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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비참하게 죽는 한국인

양선희
논설위원
돌아가신 내 할머니는 정신력이 대단한 분이었다.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은 당시 가톨릭 사제 교육을 받던 동생이 사제서품 받는 걸 보는 것이었다. 노환으로 입원했던 할머니는 의사에게 그때까지 1년만 더 살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의사는 “집에서 먹고 싶은 것 먹고 편히 계시라”고 말했다. 이에 할머니는 곧바로 소원을 내려놓았고, 주변을 정리하고, 곡기를 끊고, 기도를 했다. 그날도 할머니는 자식들과 함께 아침 기도를 마친 후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이는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내게 여러 사람이 들려준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내게 ‘품위 있는 죽음’을 맞는 태도에 대한 롤모델이다.



 어렸을 적에 어른들은 옛 어른들의 죽음을 회고하곤 했는데, 그들은 죽음이 가까워 오면 가족들과 마지막 식사를 한 후 곡기를 끊고 조용히 죽음을 맞았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다. 그때만 해도 나이가 들면 죽는 방법을 저절로 알게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의술이 발달한 지금 이런 자연스러운 죽음의 사례는 희귀해졌다. 삶을 연장할 수 있다는데 온갖 기계들이 몸에 들러붙은들 그걸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래서 품위 있는 죽음을 맞는 일은 현대인에겐 또 다른 도전이 되고 있다.



 최근 뇌종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던 미국인 새댁이 스스로 정한 날 안락사한 것을 보며 다시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는 안락사를 인정한 ‘존엄사법’을 시행하는 오리건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죽음을 결행했다. 이에 동조하는 여론과 이는 존엄사가 아닌 자살이라는 비난여론이 동시에 일었다. 또 일본의 한 도시에선 고령자들에게 ‘엔딩(ending) 노트’를 나눠준다는 소식도 눈길이 갔다. 미리 가족에게 전할 말을 적거나 의식을 잃었을 때 연명치료를 할 것인지 등을 적도록 한 노트다. 이 역시 논란거리가 됐다.



 이런 사례들의 옳고 그름을 따질 생각은 없다. 다만 외국에선 좌충우돌이라도 좋은 죽음을 준비하려는 사회적 움직임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게 의미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존엄사’ ‘웰 다잉’ 등의 여론은 때때로 일어난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품위 있는 죽음에 이르는 방법적 고민까지 발전하진 않는다. 우리나라 큰 병원엔 연명치료 병상은 있어도 죽음의 질을 관리하는 병상은 거의 없다.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대학병원급에서 호스피스를 하는 완화병동이 있는 곳은 가톨릭대 의대 서울성모병원 정도다.



 이용주 가톨릭대 의대 완화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말기 암환자의 호스피스 기간은 평균 18일”이라고 했다. 미국·유럽 환자들은 50~60일인 데 비해 한국인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도 짧고, 죽음의 질도 극도로 나쁘다고 했다. 그는 그 이유를 ‘강한 집착’에서 찾았다. 자식들은 치료에 집착하는 게 효(孝)라고 생각하고, 환자도 삶에 집착하는 게 가족에 대한 ‘의리’라고 생각하는 문화가 무의미한 치료를 지속시켜 지쳐서 생을 마감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데 묘하게도 오히려 삶의 집착을 버린 순간 병의 진전이 늦춰지고 수명이 연장되는, 의학적으론 설명할 수 없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이 교수는 기대여명 1개월 미만의 환자들이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와 통증 관리만 한 후 6개월~1년을 더 사는 모습을 여러 건 목격했단다. 우리 문화적 관념 속의 효·도리·의리 같은 것들이 좋은 죽음을 방해하고, 병원들도 이를 교정할 수 있는 좋은 죽음의 방법을 고민하지 않으니 삶과 죽음의 질은 점점 더 떨어지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삶에 발목 잡혀 사는 사람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하다. 죽음은 아무도 모른다. 개인이 알아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린 모두 잘 죽어야 한다. 이젠 정말 우리 사회가 말로만 ‘웰 다잉’을 외칠 게 아니라 좋은 죽음을 맞는 사례를 축적하고, 교육하고, 좋은 죽음의 환경을 마련하는 사회적 투자를 해야 할 때가 됐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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