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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바이올린 위 손 움직임 소리마저 좋은 래빈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마이클 래빈(1936~72). 대단한 기교파였는데 35세에 요절했다. [중앙포토]
요 일주일간은 꿈에서 들은 음악 하나에 푹 빠져 있다. 카를 엥엘의 가곡 ‘Sea-Shell(조가비)’이다. 이런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다. “조가비야, 조가비야. 노래를 불러 주렴, 부디. 배들의, 선원들의, 새들의, 열대나무들의…” 사실 이 노래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카를 엥엘이라는 피아니스트가 작곡을 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으니. 나도 이 곡 말고 다른 그의 곡들은 잘 모른다. 그런데 내 꿈에 나온 곡은 이 원곡은 아니다. 바이올리니스트 마이클 래빈의 소품집, 어쩌면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고도 할 수 있는 그 음반에 들어 있는 버전으로, 에프렘 짐발리스트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해 편곡한 것이다.

내 곁의 음악 ①

맨 처음, 피아노가 시작하는 음은 ‘F#(파샵)’, 바로 다음 음은 한 옥타브 아래 ‘자연음 F(파)’,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이 두 음을 몇 번 오가던 음들이 곧 바닷물처럼 퍼지며 화음 몇 개로 번진다. 이어서 래빈이 첫 음을 켜는데, 하… 지난달 바이올린에 관한 칼럼을 쓰느라 하이페츠·밀스타인·오이스트라흐·코간 등을 무더기로 들으며 오랜만에 심장이 밥 먹는 것 같은 행복감에 몸을 떨었지만, 역시 내 단 하나의 사랑은 언제까지나 래빈일 것 같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1절이 끝나고 같은 멜로디를 한 옥타브 위에서 장식음들로 변주하다 말고 후렴구 직전, 슬라이딩하며 옥타브 아래로 내려오는데 자세히 들으면 지판을 끄끄끄끅, 미끄러져 내려오는 그의 손가락 움직임이 다 들린다. 요새 녹음 같았으면 빵빵하게 채워 넣은 에코 덕에 듣지 못했을 소린데. 아, 나는 왜 이렇게 늦게 태어난 걸까.

2주 전엔 미국에서 만난 친구 덕에 그가 요새 한창 꽂혀 있다는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과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원 없이 들었다. 내 생각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중 대부분이 둘 중 하나다. 교향곡을 자주 듣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 친구는 전자, 나는 후자다. 나는 실은 교향곡에 큰 열정이 없다. 같은 시간이 주어진다면 대신 실내악이나 협주곡을 듣는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물론 제일 좋아하는 교향곡은 있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제9번 C장조 ‘더 그레이트(The Great)’ 도이치번호 944다. A단조인 2악장을 들으면 어느 순간부터 앞이 안 보이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단조이던 곡이 발전부에 가서 장조가 되면 그때야 비로소 슬프다는 느낌이 온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막막한 기분을 제일 잘 전해 주는 것 같은 클라우스 텐슈테트 지휘,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1984년작을 제일 좋아했는데 이제는 카를 뵘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의 64년 녹음처럼 시작부터 이미 살짝 청승맞은 것도 좋다.

중앙포토
슈베르트라 하니, 쓰고 싶은 곡이 너무 많다. 내가 처음 제대로 빠진 슈베르트의 기악곡은 아마도 피아노 소나타 B플랫장조 도이치번호 960이 아니었나 싶다. 이 곡이야 워낙 명곡이니 나 한 명쯤 더 좋아하는 게 특별하지도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근 몇 년 사이 내가 제일 좋아하게 된 ‘네 손을 위한 헝가리풍의 디베르티스망 도이치번호 818’은 영 알려지지가 않았다. 지인께 선물받은 릴리 크라우스(작은 사진)와 호메로 드 마갈헤스 연주의 이 곡 음반을 처음 틀었던 그때, 나는 하노버의 우리 집에 있었는데 하던 일은 음악 때문에 강제로 멈춰야 했고 창밖을 바라보니 하늘색이 선명했다. 그 계절에 여기선 잘 볼 수 없는 광경이어서였는지 어쩌면 음악이 지어낸 색깔 같기도 하다는 헛생각을 했다. 곧 음악 얘기를 늘 공유하는 친구에게 엄청난 음악 하나를 발견했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말을 꺼냈더니 그 친구 왈, “어머, 나 그 곡 악보도 읽은 적 있는데, 그게?!” 그래서 나도 한 번 악보를 찾아봤다. 역시 그 친구 말이 맞았다. 이렇게 단순할 수가,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곡일 수가.

단순해서, 아무것도 아니어서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단순하지도 않고, 아무것도 아닌 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다만 크라우스와 드 마갈헤스 이 두 사람이 미쳤다는 건 확실하다. 크라우스는 한 음 한 음에 가사가 붙어 있는 것처럼 피아노를 친다. 나는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라는 미사여구를 별로 안 좋아한다. 쟁반에 뭐를 굴리든 어차피 의미도 없는 소음인데다 은과 옥이 만난다는 게 딱히 따스한 느낌은 아니라서. 그런데 크라우스 여사께는 이것 말고 다른 표현이 달리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좀 더, 더 고귀하고도 소중한 표현은 없을까. 순백자에 진주알 정도로 해야 하나. 모르겠다. 백자엔 미안하지만 그것도 좀 모자랄 것 같아서.

사실, 진작부터 ‘내 인생의 음악’ 을 쓰고 싶었다. 자연스럽고 개인적이면서도 확실한 매개채 - 즉 특정 음악이나 연주를 가지고 소통할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지만, 잘 안 됐다. 그것은 괴상한 사고에 사로잡힌 탓이었다. 무슨 말이냐면… 한 곡 한 곡 무지무지 잘 선정해야 된다는 강박관념 내지는 이 곡은 쓰고 저 곡은 안 쓰면 저 곡은 서운해서 어쩐다지 하는 덜떨어진 감상주의 또는 이 곡, 이래 놓고 내가 먼저 싫증나버리면 어쩌나 하는 어쭙잖은 책임감 같은 것도 발동했다. 연주 프로그램 짜는 것도 아닌데 뭘 이리 복잡하게 생각하는지, 괜한 걱정은 걷어치우고 이 즈음에서 한번 써보기로 한다. 다만 아직 ‘인생’은 조금 겁나니 내 ‘곁’의 음악정도로.


손열음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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