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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盤上)의 향기] 한판 바둑 며칠 이어질 땐 ‘봉수’로 컨닝 바둑 봉쇄

대국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시간 계산, 기록, 사물 정리, 입회인 등…. 사진은 1964년 일본 제3기 명인전 도전기 종국 장면. 정면이 사카다 명인이다. [사진 일본기원]
점심이 사라졌다. 요즘 세계대회에 가면 만나는 풍경이다. 삼성화재배는 2010년부터, LG배는 올해부터 점심시간을 없앴다.

<15> 훈수의 세계

왜 그런가. 프로에게 훈수(訓手)는 쉽다. 가벼운 표정만으로도 귀띔해 줄 수 있다. 동료와 함께하는 점심이 의심을 사는 이유다. 그래서 점심을 없애는 대신 대국장 한쪽에 과자와 과일과 같은 간식을 준비해 두기로 했다.

초읽기에서의 화장실 사용도 같은 맥락의 문제다. 남은 시간 10초인데 화장실에 가야 할 때가 없지 않다. 생리적인 문제지만 손까지 씻고 오면 짧아야 1~2분이다. 수읽기에 충분한 시간이라 상대는 불쾌하다. 요컨대 훈수의 문제다.

두 대국자 같은 숙소서 외부 접촉 차단
1938년 6월 26일~12월 4일. 한 판의 바둑이 6개월에 걸쳐 완성됐다. 혼인보(本因坊) 슈사이(秀哉·1874~1940) 명인의 은퇴 기념기. 상대는 기타니 미노루(木谷實·1909~75) 7단. 1968년 노벨 문학상을 받는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1899~1972)가 관전기를 도쿄 니치니치(東京日日) 신문과 오사카 마이니치(大阪每日) 신문에 게재해 공전의 관심을 끌었다. 가와바타는 이 대국을 소재로 소설 『명인(名人)』을 펴냈다. 메마른 터치로 그려진 승부와 승부사의 세계.

하코네(箱根) 나라야료칸(奈良屋旅館)의 대국장.
도쿄 시바구(芝區) 고요칸(紅葉館·회원제 고급 요정)에서 흑1과 백2를 두고, 하코네(箱根) 나라야료칸(奈良屋旅館)에서 다음 수를 진행하는 등 대국장을 세 번 옮겼다. 제한시간 각 40시간에 봉수(封手·대국을 잠시 중단하는 것)가 15회였다. 소위 통조림 대국이었다. 1940년대 이후 이틀 또는 사흘에 한 판 두는 도전기에서 대국자는 대국 날 같은 여관이나 호텔에서 묵는다. 동료와의 접촉도 제한되는데 이를 일러 통조림 대국이라 불렀다.

담합은 인간의 속성이다. 일본기원에서도 담합은 있었다. 대국료를 많이 타기 위해 일부러 빅을 연속해 세 번 만든 경우도 있었다. 세 판 두면 대국료를 세 번 받는다.

야마베 도시로(山部俊郞·1926~2000) 9단은 5단이던 1950년 12월 24~25일의 승단대회에서 411수까지 가는 긴 바둑을 두어 진기록을 세웠는데 기록된 패만 본다 하더라도 눈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당연히 의문이 있었다. 장국(長局)을 의식해 일부러 패를 즐겨 한 거 아니냐?

기보 백1이 의심을 받은 묘수.
1933년 10월 16일~1934년 1월 29일 ‘3三·화점·천원의 바둑’으로 알려진 슈사이 명인과 우칭위안(吳淸源·100) 5단의 대국이 있었다. 명인의 환갑을 기념한 대국으로 제한시간은 각 24시간. 첫날 가지바시료칸(鍛冶橋旅館)에서 대국을 시작하자마자 명인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바깥도 소란스러워졌다. 우 5단이 파천황의 실험을 했기 때문이다. 우 5단은 흑1을 화점, 흑3을 3三, 흑5를 천원에 두었다. 3三은 일본 바둑 300년의 터부(taboo)였다. 중반 흑이 약간 우세할 때 명인의 묘수가 터졌다. <기보>를 보자. 백1(실전 백162)이 묘수로 흑2는 최선의 응수. 묘수의 힘으로 명인은 2집을 남겼다.

그런데 묘수에 대해서는 명인의 제자 마에다 노부아키(前田陳爾·1907~75)가 발견했다는 설이 당시 파다했다. 제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스승의 바둑을 연구했기에 어떤 식으로든 말은 명인에게 들어갔을 것 아닌가. 그런 의심이 대국장 안팎에 떠다녔다.

가문의 비수 총동원된 토혈지국
1835년의 토혈지국(吐血之局)은 지난번 글에서 본 바다. 이런 판은 가문의 흥망이 걸린 것이라 숨겨둔 비수(秘手)를 총동원해야만 한다. 초반에 이노우에(井上) 가문의 비수가 나왔다. 큰 승부를 대비해 깊이 연구해 둔 것이었다. 조와(丈和·1787~1847)는 낯선 수를 만나 크게 당황했고 초반 비세(非勢)의 원인이 되었다.

혼인보 도사쿠(道策·1645~1702)의 이야기도 보자. 1668년 혼인보와 야스이(安井) 가문 간에 명인 자리를 둘러싼 쟁기(爭碁)가 일어나 10월 20일 야스이 산지(安井算知·1617~1703)와 도에쓰(道悅·1636~1727)가 60국 쟁기 제1국을 두었다. 1670년 제20국이 끝났을 때 도에쓰가 12승4패4빅으로 앞섰다. 산지는 승부를 멈추고 은퇴했다. 재미있는 것은 포석의 변화다. 도에쓰는 12국부터 제자인 도사쿠가 창안한 포석을 들고 나왔다. 제자와 연구한 것이다. 도사쿠는 ‘실력 13단’이라 불린 기사로 일본 바둑 300년의 터전을 닦은 인물이다. 도사쿠의 포석은 이제는 현대 바둑의 기초이기도 한데 당시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스포츠 대접 받게 되자 공정성에 초점
20세기 초까지 일본에서 승부는 권위 속의 승부였다. 대표적인 것이 봉수(封手) 제도. 두다가 상수(上手)가 “오늘은 여기서 멈추지”라고 말하면 일어서야만 했다.

