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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직의 바둑 산책] 세 번째 명인 박영훈 “아직 실력 느는 나이 … 욕심 더 내겠다”

11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42기 명인전에서 박영훈 9단(오른쪽)이 이동훈 3단과 제4국을 마친 후 복기를 하고 있다. [사진 한국기원]


박영훈(29) 9단이 명인(名人)이 됐다. 2010~2011년 2연패에 이어 세 번째 명인 등극이다. 박 9단은 11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42기 명인전 4국에서 이동훈(16) 3단을 꺾고 3대 1로 우승했다. 1968년 만들어진 명인전은 국수전(1956~) 다음으로 연륜이 깊은 기전이다.



 바둑에서 명인은 최고의 기량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기예(技藝)의 세계에서 명장(名匠)과 명인은 서로 통용된다. 『장자(莊子)』에 명장 이야기가 많은 것으로 보아 그 기원은 늦어도 춘추시대(개원 8~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가 싶다.



 국수(國手)도 비슷하다. 수(手)는 재주를 의미하기에 곧 명수(名手)의 뜻을 갖는다. 『맹자(孟子)』에 ‘혁추는 나라에서 바둑을 가장 잘 두는 사람(奕秋通國之善奕者也)’이라는 말이 있다.



 일본에는 분명한 유래가 있다. 전국시대의 풍운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1534~82)가 ‘명인’을 처음 사용했다. 교토(京都) 자코지(寂光寺)의 암자 혼인보(本因坊)의 주지 닛카이(日海·1559~1623)의 실력을 높이 평가해 이름 앞에 명인을 붙였다. 이후 명인은 일본 바둑 최고의 권위로 통한다. 닛카이는 일본의 초대 명인·혼인보가 됐고 일본 바둑 300년의 기초를 놓았다.



 20세기에 들어와 일본은 명인을 61년부터 프로 기전의 이름으로 삼았다. 전통 깊은 이름에 상금도 가장 커서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타이틀이 됐다. 조치훈(58) 9단은 80년 명인전을 우승한 이후 84년까지 5연패했다. 5년간 1인자 대접을 받았다.



 한국의 첫 명인은 69년 탄생했다. 조남철(1923~2006) 당시 8단이 영광을 안았다. 프로기사들은 많은 타이틀 중에서도 명인과 국수 이름을 최고로 친다. 동양문화를 상기시키는 이름이기도 하지만 타이틀을 잃어도 이름이 남기 때문이다. 66~71년 국수를 6연패했던 김인(71) 9단은 타이틀을 잃은 72년부터 ‘영원한 국수’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의 중후한 인품 때문에 ‘영원한’이라는 형용사가 붙었다.



 명인도 비슷하다. 된장바둑으로 유명한 ‘서 명인’이 대표적이다. 서봉수(61) 9단은 72년 제4기 명인전에서 49세의 조남철 명인을 꺾고 우승했다. 입단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세 2단 때였다. 당시 명인은 40세가 되어야 가능하다는 게 정설이었다. 바둑계는 경악했다. 6년 후 명인 타이틀을 잃은 이후에도 그는 ‘서 명인’으로 불렸다.



 이번 대회의 최대 관심사도 10대 우승자의 탄생 여부였다. 많은 사람이 기다렸다. 이동훈 3단이 16세이기 때문이다. 집과 계산을 중시하는 비슷한 기풍이지만 결과적으로 박 9단이 좀 더 정교했다. 우승 직후 박 9단을 대국장에서 만났다.



 -3년 만에 다시 명인이 됐다.



 “먼저 기쁘다. 3국은 어려웠는데 묘하게 역전했다. 운이 따랐다고 본다. 명인전은 인연이 있다.”



 -이동훈의 바둑에 대해서 한마디 한다면.



 “한참 후배지만 침착하고 계산력이 놀랍다. 이미 실력은 정상이다. 자신감이 좀 더 붙고 경험만 주어진다면 타이틀은 시간 문제라고 본다.”



 -이번 우승을 계기로 하고 싶은 것은.



 “평범하게 공부하는 일이다. 아직은 공부하면 느는 나이라 후배보다 더 열심히 하고 싶다. 물론 세계대회도 욕심내겠다.”



 -나이 스물아홉인데 체력은 충분한가.



“제한시간이 짧아져 아직은 견딜 만하다. 그래도 몸의 기운에 따라 컨디션이 달라짐을 느낀다. 체력보강에 더욱 주의하겠다.”



 제42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은 한국일보와 한국기원이 공동 주최하고 강원랜드가 후원했다. 제한시간은 각자 2시간에 1분 3회의 초읽기이며 총규모 4억원, 우승 상금 6000만원(준우승 2000만원)이다.



문용직 객원기자





◆박영훈=1985년 서울 출생. 97년 전국아마10강전 우승(아마기전 사상 11세 최연소). 99년 입단. 2001년 2단 때 제6기 천원전 우승(최저단 기록·서봉수 9단과 타이) 이후 국내 기전 우승 통산 17회. 세계대회 우승 2회(2004년 제17회, 2007년 제20회 후지쓰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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