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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별빛에는 있고, 네온사인에는 없는 것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동부 데스밸리(Death Valley) 국립공원 위로 은하수가 쏟아질 듯 걸쳐져 있다. 밤의 황홀한 매력이다. [사진 뿌리와 이파리]


잃어버린 밤을 찾아서

폴 보가드 지음

노태복 옮김, 뿌리와 이파리

464쪽, 2만원




어둠 속에는 독특한 치유효과가 있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감정이 북받쳐 오를 때 나는 다 내려놓는 심정으로 불을 끄고 눈을 감은 채 소파에 눕는다. 5분 정도 감정이 더욱 격렬해지다가 10분 정도 지나면 감정의 해일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는 생각의 생로병사가 좀 더 확연히 드러난다. 왜 화가 났는지, 왜 슬픔이 밀려왔는지, 무엇이 나를 아프게 하는지, 그 모든 감정의 기승전결이 가지런히 정돈된다. 빛으로 인한 복잡한 시각적 자극을 차단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신기하게도 이럴 땐 잠이 들지 않는다. 어둠의 정화효과로 인해 머릿속이 해맑아지는 것이다. 꽉 막힌 생각의 물꼬가 트여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어둠 속에서는 음악도 훨씬 풍부한 울림을 자아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피아노 독주나 첼로 소나타를 들으면 음표 하나하나가 싱그럽게 약동하며 가슴에 문을 두드린다. 어둠은 ‘본다’는 시각적 행위에 지쳐 어쩔 수 없이 둔해진 다른 감각을 깨워 ‘보이지 않는 것들’속에 잠자고 있는 사물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게 해준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런 어둠의 치유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만성 빛 공해 속에서 살아간다. 그것이 문명의 축복이라 믿으며, 그것이 더 안전하고 편리한 삶의 혜택이라 믿으며.



 이 책은 칠흑 같은 밤의 다채로운 매혹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어둠의 축복을 일깨워준다. 저자는 잃어버린 밤의 미덕을 일러주기 위해 우선 빛 공해의 위험을 경고한다. 우리 뇌는 밤에 불빛을 쐬어도 그때를 낮 시간으로 여긴다. 인류의 진화기간 중에서 이처럼 엄청난 야간조명에 노출된 기간은 극히 짧기에 우리 몸은 아직 그 ‘대낮 같은 밤’에 적응하지 못했다. 특히 야간조명은 생체리듬을 교란시켜 멜라토닌 생성을 억제하고, 수면장애를 비롯한 각종 질환의 위험을 높인다.



 야간근무의 만성피로는 온갖 교통사고와 대형재난의 치명적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심지어 야간근무를 하는 여성은 유방암발병률이 주간근무자보다 더 높은 반면, 맹인여성들은 발병률이 훨씬 낮다고 한다. 인간뿐 아니라 생태계 전체에서 빛 공해는 치명적이다. 빛공해는 우선 생물다양성을 위협한다. 오랜 진화를 통해 낮에는 빛에, 밤에는 어둠에 길들어온 생명체의 생활양식을 억지로 바꿔놓기 때문이다.



 문명을 빛으로, 어둠을 야만으로 여기던 서구인은 “어둠은 지상에 펼쳐진 사탄의 불경스러운 왕국”이라 공언할 정도로 어둠을 혐오했다. 하지만 지나친 빛은 어둠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야의 사각지대를 만든다. 빛이 가득한 곳을 바라보면 바로 뒤편의 어둠 속에 있는 물체는 전혀 보이지 않게 된다. 명암대비가 커지면 어두운 곳은 더 어두워 보여 맨눈으로 충분히 볼 수 있던 물체조차 보이지 않게 된다. 흑백사진만의 독특한 매력을 떠올려보면 된다. 영화 ‘카사블랑카’를 흑백필름으로 봤던 나는 칼라로 복원된 그 영화를 다시 봤을 때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퍼뜩 깨달았다. 흑백필름은 ‘색깔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총천연색으로 보일 때와는 ‘다른 빛깔’을 선사하는 것임을. 익숙한 칼라사진도 흑백필름으로 바꿔보면 사진의 본질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오직 달빛에 의지해 길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오래 전 광양매화마을의 밤길을 천천히 걸어가며 나는 오로지 캄캄한 밤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꽃의 사생활을 보았다. 달빛아래 고요히 드러난 처연한 낙화의 풍경은 할로겐조명 아래 다이아몬드보다 더욱 눈이 부셨다. 그때 나는 눈을 아프게 하는 압도적인 불빛이 아니라, 사물이 지닌 본래의 빛깔을 끌어내는 ‘어둠 속의 빛’을 보는 법을 배웠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도 어엿한 빛깔이 있었다.



