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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비혼, 비출산, 비생존의 사회

김연수
소설가
2011년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인 세이브더칠드런이 방글라데시에서 진행하는 모자 보건사업인 ‘마모니 프로젝트’를 참관하기 위해서 수도 다카의 샤잘랄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둠이 내린 뒤였다. 대합실 바깥에 설치된 철조망에 매달린 사람들을 바라보며 준비된 차에 올라타고 시내를 향해 출발했다. 어둠 속을 얼마나 달렸을까, 도로에 하나둘 차들이 많아지면서 경적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건 그 유명한 다카의 교통체증이 시작됐음을 의미하는 경적이었다. 이윽고 도로 위의 모든 차가 경적을 울려댔다. 모든 차가 경적을 울려대니까 그 소리는 무의미해졌다.



 왜 다카에서는 모든 차가 경적을 울려대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모든 차가 경적을 울려대기 때문일 것이다. 웃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나 한 사람이 경적을 안 누른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누르나 안 누르나 전체 시스템에는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과 같이 눌러야 손해를 덜 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모두가 경적을 누르지 않는 세상이란 불가능한 꿈과 같은 것이리라. 혁명의 첫날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모두가 경적을 누르지 않는 다카의 도로를 상상하면 될 것 같다.



 혁명이라면 대개 뜨거운 믿음과 과감한 동참을 떠올리지만, 진짜 혁명은 차가운 불신과 비참여에서 시작된다. 구성원들이 그 시스템을 불신하고 제시하는 방식대로 행동하지 않을 때, 사회적 시스템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 지폐에 대한 믿음이 대표적이다. 물질로서의 지폐는 1000원이나 1만원이나 5만원이나 똑같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게 다 다른 가치를 지녔다고 상상한다. 거의 모두가 그 사실을 믿는다. 그 믿음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우리에게 용돈을 받을 때 신사임당이 오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믿음이 붕괴되면 김광균의 시 ‘추일서정’에 나오듯, 낙엽보다 못한 망명정부의 지폐가 되어버린다.



 어제 오늘, 창조적인 세금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나는 자살세. 최근 출간된 김경욱의 소설집 『소년은 늙지 않는다』에 수록된 단편 ‘인생은 아름다워’에는 자살면허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면허 없이 자살하면 유족에게 막대한 자살세를 물리고 사돈의 팔촌까지 공무담임권을 박탈하는 시대가 배경으로 나온다. 그래서 자살 면허를 따기 위해 강북 최고의 합격률을 자랑하는 솔로몬 자살 면허 전문학원에 다니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읽으며 소설가의 상상력이란 참 흥미롭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싱글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이게 소설 속의 상상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 관리들은 2012년 기준 합계출산율 1.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8개국 중 27위, 하루 평균 자살자의 숫자가 39.5명으로 OECD 평균을 세 배 이상 상회한 덕분에 9년째 자살률 압도적 1위, 자살증가율 2위라는 통계를 결과로 인식하고 그 원인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살을 막고 출산율을 늘리기 위해 자살세나 싱글세를 부과하는 게 대책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통계치가 정책의 수동적인 결과가 아니라 개인의 능동적인 선택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그런 방법은 아무런 대책이 되지 못할 것이다. 대의에 동참함으로써 사회를 개선할 수도 있지만, 참여를 거부하는 것에 동참으로써 그 사회를 바꿀 수도 있으니까.



 어제 연남동의 작은 모임에서 싱글세 이야기에 젊은 사람들이 분노에 가까운 절규를 쏟아내는 걸 봤다. 하지만 정작 그것도 그들에겐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의 진짜 고민은 취업 문제였다. 어떤 세대보다도 월등히 뛰어난 스펙을 쌓았음에도 자신만의 일을 몰두한다는 그 기본적인 꿈조차 이루지 못한 젊은이들이 많았다. 경제활황기에 청춘을 보내며 자기 일에 몰두해서 가정도 이루고 재산도 늘린 기성세대들의 눈에는 그들이 무기력하게만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게 저출산과 자살률 증가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기존의 사고방식으로는 어떤 답도 내놓을 수 없는, 낯선 사회가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김연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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