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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연금 개혁과 코끼리 옮기기

장 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올 연말까지 공무원연금 개혁이라는 중대 과제를 마무리지어야 하는 정홍원 총리에게 필자는 『코끼리 쉽게 옮기기』(김영순, 2014)라는 책을 권하고 싶다. 1990~2000년대 영국의 연금개혁 사례를 심층 분석하는 이 흥미로운 책에서 저자는 연금 개혁은 마치 거대한 코끼리를 옮기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덩치 큰 코끼리처럼 연금은 거대한 재정이 소요되는 복지정책이고, 수혜자들은 코끼리(연금)를 아주 좋아하기에 지속 가능한 연금으로 개혁해 가는 연금개혁 정책은 마치 비둔한 코끼리를 옮기는 것만큼이나 엄청난 노력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화·인구 노령화·재정 압박이라는 공통의 도전 속에서도 단지 영국·스웨덴·이탈리아 등 소수의 국가만이 지속 가능한 연금체제로의 개혁에 성공한 점이 이를 입증한다.



 정홍원 내각이 연말까지 공무원연금 개혁을 이뤄내려면 2014년 한국판 연금 개혁의 거시적 배경과 미시적 정치 과정을 충분히 체득해야 한다. 먼저 거시적 의미를 살펴보면 2012년 총선, 대선을 거치면서 새누리당이 다양한 복지정책을 과감히 수용한 것은 우리 보수 정치의 일대 전환에 해당한다. 그간 세계화 개방과 경쟁을 주로 강조하던 보수가 세계화 경쟁이 가져오는 부작용들을 다양한 복지정책을 통해 끌어안겠다는 것은 한국 보수의 근본적 재출발이고, 동시에 한국 사회에 상당한 수준의 정책수렴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복지 확장이 역사적 전환의 1.0이라면 복지 합리화는 역사적 전환 2.0에 해당한다. 복지 선진국들이 복지 확장에 따른 재정문제가 곪아터지고 수십 년이 지나서야 복지 합리화에 나섰다면, 후발 복지국가인 우리로서는 확장(1.0)과 합리화(2.0)를 병행 추진해야 하는 태생적 어려움을 안고 있다. 엊그제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60%가 넘는 국민들이 공무원연금 개혁을 지지한다는 결과는, 대다수 국민이 이러한 병행 추진의 불가피성과 필연성을 예민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증거다.



 미시적 관점에서 말하면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수혜자 집단의 저항을 넘어서려면 정홍원 내각은 연금 개혁의 코끼리를 몰고 좁은 외나무다리를 몇 개 건너야만 한다. 그 까닭은 지난 10여 년간 우리 정치는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정부의 정책 결정에 대해 관련 당사자들이 강한 비토권을 행사하는 비토점(veto points)을 늘리는 양상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연금 개혁이라는 코끼리 역시 이러한 비토점의 좁은 다리들을 건너야만 하게 됐다.



 첫 번째 비토점은 국회 선진화법 이후에 강화된 소수당의 권한이다. 소수당은 핵심 법안의 처리를 지연시킬 수 있는 강한 권한을 갖게 됐고, 국회의 절차는 더욱 분산돼 이제 우리 국회는 소수주의적 국회(minortarian parliament)로까지 부를 수 있게 됐다. 소수당과의 합의라는 좁은 외나무다리는 물론 새누리당이 주도적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지만, 이 과정에서 내각의 역할이 결코 작다고는 할 수 없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건너야 할 두 번째 좁은 다리는 기존 수혜자 집단(공무원 집단)의 저항이라는 비토점이다. 지난 수개월간의 경험에서도 보듯이 여야 정당이 만들어낸 정책 합의는 종종 관련 당사자 집단의 거부로 인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우리는 목격해 왔다. 전반적으로 강하게 퍼져 있는 정당 불신의 분위기 속에서 여야 정당의 대표성은 상당히 위축돼 있고, 정책 당사자 집단의 조직화된 저항은 입법 과정이나 정부의 정책 추진에서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게다가 공무원연금 개혁의 이해당사자 집단은 얼마 전 여의도 집회에서도 드러났듯이 상당한 규모의 조직과 동원 능력을 갖추고 있는 집단이다.



 조직화된 소수의 비토를 뚫고 연금 코끼리가 개혁의 다리를 건너도록 하려면 정홍원 내각은 정책 프레이밍 능력을 더 적극적으로 발휘해야 한다. 연금 개혁이 소수 수혜자 집단과 다수 부담자 사이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국가 재정을 짊어질 미래 세대와 현재의 수혜집단 사이의 심각한 세대 불평등을 해소하는 이슈라는 점을 간명하고 알기 쉽게 적극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세대 간 회계 기법을 동원해서라도 연금 개혁이 미래 세대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다 함께 양보하는 고육책이라는 점을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정리하면 우리의 공무원연금 개혁은 보수-진보 정당들 간의 합의만으로 종결된 스웨덴의 연금 개혁이나, 정부와 노조의 합의만으로 타결된 이탈리아의 연금 개혁보다도 복잡한 구조 속에 놓여 있다. 오직 각별한 의지와 섬세한 설명력, 유기적 협업을 통해서만 코끼리를 옮기는 역사적 변화를 이룰 수 있다.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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