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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중독에 잠 못 자 … 체력 한계 넘은 지 오래”

바다를 보며 잠수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난 8월 25일 88수중 바지선에서 찍었다. 7월 18일 세월호 조리사 이묘희(56)씨의 시신을 찾고 나서 성과 없이 38일이 흐른 뒤였다. 식판에 카레라이스와 총각김치가 보인다. 유 팀장이 촬영했다. [프리랜서 공정식], [사진 유기주 팀장]

12일 집이 있는 경북 포항시에 돌아온 88수중 유기주 잠수팀장. [프리랜서 공정식], [사진 유기주 팀장]
잠수사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저 “다 찾지 못해 죄송하다”고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그때 누군가 다가와 손을 꼭 잡았다. 그러곤 말했다. “동생, 고생했어. 아픈 데는 없지?” 팽목항에서, 또 세월호 수색 현장 바지선에서 수도 없이 마주친 얼굴. 아직 행방을 모르는 안산 단원고 2학년 허다윤(17)양의 아버지 허흥환(51)씨였다.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들이 수중수색 중단을 요청한 지난 11일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에서 가족들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잠수사는 민간업체 88수중 소속 유기주(40) 잠수팀장이었다. 그는 11일 가족들이 수색종료를 요청했다는 소식을 바지선에서 스마트폰으로 확인했다. 가족들이 “가장 중요한 것은 잠수사 분들의 안전”이라고 했을 땐 가슴이 뭉클했다고 그는 말했다.

 유 팀장이 세월호 수색에 합류한 건 지난 5월 29일. 부산 앞바다에서 가라앉은 배 인양 관련 작업을 하던 88수중이 이때 세월호 수색에 투입됐다. 무너져 수색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크레인으로 들어올리기 위해 세월호에 ‘ㅁ’ 자 모양 구멍을 뚫는 임무를 맡았다. 그랬던 것이 결국 마지막까지 남은 유일한 민간업체가 됐다.

 도착하자마자 하루에도 몇 차례씩 물 밑에 내려가 선체를 절단했다. 이튿날 마무리 작업차 다시 내려가려는데 동료 이민섭(44) 잠수사가 말렸다. “좀 쉬어라. 내가 갈게.” 그게 마지막 말이었다. 절단 작업 중 폭발 사고가 일어나 이씨는 유명을 달리했다. 유 팀장은 “나 대신 변을 당했다는 생각에 아직도 가슴이 무겁다”고 했다. 선체를 절단하고 일부 장애물을 치웠지만 시신 수습은 더디기만 했다. 선체는 자꾸 무너져내렸고, 배 안에 뻘이 조금씩 쌓여갔다. 유 팀장이 합류했을 때 실종자는 16명. 그 뒤 5개월여 동안 7명을 더 찾았다. “초기에는 좀체 성과가 나지 않자 실종자 가족 분들이 화를 내시더군요. 이해는 갔지만 야속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지난달 수색 중인 잠수사 아래로 희미하게 세월호가 보인다.유 팀장이 촬영했다. [프리랜서 공정식], [사진 유기주 팀장]
팽목항에서 기다리던 가족들이 바지선에 직접 와 수색을 지켜보면서 서로 가까워지게 됐다고 유 팀장은 말했다. “그중에도 황지현(17)양 아버지와 다윤이 아버지가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새벽같이 찾아와 고생한다며 손을 꼭 잡아주셨어요. 때론 돼지고기·닭고기도 싸 오셨죠. 정말 고마웠습니다.” 황지현양은 지난달 28일 마지막으로 발견된 단원고 학생이다. 유 팀장은 지현양 장례식장에도 들렀다. 거기서 만난 지현이 아버지 황인열(51)씨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만 아이를 찾고…. 죄인 아닌 죄인이 된 기분이다.”

 수색 중간에 정부는 잠수사 일당을 98만원(세전)으로 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유 팀장은 “많다고 말씀들 하시는데, 물에 들어갈 때마다 생명을 건다는 점을 생각해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이틀에 한 번꼴로 물에 들어가던 잠수사들 중 상당수가 10월 들어 산소중독 증세를 보였다. 잠수 헬멧에 호스를 연결해 바지선 위에서 산소 농도가 높은 공기를 공급받으며 작업했기 때문에 생긴 증상이다. 이틀에 한 번 잠수하더라도 일주일 작업하면 2, 3주를 쉬면서 몸 안에 쌓인 산소를 빼야 하는데, 쉼 없이 작업하다 보니 몸 안에 산소가 쌓여 탈이 났다. 현기증과 귀울림이 생겼고, 일시적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잠수사도 있었다고 유 팀장은 전했다. 그 자신도 “체력 한계를 넘은 지 오래됐고, 지금은 현기증을 심하게 느끼고 있다”고 털어놨다. 하루 4시간밖에 못 자는 것도 산소중독 증상이었다. 그는 “산소 농도가 높으면 피곤함을 못 느낀다”며 “그러다 갑자기 쓰러져 위험한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고 했다.

 실종자 가족들에겐 이런 상황을 얘기하지 않았다. 바지선에 와서 늘 건강 걱정을 해주기에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했다. 대신 점점 어려워지고 위험해지는 수색 환경을 설명했다. 바닷물 역시 점점 차가워졌다. 가족들은 잠수사들의 안전을 고려해 결단을 내렸다.

 12일 오전 유 팀장은 팽목항에서 짐을 챙겼다. 까만색이었던 잠수복은 탈색돼 군데군데 회색으로 변했다. 경북 포항시의 집에서 당분간 가족들과 푹 쉴 참이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있어 자식 둔 분들 마음을 안다”며 “실종자들이 가족에게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진도=최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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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