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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대맛 라이벌] (33) 소갈비

쫄깃한 육질에 달콤한 양념. 맛은 기본이고 뜯어먹는 재미까지 있어 누구나 소갈비를 좋아하죠. 1940년대 중반 수원 싸전거리를 시작으로 50~60년대 부산, 70년대 수원, 80년대 서울 강남 등에 유명 소갈비집이 문을 열며 외식 메뉴로도 인기를 이어왔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두 집은 각각 40년과 60년 역사를 이어온 전통 있는 맛집입니다. 한 곳은 차별화한 서비스와 품질로 강남의 가든 시대를 열었고, 다른 한 곳은 신촌 일대에서 서민들과 함께 동고동락 해왔다죠.



해방 전부터 전통의 외식 메뉴



삼원가든은 문 열 때부터 직원이 직접 고기를 굽고 잘라줬다. 당시엔 흔치 않은 서비스였다. 이처럼 차별화한 서비스와 품질 좋은 고기로 40년간 대표 맛집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1위 신사동 삼원가든



●대표메뉴: 한우양념갈비(150g) 5만8000원, 한우생갈비(150g) 7만5000원, 불고기 3만5000원 ●개점: 1976년(시흥·길동을 거쳐 81년 지금 신사동 자리에 오픈) ●특징: 강남 한복판에 있지만 물레방아·초가집·연못·폭포 등 민속 조경을 한 한식당이다. 처음 문 열 당시부터 직원이 고기를 굽고 잘라주며 최고 서비스를 지향해왔다. 2000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비롯 대규모 행사를 여러 차례 열었다. 애니카 소렌스탐·하인스 워드 ·패리스 힐튼 등 해외 한국을 찾는 해외 유명인도 자주 들르는 대표 맛집이다. 대치동에 직영점이 있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 835(신사동 623-5) ●전화번호: 02-548-3030 ●좌석수: 1200석(룸 25개) ●영업시간: 낮 12시~오후 10시 (연중무휴) ●주차: 발레파킹(1000원)



삼원가든은 81년 신사동으로 식당을 확장, 이전하며 폭포·연못 등 정원 느낌을 살린 조경 인테리어를 했다. 이후 한우리·늘봄공원 등 강남에 가든 형태의 고깃집이 잇따라 문을 열며 고깃집 전성시대를 끌었다.


“가게 문 연 날 바로 다시 문을 닫았대요. 점심 때 손님이 왔는데 냉면은 다 불어 죽이 됐고 고기는 정말 맛이 없었으니까요. 경력자라고 속였던 초보 주방장이 그 길로 도망갔으니, 반나절 장사하고 문을 닫을 수밖에요.”



① 박수남 회장 아들인 박영식 부사장. 그는 외식업체 SG다인힐을 통해 투뿔등심 등 다양한 브랜드를 선보이고 있다. ② 고기 앞뒷면에 각각 사선으로 칼집을 내 고기를 연하게 만든다. ③ 81년 오픈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본관
 박영식 삼원가든 부사장(34)이 털어놓은 삼원가든의 시작은 의외였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까지 한국 대표 맛집으로 이름을 날리는 식당이 장사 첫날 맛이 없어 문을 닫아야했다니 말이다.



 40년 가까운 역사의 삼원가든 속사정을 30대의 젊은 경영인이 이렇게 잘 아는 이유는 그가 삼원가든 창업자인 박수남(67) 회장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1976년 서울 금천구 시흥동의 한 고깃집을 인수해 식당일에 뛰어들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가 아니다. 당시 평범한 월급쟁이였는데 우연히 택시를 타고 시흥동을 지나는 중에 나이 지긋한 택시기사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앞으로 이 동네에 사람이 몰릴 것”이라고 얘기했단다.



 회사를 그만두고 시흥동 상가를 찾아다니다 장사가 잘 안돼 내놓은 ‘삼원정’이라는 고깃집을 인수했다. 그러나 야심차게 시작한 장사 첫날, 잘못 뽑은 주방장 때문에 문을 닫게 된 거다. 이후 한 달여 동안 실력있는 주방장을 구하고, 또 함께 레시피를 연구해 다시 문을 열었다. 다행히 장사 첫날의 악몽은 씻은듯 사라졌다. 오히려 이번엔 고기 맛있다고 입소문이 나 장사가 잘됐다.



 박 회장은 그렇게 돈을 모아 79년 서울 강동구 길동에 ‘삼원회관’이라는 이름으로 더 큰 식당을 열었다. 당시 강남이 막 개발되기 시작할 때라 강남으로 눈을 돌리다 길동(※길동은 박 회장이 가게를 연 지 몇 달 만에 강남구에서 새로 신설된 강동구로 편입됐다)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음식은커녕 요리사 보는 눈조차 없던 박 회장은 시흥동에서 3년간 장사하며 내공을 쌓았다. 양념 비율이나 고기 품질까지 꿰뚫게 된 것이다. 박 회장은 가게를 이전하며 고기에 칼집 내는 법을 바꿨다. 이전까지는 가로로 일자 모양 칼집을 냈지만, 앞뒤면에 사선으로 칼집을 내니 고기가 전혀 질기지 않았다. 고기 양끝을 잡아늘리면 고기 칼집 사이로 작은 다이아몬드 모양이 보이는데, 이 사이로 양념이 잘 배어 육질이 연해지는 것이다.



