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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칼럼] 한국, 복지국가 확대로 불평등 줄여야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1960년대부터 90년대 중반 사이에 우리나라는 두 가지 경제 ‘기적’을 이루었다.



 그 기적 중 잘 알려진 것은 고도성장이다. 60년대 초반까지 1인당 국민소득이 가나의 절반도 안 되던 나라가 1인당 기준으로 연간 6~7%씩 30여 년을 성장해 한 세대 만에 말석이나마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한 것이다.



 현재 중국도 유사한 고성장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기정사실이라고 할 수 없으니 한 세대 만에 선진국이 된 것은 아직까지는 한국 외에는 일본·대만·홍콩·싱가포르 등 네 나라만이 이룬 ‘기적’이다.



 고도성장보다 덜 알려진 ‘기적’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소득불평등이 악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7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던 사이먼 쿠즈네츠(Simon Kuznets) 교수는 ‘경제성장 초기에는 소득불평등도가 증가하고 어느 정도 발전을 이뤄야 그것이 떨어진다’는 소위 쿠즈네츠의 가설을 제창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까지 산업화를 이룬 거의 모든 선진국이 겪은 경제발전 경험에 기초한 가설로 이름은 ‘가설’이었지만 70년대까지만 해도 ‘철칙’으로 생각되던 것이었다.



 고도성장의 기적을 이룬 나라 중에서도 홍콩·싱가포르는 경제성장과 함께 소득분배의 악화를 겪었다. 그러나 일본·한국·대만 세 나라는 고도성장 속에서도 소득분배의 악화를 막았다.



 한국이 소득분배의 기적을 이룬 것은 다른 선진국처럼 높은 세금과 대규모 복지 지출을 통해 소득을 재분배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부 규제와 기업 관행을 통해 시장의 작동을 억제해 소득격차가 나는 것을 원천 봉쇄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토지개혁과 농업에 대한 보호무역을 통해 소농을 보호했고 유통업에 대기업의 진입을 규제해 소상인들을 보호했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경영자와 노동자의 보수 격차도 상대적으로 작았다.



 그러나 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소득분배는 눈에 띄게 악화됐다. 시장이 개방되고 규제가 완화되면서 기업의 행태가 변했기 때문이다. 농업에 대한 보호무역이 점차 약화되면서 소농들이 점점 궁지에 몰리게 되었고 소매업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소상인들이 도태되기 시작했다. 자본시장 개방과 함께 미국식 기업문화가 유입되면서 노동자 보수 대비 경영자 보수도 (아직 국제기준으로는 낮은 편이지만) 급격히 올랐다. 그 결과는 소득분배의 악화였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원천적인 불평등이 낮은 나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의하면 조세와 복지지출을 통한 소득재분배 이전에는 OECD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가 한국이다. 우리나라의 ‘원천적’ 소득분배의 지니(Gini)계수는 2011년 기준 0.342로(지니계수가 1이면 완전 불평등, 0이면 완전 평등이다) 스위스(0.368)만 그와 비슷할 뿐 다른 나라들은 상대가 안 된다(스위스 다음으로 낮은 나라가 아이슬란드로 0.406이고 가장 높은 나라는 0.555를 기록한 그리스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복지가 취약하다 보니 소득재분배를 거친 후에는 OECD 34개 회원국 중 불평등도 19위로 평균 이하의 나라가 된다. 다른 나라들이 복지제도를 통해 엄청나게 재분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는 원천적 불평등의 지니계수가 0.512로 미국의 0.508보다도 높지만 재분배 이후 최종적 지니계수는 0.293으로 미국(최종 지니계수 0.389)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0.311)보다도 더 평등한 나라가 된다(주목할 점은 미국도 지니계수를 0.508에서 0.389로 크게 줄일 정도로 엄청나게 소득재분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문제는 이렇게 복지제도를 통한 재분배가 취약한 가운데 원천적 불평등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점차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각종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경제가 계속 개방되고 있고 국내시장의 규제가 점점 완화되고 있으며 기업문화도 점차 미국식 ‘승자독식’의 문화로 바뀌는 추세다. 복지제도를 통한 재분배가 강화되지 않는다면 불평등 문제가 점차 더 악화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불평등이 너무 높아지면 갈등이 심해져 살기에 좋지 않은 사회가 된다. 높은 불평등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어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악화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많이 나오고 있다. 또 높은 불평등은 계층이동을 정체시키고, 그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시장을 억제해 불평등을 줄이는 과거의 모델이 붕괴되고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복지국가 확대를 통해 불평등을 줄이는 새로운 모델로 이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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