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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슬픈 결단

11일 세월호 실종자 가족을 대표해 수중수색 종료 요청을 발표한 민동임(36)씨가 기자회견문을 읽던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그는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실종된 단원고 고창석(40) 교사의 부인이다. 민씨는 “나서서 기자회견을 하기로 결심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팔순이 넘은 시어머니는 아직 아들의 변고를 모른다”고도 했다. [뉴시스]

“여보, 당신은 이게 옳다고 얘기해 주실까요. (세월호) 수중수색 종료를 요청하는 게요.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을까요.”

 하늘나라에 있을 남편에게 묻고 또 물었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209일 만인 11일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을 대표해 수색 종료를 요청한 민동임(36)씨 얘기다. 남편은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며 “먼저 배를 빠져나가라”고 한 뒤 실종된 고창석(40) 안산 단원고 인성생활부 교사다.

 민씨는 발표문이 쓰인 A4 용지 반쪽짜리 종이를 오른손에 들고 손수건을 왼손에 쥔 채 체육관 단상에 올랐다. 담담한 목소리로 발표문을 읽기 시작했다. “저희처럼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평생을 슬픔에 잠겨 고통 속에 살아가는 분들이 더 이상 생겨서는 안 되겠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잠수사 분들의 안전입니다. …(중략) 어떠한 선택도 누군가에게 고통이 될 수밖에 없다면 저희가 수중 수색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중략)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지만 이 시간 이후 수중 수색을 멈춰 주시기 바랍니다.”

 이따금씩 흐느낌에 말이 끊겼다. 손수건으로 때론 눈을, 때론 눈물이 타고 내린 뺨과 턱을 훔쳤다. “아직 저 차가운 바다 속에서 저희를 기다리고 있는 9명 실종자를 꼭 찾아 주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드립니다”라고 할 때는 감정이 북받친 듯,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난달 21일 광주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피해자 진술차 나와 “처음엔 발견된 시신이 남편이 아니기를 바라다가 며칠 뒤부터 제발 남편이기를 기원하게 됐다”던 그였다. 당시 그는 “사고 며칠 전 맞잡은 손의 감촉이 아직도 남아 있다”며 “뼛조각이라도 찾고 싶다”고 했다. 민씨는 11일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발표문을 읽는 동안 남편을 처음 만날 때부터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며 “다시는 함께할 수 없다는 게 너무 마음 아프고 힘들었다”고 말했다. 민씨는 지난달 29일 세월호에서 단원고 황지현(17)양이 발견된 뒤 그때까지 실종자 가족 대표였던 황양의 아버지 황인열(51)씨가 귀가하면서 대표를 맡았다.



 실종자 가족들은 지난달 말 황양이 발견되기 직전에도 수색종료 여부를 놓고 토론했으나 수색을 계속해 달라고 요청하는 쪽으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세월호 선체가 급속하게 무너지고 있다”는 범정부사고대책본부 측의 말에 생각을 바꿨다. 잠수사들의 안전을 걱정해서였다. 그간 세월호 수색·구조 과정에서 민간 잠수사 2명이 숨졌고, 수색에 참여했다 복귀하던 헬기가 추락해 소방구조대원 5명이 사망했다.

 가족들은 10일 오후 6시 정부에 수색 종료를 요청했고, 정부는 11일 오전 정홍원 총리 주재로 회의를 한 뒤 종료를 선언했다. 가족 발표문은 10일 오전부터 11일 발표 한 시간 전까지 가족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잠수사들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그동안 가족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주신 잠수사님들께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이날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철수하는 민간 잠수사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진심으로 고맙다”고 했다.

 진도에 온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선 “선체 인양 준비를 빈틈없이 진행하고, 모든 정보를 가족들과 공유해 달라. 실종자 전원을 찾아 가족들 품에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꼭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이 장관은 “수중 수색은 마무리하지만 남은 9명을 찾는 것은 정부의 도리”라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가족들은 앞으로 보름 정도 진도에 머물며 범정부사고대책본부와 인양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국민들은 실종자 가족들에게 격려를 보냈다. 주부 윤현숙(43·대전시 서구)씨는 “시신조차 확인하지 못한 가족을 가슴에 묻는 게 얼마나 쓰라린 일이겠느냐”며 “가족들이 슬프고도 장한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김흥구(50·자영업·경남 창원시)씨는 “정말 힘든 결정을 내렸다”며 “정부가 어떻게든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을 위로할 방안을 찾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수색을 내려놓겠다”고 했지만 마음의 짐은 남았다. 이날 저녁 진도실내체육관으로 돌아온 권오복(59)씨는 화가들이 그려준 동생 재근(52)씨와 조카 혁규(6)군의 초상화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차디찬 바다 속에 둘 수는 없는데….”

 어둠이 내린 팽목항에선 단원고 조은화(17)양의 아버지 조남성씨의 외침이 들렸다. “은화야 보고 싶다. 돌아와다오.” 대답은 없었다. 바다엔 메아리도 없었다.

진도=장대석·최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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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