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노트북을 열며] 환자 괴롭히고 시장경제 모독하는 생보사

나현철
경제부문 차장
“암보다 보험사와 싸우기가 더 힘드네요.”



 넉 달간 보험사와 씨름한 끝에 겨우 보험금 5200만원을 받아 낸 김모(45)씨의 푸념이다. 김씨는 올 초 기관지폐포암(폐암) 초기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보험에 두 개 들어 있어 병원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싶었다. 한 보험사는 군말 없이 보험금을 내줬다. 그러나 다른 한 곳이 문제였다. 김씨의 병이 암이 아닌 상피내암이라며 암 보험금 6000만원의 일부인 800만원만 줬다. 암이 맞다는 의사의 소견서는 물론 ‘질병 해석은 통계청의 한국질병사인분류표에 따른다’는 약관도 무시했다. 김씨는 금감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해 겨우 보험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보험사에 대한 믿음이 싹 가신 건 물론이다.



 김씨는 그래도 나은 경우다. 한 해 금융감독원에 보험과 관련해 접수되는 민원이 4만 건이다. 보험금을 받게 해 달라고 내는 분쟁조정 신청도 한 해 2만 건이 넘는다. 대부분 약관 문제다. 분쟁조정에 진 보험사가 소송을 걸어 소비자를 지치게 하는 경우도 600건 이상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싸우다 지친 고객들이 중도 포기하기 십상이다. 최수현 금감원장이 특별지시를 내려도, 보험사들이 ‘소비자 보호 결의대회’를 해도 이 숫자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소비자 보호나 신뢰보다 보험금을 아끼는 데 보험사들이 더 관심을 두고 있다는 의심을 사는 이유다.



 반성해도 마땅찮을 판인데, 보험사들은 오히려 한술 더 뜬다. ING생명이란 곳에서 요즘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자살보험금을 못 주겠다고 행정소송을 냈다. 자살해도 재해보상금을 주도록 약관에 적혀 있는데, 실수였으니 못 주겠다는 것이다. 이 회사를 포함한 10개 보험사는 이미 민원인들을 상대로 채무부존재 민사소송을 낸 상태다. 현재 17개 생보사가 2647건, 2179억원 규모의 자살보험금을 안 주고 있다.



 어이가 없다. 계약을 부정하고 시장경제를 모독하는 행위다. 계약이 무엇인가. 시장경제의 헌법과 같다. 양자가 합의해 만들고 이행할 책임이 있다. 계약이 지켜지지 않으면 더 이상 시장이 아니다. 게다가 이 약관은 보험사 내부의 전문가들이 만들었다. 스스로 한 약속을 팽개치는 회사가 평생은커녕 잠시라도 고객을 위험에서 지켜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신뢰와 바꾸려는 2000억원이 그토록 절실한 금액인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25개 생보사가 거둔 이익은 2조8000억원 이상이다.



 보험사는 안 그래도 신뢰 위기를 겪고 있다. 예금이나 적금보다 훨씬 낫다며 잔뜩 받아 둔 저축성 보험 때문이다. 금리가 너무 낮아 운용수익이 안 난다. 최소 금리를 보장해야 하는 상품은 역마진 위험에 처해 있고 투자형 상품은 “원금이 언제 되느냐”는 고객 항의에 시달린다. 이런 상황에서 자살보험금 소송을 불사하는 건 누가 봐도 어리석은 선택이다. 보장성 보험은 보험사 최후의 보루다. 여기에서조차 고객 신뢰를 잃은 보험사에 설 땅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나현철 경제부문 차장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