이 가능하다고 쳐도 범죄혐의와 무관한 사람의 정보를 어떻게 가려낼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술 발달과 법 사이의 괴리를 앞서 경험한 나라들은 전혀 다른 접근법을 취했다. 미국 연방 9순회항소법원 알렉스 코진스키 수석판사가 2009년 내세운 원칙이 대표적이다.

당시 미 연방수사국(FBI)은 메이저리그 스타 배리 본즈가 연루된 발코연구소의 금지약물 사건을 조사하면서 캘리포니아의 연구실 컴퓨터를 압수수색했다. 표적으로 삼았던 10명의 명단 외에 104명에 달하는 선수의 도핑 테스트 결과가 나오면서 논란이 됐다. 메이저리그 선수노조는 “목적 외 명단을 입수하거나 유출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소송을 냈다.

코진스키 수석판사는 선수노조의 손을 들어 줬다. 그가 내세웠던 원칙은 디지털 증거에 있어 ‘플레인 뷰(plain view)’ 원칙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영장에 적시되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보게 된’ 범죄증거는 법정 증거로 허용하는데 이것이 플레인 뷰 원칙이다. 하지만 디지털 증거에 있어 플레인 뷰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게 코진스키 수석판사의 판단이었다.

코진스키 수석판사는 “수정헌법 4조의 정신은 ‘프라이버시에 대한 합리적인 기대(Reasonable Expectation of Privacy)’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디지털 증거의 경우 아날로그 증거와 달리 무한대의 프라이버시 사항이 혼재될 수 있어 무차별적 영장이 발부돼선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혐의 관련성(probable cause)이 없는 것이 발견되면 즉시 열람을 멈추고 ▶마땅한 프로토콜(절차)에 따라 분리해야 하며 ▶수사 담당자(case agent)가 아닌 컴퓨터 전문가(computer personnel)에 의해 분리돼야 한다는 원칙도 제시했다.

오길영 교수는 “미국은 더 큰 보호법익이 존재할 때에 개인의 인권을 무차별적으로 제한하기도 하지만 기술 발달에 따라 기존 법이 규율할 수 없는 영역이 생기면 사회적 논의를 거쳐 법 또는 법 적용의 개선을 강구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다르다”고 말했다.

범죄혐의와 관련 없는 이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싹쓸이식’ 감청·압수수색 외에도 우리 법엔 허점이 많다. 위치정보 문제가 대표적이다.

통신업체들은 통신사실확인자료라는 이름으로 매년 2500만 개가 넘는 전화번호를 수사기관에 제공한다. 문제는 상당수가 기지국 위치정보라는 점이다. 현행 통비법에 따르면 통신사실확인자료에는 ‘정보통신망에 접속된 정보통신기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발신기지국의 위치추적자료’가 포함된다.

내가 통화하지 않아도 기지국과 휴대전화 단말기 사이의 기계적 교신으로 내 위치는 통신사 기록에 남는다. 이 정보가 수사기관에 제공되는 것이다. 검찰은 “디지털 시대의 통신은 언제, 어디서 주고받는지 포괄하는 개념”이라며 “당시 위치정보법 논의와 맞물려 기술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외국 사례를 보면 검찰의 설명은 옹색해진다.

독일 헌재 “기계적 교신은 통신 아니다”
미국은 1791년 수정헌법 4조 제정 이후 200년 넘게 법을 고쳐 왔다. 프라이버시 보호대상도 애초 사적인 공간인 장소 개념에서 사람까지 확대했다. 기술 발달에 따른 법 적용대상도 명확히 했다. 통신과 관련한 것은 ‘전자통신프라이버시법(ECPA)’으로, 접속정보 등 위치추적에 관한 것은 ‘펜트랩법(Pen/Trap Provision)이 규율한다. ECPA는 다시 감청법(Wiretap Act)과 저장통신법(SCA)으로 나뉜다.

유럽도 기술 발달에 따라 오랫동안 새로운 법리를 개발해 왔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2006년 “기지국과 휴대전화 단말기의 기계적 교신은 통신이 아니다”고 판단했다. 지난 4월에는 유럽사법재판소가 2006년 유럽연합(EU)이 제정한 통신사업자의 이용자 식별 가능한 데이터 보관지침을 프라이버시권 침해란 이유로 무효화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술 발달과 국민의식 변화로 권리보호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 때마다 검찰은 마지못해 따라갔을 뿐 적극적으로 호응한 적이 없다”며 “국가 안보와 관련됐거나 중대범죄 수사를 하려면 법을 고쳐야지, 검찰이 자의적으로 해석해 적용하는 건 견강부회”라고 지적했다.

21일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해 논란이 재점화된 ‘전기통신사업자의 감청설비 의무화’ 법제도 외국의 접근방식은 다르다.

미국은 94년 ‘법 집행을 위한 통신지원법(CALEA)’을 만들었다. 영국도 2000년 ‘수사권규율법(Regulation of Investigatory Powers Act)’으로 통신사업자의 감청설비 의무화를 법제했다. 호주와 독일, 네덜란드에도 비슷한 법이 있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감청과 관련해 오랜 사회적 합의를 이뤄 왔다는 점이 다르다. 감청영장의 발부기준과 대상도 엄격하다. 법을 만든 건 국제 테러수사의 효율성을 높이고 사업자와 수사기관 사이의 원활한 협조를 위해서다.

이들 나라에서도 부작용은 끊이지 않는다. 영국은 수사권규율법 제정 이후 거의 매년 오용사례가 발생했다. 2008년에는 영국 남서부 풀(Poole) 지역 공무원이 유리한 학군 배정을 받기 위해 수사권규율법을 이용했다가 논란을 빚었다.

오길영 교수는 “주요 수사를 위한 감청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를 위해 통신사업자의 감청설비 의무화를 검토할 순 있다”면서도 “무분별한 감청영장 발부, 싹쓸이 영장 등 충분한 통제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감청설비 의무화를 추진하는 건 마치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에 엉터리 튜닝으로 출력만 높인 엔진을 싣는 것처럼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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