토혈국(吐血局)과 이적지국(耳赤之局)을 보자. 토혈국엔 다음 기록이 남아 있다. 1835년 7월 19일 59까지 두었다. 21일 99까지. 24일 172에서 멈췄다. 27일 246까지 두고 종국했다. 이적지국은 다음과 같다. 1846년 7월 20일 89까지 두다. 23일 141에서 멈추다. 25일 325 끝수까지 끝장을 봤다. 초점은 홀수일 때 중단됐다는 점이다. 홀수는 흑의 착수. 토혈국에서 아카보시 인테쓰(赤星因徹·1810~35)가 흑59를 놓자 조와(丈和·1787~1847)가 “오늘은 이만 두지”라고 말하고 일어섰던 것이다.

의문이 있다. 24일엔 172, 즉 백 172가 끝인데? 그렇긴 하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승부가 끝난 뒤였다. 조와가 인심을 쓴 거다. 이미 반상에 돌이 놓인 후 대국을 중단하면 의도는 환히 드러난다. 상대는 집에 돌아가 가문과 함께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1932년 2월 요미우리신문 10인발(人拔·연승전)에서 우칭위안은 10연승을 했다. 11번째 대국자로 나선 스즈키 다메지로(鈴木爲次郎·1883~1960)7단은 각자 16시간 나흘에 걸친 대국에서 우 소년을 집으로 불러 두기도 했다. 나흘째 기록계에게 시간을 물었다. “남은 시간은 1시간 반입니다.” 노발대발했다. “이런 바둑을 1시간 반으로 어떻게 두란 말이냐!” 부랴부랴 시간을 18시간으로 연장했다. 소비시간은 흑 10시간 37분, 백 17시간 33분. 우 소년은 지쳤고 11연승은 실패했다.

1924년 일본기원이 세워진 이후에도 한참 지나서야 비로소 자의적인 봉수는 사라졌다. 이틀 둘 때 첫날 오후 4시를 봉수 시간으로 했다고 하자. 그러면 4시가 왔을 때 둘 차례가 된 대국자가 봉수를 한다. 그는 1시간이든 2시간이든 필요한 만큼 생각해 다음 수를 결정하고 기보 용지에 기록한다. 그러곤 봉(封)한다. 다음 날 입회인이 금고에 넣어둔 봉투를 열어서 확인하고 대국을 재개했다.

1968년 일본기원이 자부심을 갖고 펴낸 방대한 책 『위기백년(囲碁百年)』(平凡社)의 제3권은 사카다(坂田榮男·1920~2010) 9단이 편찬했는데, 부제(副題)를 ‘실력주의의 시대’라고 붙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한국의 경우 1965년 국수전 도전기는 제한시간이 5시간이었다. 하지만 2007년 왕위전 도전기는 각 2시간이었고 요즘엔 1~2시간이 보통이다. 봉수는 없었다. 점심엔 계시기를 눌러 시간을 정지시키고 식사 후 다시 두었다. 서울 운니동 운당여관에서 둘 때엔 점심을 주변 한식집에 미리 주문해두곤 했다.

세상은 그랬는데 왜 요즘 갑자기 점심시간이 사라졌을까. 먼저 세계대회가 많아졌다. 88년 후지쓰배, 89년 응씨배 이후 많아진 세계대회는 국가대항전 양상을 띠게 되었다. 시간도 짧아졌으며 바둑의 정체성도 기예(技藝)에서 스포츠로 이동하고 있다. 모든 것은 하나로 모아진다. 점심과 화장실 문제를 조정해 공정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바둑의 철학성 해치는 부작용도
인간은 경계(境界)가 필요한 존재다. 지나치게 투명하면 자신이 사라져 투명인간이 된다. 문제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인간인 한.

맑은 것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분석심리학에서 말하는 그림자가 자라난다. 인도가 좋은 예다. 종교적 문화가 지나쳐 거짓말이 횡행한다. 바라나시(varanasi) 갠지스 강 가트(gart)에서 목욕은 하지만 강물은 정화(淨化)시켜 주지 않는다. 오탁(汚濁)을 키울 뿐이다. 잠깐의 정화는 자기 자신은 보지 못한 채 타인의 불결만 엿보게 한다.

최근 바둑에서 공정성이 강조되고 있다. 조심해야 한다. 인도의 경우에서 보듯, 맑은 것이 강제되면 대국자는 자신도 모르게 어두운 부분에 손댈 수 있다. 투명해진 대국자는 사라진 경계 때문에 무의식에 휩쓸리기 쉽다. 바둑에서 철학이 사라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도 그에 있다. 철학은 모호한 경계를 갖고 노는 것. 반상은 본래 경계가 모호하다. ‘바둑’은 ‘세상’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상대적인 게 뒤섞인 것을 말한다.

어쨌든 초점은 ‘나’ 자신이다. 시합은 공정하게 하되 세상은 대충 사는 게 좋다. 몸과 마음에 모두 좋다.



문용직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 한국기원 전문기사 5단. 1983년 전문기사 입단. 88년 제3기 프로 신왕전에서 우승, 제5기 박카스배에서 준우승했다. 94년 서울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바둑의 발견』 『주역의 발견』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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