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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알면 한글 교육에 걸림돌 될까


교육부가 2018학년도부터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이 사용하는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주겠다는 취지다. 교육부 관계자는 “2018년에는 초3·4, 2019년에는 초5·6 교과서에 한자 400~500자를 한글과 병기하도록 권장하는 교과서 집필 기준 지침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문을 별도 과목으로 가르치거나 시험 문제로 출제하지는 않을 방침이다. 한자 병기란 한글과 한자를 나란히 적는 것으로, 한글 어휘를 빼고 대신 한자만 적는 혼용과는 다르다. 한글학회 등 한글 관련 단체는 한자 병기 방침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선 “초등생이 한자까지 공부하는 건 과도한 학업 부담”이라는 반대 목소리와 “한자 교육을 통해 한국어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고 사고력도 키울 수 있다”는 찬성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한자 병기가 사교육 유발?

“대한민국을 大韓民國이라고 한자로 쓸 줄 아는 게 인문학적 소양과 무슨 관계가 있나요. 애국가(愛國歌)를 한자로 쓸 줄 모르면 ‘동해물과 백두산이’ 가사의 의미를 모르나요. 교과서 한자 병기는 말도 안되는 탁상행정입니다.” 경기도 관산초 이정균 수석교사의 말이다. “초등생 의사소통 능력과 인문학적 소양을 높이려면 독서와 글쓰기 등 우리말 교육을 강화하는 게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이 교사는 초등생 언어의 가장 큰 문제로 “깨진 언어 사용”를 지목했다. 인터넷·SNS 등에 범람하는 온갖 이모티콘과 축약어·비속어·은어를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게 문제의 핵심이지, 낱말 뜻을 몰라서 의사 소통이 안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아이들 대화 내용이 딱 TV 개그 프로그램 수준”이라고 했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는커녕 잡다한 유행어를 늘어놓고 ‘헐’ ‘즐’ 같은 신조어 감탄사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전부라는 것이다. 이 교사는 “이런 조악한 언어 사용 문제는 한자 병기로 절대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학업 부담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 초1 자녀를 둔 조성희(48·서울 광진구) 씨는 “2019년이면 아이가 6학년이라 한자 병기 교과서로 공부를 해야 한다”며 “당장 한자 학습지라도 시켜야하는 것 아니냐”고 불안해했다.

한문 교과목이 새로 생기는 것도 아니고 단지 국어·사회 교과서 주요 어휘 옆에 한자를 같이 써주겠다는 방침을 학업 부담 증가로 받아들이는 이유가 뭘까. 조씨는 “학교에서 줄넘기나 리코더 연주를 수행평가로 보면 좋은 점수 받으려고 당장 학원 보내는 게 학부모 심리”라며 “교과서에 한자가 표시되면 시험 문제에 한자가 등장할 것이고, 그러면 한문학원 다니는 학생이 자연히 늘 테니 뒤쳐지지 않기 위해 결국 사교육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묵현초(서울 중랑구) 성시온 교사도 “초3은 사회·과학 등 새 교과 배우느라 학습량이 급격히 늘어나는 시기인데 한자 교육까지 보태는 건 무리”라고 말했다.

이 교사는 한자 병기 대신 ‘학습용어 사전’ 편찬을 제안했다. 그는 “초등학생 눈높이로 낱말 뜻이 정확히 풀이된 학습용어 사전이 사실상 전무하다”며 “초등생이 교과서 읽다 모르는 어휘가 나왔을 때 병기된 한자를 본다고 뜻을 이해하는 게 아니다”며 “교과서에 나온 어휘만이라도 정확하게 뜻풀이를 해놓은 학습용어 사전부터 먼저 갖춰야 초등생의 어휘력·사고력·이해력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대치동·목동에선 한자 병기 환영

이처럼 한자 병기를 학업 부담과 연관짓는 교사와 학부모가 적지 않지만 사실 서울 강남구의 초등학교는 강남교육지원청 지도 아래 이미 2008년부터 한자를 가르치고 있다. 사립초 역시 오래 전부터 한자 교육을 해오고 있다. 중대부속초나 동산초, 추계초, 한신초 등 서울 대다수 사립초는 창의체험활동 시간을 아예 한자 시간으로 정해 교육하기도 한다. 학년별로 100자씩 익히는 게 목표라 졸업할 때면 최소 500~600자는 암기하게 된다. 강남 이외 지역의 공립초 중에도 창의체험활동 시간을 한자 학습에 할애하는 경우도 있지만 담임 교사 재량이라 체계적이진 않다.

동산초는 한문 고전 읽기 시간까지 따로 있다. 이 학교 송재환 교사는 “한자와 한문이 병기된 교재를 사용해 뜻풀이와 원문을 동시에 익히도록 지도한다”고 말했다. 2학년 교재인 『사자소학』을 예로 들면 ‘父母呼我 唯而趨進 부모호아 유이추진(부모님께서 나를 부르시거든 빨리 대답하고 달려 나가고), 父母使我 勿逆勿怠 부모사아 물역물태(부모님께서 나를 부리시거든 거스르지 말고 게을리 하지 말라)’와 같이 한자 원문과 한글 뜻풀이를 한눈에 보고 읽을 수 있게 가르친다는 것이다. 송 교사는 “한글로 된 뜻풀이만 보면 하나마나한 이야기처럼 뻔한 내용이지만, 한자 원문을 암송하면 스스로 깊은 의미를 깨우치는 효과도 생긴다”며 “굳이 원문을 해석하라고 강요하진 않지만 한자에 호기심을 가질 기회를 주는 게 더 교육적”이라고 말했다.

송 교사는 한 일화를 소개하며 한자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며칠 전 학교에서 학년별 ‘소체육대회’를 열었는데, 학생 일기를 검사하다보니 ‘오늘 소체육대회를 한다고 해서 운동장에 소가 와 있을 줄 알고 기대했는데 한 마리도 없어서 실망했다’는 내용이 있었다”며 “상당히 똑똑한 아이였음에도 한자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이런 오해를 하더라”고 했다. 그는 “한자를 교과서에 병기해 자주 보고 익숙하게 해주는 건 바람직한 변화”라고 덧붙였다.

자녀를 사립 이대부초(서울 서대문구)에 보내는 김영란(50·서울 양천구)씨는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것은 학력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좋은 제도”라고 말했다. 그는 “목동이나 대치동에서는 ‘3한교육’이라고 해서 초등 때부터 한자·한국사·국어 논술 교육을 시킨다”며 교육 특구의 사교육 동향을 설명했다. 김씨는 “중·고교에 진학하면 한자 실력에 기반한 풍부한 어휘력을 갖춘 아이가 성적 상위권을 차지한다”며 “교과서 한자 병기를 통해 사교육이 아닌 공교육에서 한자 교육을 해주면 교육 기회 격차를 줄이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도 했다.

박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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