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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길!] 내 배의 선장이 되어

한비야
구호활동가·이대 초빙교수
지난 목요일,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내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슨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평소보다 커피를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웬일일까? 그건 순전히 수능시험 때문이었다. 가까운 이들 중에 아무도 수능을 보진 않았지만 그 많은 ‘우리 아이들’의 긴장감과 그 부모들의 간절함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늦은 오후, 환한 얼굴로 또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사장을 나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는 아이에게 말하듯 TV 화면에 대고 혼잣말을 했다.



 “아이고, 그동안 수고 많았어. 정말 애썼다.”



 잘 치렀든 망쳤든 수능시험은 끝났다. 시험 본 우리 아이들, 드디어 끝났다는 해방감도 느끼지만 허탈감이 몰려오기도 할 것이다. 겨우 이거였어? 이걸 위해 잠도 못 자고 놀지도 못 하며 내 10대를 바쳤단 말이야, 하면서. 시험 성적이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았다면 더욱 억울한 생각이 들 것이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불현듯 내가 치른 대학 입학시험이 생각난다. 30년도 넘은 일이지만 어제인 듯 생생하다. 이름만 잘 쓰고 나오면 문제없다던 소위 일류대학 입학시험에 그만 떨어지고 말았다. 집안 사정상 재수는 꿈도 꿀 수 없었다. 학교 대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지만 대학의 꿈은 놓을 수 없었다. 그러기를 6년, 어느 날 일기를 쓰다 말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굳게 결심했다.



 “더 이상 대학 가는 걸 미룰 수는 없어. 내년에는 가고 말 거야. 꼭 그럴 거야.”



 그때 내 나이는 24세였고, 대학 입학시험은 7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 후 7개월은 말 그대로 사투(死鬪)였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모자랐지만 생활비와 학원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에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를 단 하나도 그만둘 수 없었다. 그러니 잠자는 시간을 줄이는 수밖에. 하루에 두세 시간씩만 자면서 버티느라 만날 하늘이 노랬다. 아르바이트하면서 몰래몰래 공부하다 걸려서 혼나고, 졸다가도 혼났다. 식구들 걱정할까 봐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시험이 다가올수록 거의 매일 머리가 빙빙 돌거나 빠개지듯 아프면서 토할 것 같았다.



 그래도 공부는 재미있었다. 정말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펀지처럼 교과서와 학원 강의 내용을 그대로 다 빨아들였다. 책만 펼 수 있으면 발 디딜 데 없는 만원버스 안이나 아르바이트하는 음악다방 디제이 박스 안이나 우리 집에서 밤새도록 불을 켜놔도 되는 유일한 공간인 부엌이 공부방이 됐다. 분을 가르고 초를 쪼개 공부했다. 이토록 열심히 하는 내가 신기하고 기특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몽땅 쏟아부었던 그 7개월간은, 단언컨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뜨겁게 몰두했던 순간이었다. 우리 엄마나 날 아끼던 고3 담임선생님이 시켰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당연히 아니다. 내 스스로 고민해 선택하고 결심해 실행했기 때문에 최선의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내가 한 결정이었기에 힘들다는 엄살도, 더 이상 못 견디겠다는 하소연도, 너 때문이라는 남 탓도 할 수 없었다. 그 과정과 결과도 내 몫이고 최종 책임도 오롯이 내가 져야 했다.



 결과와는 무관하게 이 과정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하기로 마음먹은 일에 뜨겁게 몰두하는 사람이라는 걸, 할 가치가 있는 일은 잘할 가치도 있다는 걸.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일단 하기로 작정하면 그 일을 되게끔 하는 알 수 없는 힘이 솟는다는 걸. 그 덕분에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그때 그렇게 공부도 했는데 이것쯤이야’라며 이겨낼 자신감이 생겼고, 지금까지도 그 마음가짐으로 수많은 난관을 넘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깨달음은 내가 내 배의 선장이라는 사실이었다. 비록 깜깜하고 거친 바다지만 방향키를 원하는 목적지에 맞추고, 두렵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드디어 내 배의 선장으로서 첫 항해를 시작한 것이다. 그랬기에 그 과정에서 겪은 모든 것이 내것이 됐다.



 막 수능을 끝낸 우리 학생들, 이제야말로 자기 배의 방향키를 누가 쥐고 있는지 점검할 때가 왔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인생의 갖가지 시험을 앞둔 분들 역시 그것이 자신의 선택인지, 그래서 그 과정과 결과를 충분히 누리고 온전히 책임질 준비가 됐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할 때다.



 혹여 여태까지 공부하느라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자기 삶의 방향키를 맡겨두었다면 이제는 돌려받아야 한다. 이건 내 삶을 맘대로 살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그러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스스로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방향키를 잡았다면 이제부터 당신 배의 선장은 당신이다. 그리하여 세상이라는 거친 바다에서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뚫고 나갈 힘과 용기도 함께 얻을 것이다.



 자, 내 배의 선장이 되어 떠날 준비가 되었는가? Bon Voyage!(부디 순항하시길!)





한비야 구호활동가·이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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