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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세월호 수중 수색 종료, 마무리 잘했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209일간 진행됐던 수중 수색작업이 종료됐다. 범정부 대책본부장인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세월호 수색작업을 중단한다고 11일 밝힌 것이다. 실종된 304명 가운데 295명의 시신이 인양됐다. 아직 시신으로도 돌아오지 못한 9명의 가족을 생각하면 수색 종료가 가슴 아픈 일이지만 기상 여건과 선체 상태 등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수색 종료는 실종자 가족이 아니면 입에 담기 힘든 문제다. 유족들의 참담한 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정부·정치권·언론이 먼저 수색 마무리를 거론하기 어려웠다. 아들·딸의 시신을 건져내지 못했는데도 수색 종료에 동의해 준 실종자 가족의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 현장에서 희생자 가족들과 슬픔을 같이하며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실종자 가족들의 결단을 이끌어낸 이 장관의 노력도 높이 평가한다. 지금까지 민·관 잠수사들은 7개월 가까이 목숨을 위협받으며 수색작업을 강행해 왔다. 바다에 가라앉은 선박에서 295구의 시신을 인양한 것은 세계 해난구조사에 드문 일이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게 됐다. 승객을 선실에 두고 혼자만 도망친 선장·선원, 돈에 눈이 멀어 안전은 뒷전으로 밀어버린 기업인, 수백 명이 탄 여객선이 눈앞에서 침몰하는데도 이들을 구해 내지 못한 구조당국, 위기관리 시스템을 가동하지 못한 청와대와 정치권 등 어느 곳 하나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세월호 진상규명과 사고수습을 둘러싸고 벌어진 진영 간 대결은 21세기 한국 사회의 공공성·시민성과 갈등해결 능력이 바닥 수준임을 드러냈다.



 세월호는 단순한 해난사고가 아니었다. 한국 사회를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눌 정도로 인식 지평에 심대한 영향을 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런 심각한 문제의식만큼 변화와 실천이 뒤따르지는 않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고양 시외버스종합터미널 화재, 판교 공연장 사고 등 안전불감증 사고가 줄을 이었다.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선박운항체계의 부실도 말끔히 거둬내지 못했다. 무엇보다 커다란 재난 앞에 우리는 단합하기보다는 찢어지고 갈라져 “네 탓”만 했다. 공존을 위한 탐욕의 절제라는 시민적 교양은 아직도 손에 잡히지 않고 있다.



 국회는 지난 7일 ‘세월호 3법’을 가까스로 통과시켰다. 마침 이준석 선장에게 징역 36년을 선고하는 1심 판결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내려진 수중 수색 종료 결정은 단순한 사고수습을 넘어 새로운 출발점이 돼야 한다. 우선 유가족들은 광화문 농성을 스스로 풀길 바란다. 실종자 가족들의 전원 동의로 수색 종료가 가능했던 것처럼 장외투쟁을 접고 세월호 3법 통과로 벌어지게 될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세월호 인양 문제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논의해야 한다. 그 무게는 천안함의 10배에 이른다. 이를 수중에서 해체하고 끌어올리려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걸린다. 이제부터는 단순한 애도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안전 대책을 수립해 깐깐하게 실천해 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참사와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허약한 공공성·시민성을 보완하는 데도 힘을 합쳐야 한다. 나의 욕심을 내려놓고 함께 사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 것이 300명 넘는 희생을 값지게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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