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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로마서 디트로이트까지 … ‘폐허’ 거닐며 위안 받다

사막에선 비바람을 제외하면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저자는 지구 곳곳의 폐허를 돌며 자신 안의 황폐한 내면과 만난다. [사진 웅진지식하우스]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제프 다이어 지음

김현우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304쪽, 1만3800원




말랑말랑한 여행 수기로 생각하고 책장을 넘겼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여행산문집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사실 기행문과 철학 에세이, 소설 그 어딘가에 걸쳐있는 묘한 책이다. 매사에 냉소적이던 중년의 남성 작가가 세계를 정처 없이 떠돌다 길어 올린 절절한 사유의 결과물이랄까.



 영국 출신의 논픽션 작가이자 소설가인 제프 다이어(56)는 국내에선 재즈 에세이 『그러나 아름다운』, 사진비평집 『지속의 순간들』로 알려졌다. 이번 책은 그가 40대였던 2003년 출간한 것이다.



 저자는 서두에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은 내 삶의 특정 시기에 겪었던 몇몇 풍경에 대한 조각난,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지도다.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지만, 그 중 몇몇은 내 머릿속에서만 일어났다.’ 그러니까 명확한 목적의식을 갖고 기승전결을 고려해 쓴 것이 아니라, 바람 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 서술 했다.



제프 다이어
 여행을 시작할 때 저자의 마음은 무척 황량했던 것 같다. 그는 ‘목적도 방향도 없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20~30대 때 보다 훨씬 적게 생각하며, 스스로 빠른 속도로 폐허가 되어가고 있다’(32쪽)고 말한다. 공허한 눈빛, 무기력한 손발, 열정이 거세된 심장은 도시라는 사막을 배회하는 현대인에게 모두 해당하는 말일 터다. 저자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무덤인 이탈리아 로마부터 자동차 산업의 붕괴로 쇠락해버린 미국 디트로이트까지 지구 곳곳의 폐허를 거닌다.



 폐허는 적막하고 고요하다. 모든 것은 사멸해가는 중이다. 저자는 황폐한 내면의 풍경을 투영하듯 시작과 끝이 모호한 여행을 계속한다. 뉴올리언스, 태국, 암스테르담, 캄보디아, 파리 등으로 발길을 재촉하지만 매번 한 공간을 맴도는 느낌이다. 암스테르담에서 오블리비언(망각)이란 이름의 호텔을 찾지 못한 채 무엇에 홀린 듯 헤매는 것처럼 목적지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책을 읽을수록 저자가 진짜 도달하고 싶은 곳은 특정 장소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곳은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스토커’에 나오는 ‘구역’이다. 이 개념은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욕망이 이뤄지는 곳’이다. 거실의 소파든, 동네 카페의 구석 의자든 잠시라도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책의 제목처럼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에게는 더 많은 구역이 필요하다. 삶은 대체로 황폐하다. 하지만 그것을 잊게 만드는 순간도 가능하다.



 폐허에도 구역은 있다. 리비아의 고대 로마 유적지 렙티스 마그나에 도착한 저자는 기둥만 남은 공회장을 거닐면서 대리석 장식이 쏟아내는 강렬한 빛을 본다. 사라져버린 도시가 내는 빛이다. 몰락이야말로 이 도시의 영광임을 느끼는 순간, 그 곳은 구역이 된다. 태국의 성지도 마찬가지다. 치유를 강조하는 성지의 분위기가 못마땅했던 저자는 요가를 하지 않는 유일한 여행자였다. 하지만 케이트란 여성과 사랑에 빠진 뒤 그 공간은 찬란한 구역으로 바뀐다. 그렇다.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에겐 요가 대신 사랑이 필요하다.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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