 지은이는 밤의 어둠을 되찾는 빛 공해 퇴치운동에 참여하면서, 지구상에서 ‘진짜 어둠’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간다. 그의 고향 미니애폴리스는 『월든』이 태어난 매사추세츠의 콩코드처럼 ‘밤이 살아있는 곳’이었다. 달빛보다 스마트폰빛에 익숙한 이 시대의 어린이들은 LED화면의 빛깔이 아닌 어둠의 빛깔을 알고 있을까. 문득 잃어버린 어둠의 가치를 되새겨봄으로써 밤과 낮의 관계, 어둠과 빛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고 싶어진다.



 고흐가 그림을 그리던 시절의 가스등을 현대에 재현하면 우리는 분명 ‘어둡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나 ‘밤의 테라스 까페’ 속에서는 분명 인공의 빛과 자연의 빛이 행복하게 공존하고 있다. 별빛이 강물에 비쳐 황금빛으로 빛날 수 있는 것은 단지 별빛이 밝아서가 아니라 그 별빛을 감싸고 있는 검푸른 ‘어둠’의 존재 때문이다. 어둠에 적응되면 눈은 어둠 속에서도 수많은 빛깔과 실루엣을 구분하게 된다. 고흐는 밤이 낮보다 더욱 생기 있고 색채가 풍부하다고 느꼈다. 태양빛이 차단됨으로써 사물이 본래 지니고 있던 저마다의 색채가 더 짙게 우러나오는 순간을, 화가의 눈은 식별할 수 있었다. 우리도 어둠 자체의 빛깔을 바라볼 수 있는 야생의 눈, 어둠 속에 비친 세상이 지닌 본연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영혼의 시력을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



정여울은

문학평론가.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나만 알고 싶

은 유럽 top10』 『마음의 서재』등을 썼다.





[S BOX] 인공 불빛에 고통받는 새들



점점 밝아지는 지구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건 인간만이 아니다. 인공 불빛이 늘어나면서 박쥐의 서식지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박쥐는 풍력발전기 때문에 몰살을 당하기도 한다. 발전기 불빛에 모여든 곤충에 이끌려 근처로 다가간 박쥐는 발전기 날개 부분의 급격히 낮은 기압 때문에 폐가 터지고 만다. 이렇게 미국에서만 한 해에 적어도 6만 마리의 박쥐가 생명을 위협받는다.



 밤에 이동하는 야행성 조류들은 통신탑은 물론 등대, 석유 시추탑, 공장의 높은 굴뚝에 부딪힌다. 특히 도시는 수많은 고층건물이 복잡한 미로를 이루는 바람에 새가 빠져나가기 어렵다. 빛에 이끌린 새가 혼란을 느껴 인공구조물과 충돌하는 경우도 많다. 1954년 어느 밤 새 5만 마리가 미국 조지아 공항의 불빛에 이끌려 땅바닥으로 떨어져 죽었고, 81년 어느 주말에는 1만 마리가 넘는 새가 온타리오주의 공장 굴뚝에 부딪쳤다. 2011년에는 1500마리가 넘는 논병아리가 한밤중에 구름에 반사된 도시 불빛 때문에 혼동을 일으킨 나머지 주차장을 호수로 착각해 뛰어들어 죽었다.



 미국 뉴욕의 9·11 추모관은 한때 새 때문에 문을 닫아야 했다. 추모관 인근에 설치된 ‘희생자에게 바치는 빛의 헌사’라는 조명 설치물의 빛에 이끌려 수천 마리의 새가 몰려든 탓이다. 환경전문가들은 빛의 영향 때문에 철새의 이동행로도 극적으로 바뀌고 있으며, 이것이 새의 생태계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여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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