 장사는 제법 잘됐지만 인근 상권이 더 발전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81년 길동 식당은 친척에게 맡기고 지금 삼원가든 본관이 있는 자리에 삼원가든을 냈다.



 “가게 인근에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와 한양아파트가 있잖아요. 거기 사는 사람들이 새장 안에 갇혀 사는 새처럼 보였대요. 그래서 이 손님들한테 도심 속 정원을 만들어 주겠다고 마음 먹고는 가게 앞에 폭포와 연못을 만들고 이름도 가든이라고 지은 거죠.”



 지금 삼원가든 위치는 강남 상권의 중심 중 하나지만 당시엔 밭밖에 없었다. 아무리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인근에 있다해도 주변 상권이 열악한 터라 지인들은 이곳에서 장사하겠다는 박 회장을 모두 말렸다. 게다가 기존에 200평(660㎡)에 불과했던 규모를 1000평(3300㎡)으로 키우겠다니 걱정을 할 만도 했다. 박 회장 친형은 “미쳤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박 회장 예상은 적중했다. 문 연 첫날부터 사람이 밀려들었다. 평소 못보던 독특한 컨셉트의 식당에 사람들 발길이 이어졌다.



 소위 말하는 ‘대박’은 9시 뉴스 방송을 타면서부터다. 문 연 지 몇 달쯤 지났을 무렵 한 지상파 방송 9시 뉴스가 삼원가든을 비판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최고급을 지향하는 식당 컨셉트는 물론 이곳을 찾는 고객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뉴스 화면은 가게로 들어서는 고급 차와 이탈리아에서 수입했다는 대리석 테이블 상판을 연신 비췄다. 박회장은 이 뉴스에 엄청 화가 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날부터 가게 매출이 몇 배나 껑충 뛰었다.



 박 부사장은 “당시 외식업종은 은행 대출 받기가 쉽지 않아 지인들에게 몇십만원, 몇백만원씩 되는대로 빌리고 사채까지 끌어와 어렵게 가게를 열었다”며 “돈 아끼려고 설계도 직접 했을 뿐 아니라 뉴스에서 비난했던 테이블 상판은 사실 지방에서 돌을 사와 직접 만든 거였다”고 했다.



 물론 뉴스 내용이 다 틀린 건 아니었다. 이때 지적한대로 삼원가든은 양에 비해 비싼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기존 고깃집과 다른 고급 식당 이미지를 만들려는 박 회장의 차별화 전략이다. 그리고 성공했다. 그러자 이듬해 한우리와 늘봄공원이 차례로 문을 열며 가든 형태 고깃집이 강남에 유행했다. 다른 고깃집이 수없이 문을 열어도 삼원가든 인기는 이어졌다. 손님이 계속 늘자 86년 본관 바로 옆에 신관을 열었다. 처음엔 신관에서 샤브샤브를 팔았다. 갈비 외에 다른 메뉴를 도전해본 것이다. 그러나 다들 갈비만 주문하는 통에 얼마 안 돼 샤브샤브는 메뉴판에서 자취를 감췄다. 94년엔 대치동 은마아파트 앞에 대치점을 열었다. 이렇게 규모가 큰 식당을 운영하면서 어려움은 없었을까. 그러나 다들 경기가 안 좋아 힘들었다던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오히려 외국인 고객이 늘어 장사가 더 잘됐단다.



 삼원가든 메뉴는 40년 가까이 변한 게 없다. 간장·마늘 등 기본 양념에 배를 넣는 양념 레시피 역시 그대로다. 다만 고객의 달라진 입맛을 고려해 당분 함량을 절반 정도로 낮췄다.



 삼원가든의 유명인 단골은 너무 많아 셀 수 없을 정도다. 고(故) 앙드레김은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와서 밥을 먹을 정도였고, 패리스 힐튼, 미식축구 스타 하인스 워드, 아키노 필리핀 전 대통령, 후쿠다 전 일본 총리 등도 다녀갔다.



 어린 시절부터 삼원가든을 ‘내 것’이라고 찜했다는 박 부사장은 뉴욕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다. 한국에 돌아와 2007년 SG다인힐이라는 외식기업을 세운 후 삼원가든과 별도로 투뿔등심·붓처스컷·꼬또 등 외식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론칭했다. 삼원가든이 전통을 지킨다면 SG다인힐은 트렌드에 발맞춰 변화를 꾀한다.



 “종종 삼원가든도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하는 게 아니냐, 이젠 좀 진부하다는 식의 얘기를 들어요. 맞죠. 솔직히 외식 브래드 생명은 길어봤자 5년이거든요. 그런데 삼원가든은 예외예요. 전통을 지켜왔고 지키는 게 맞아요. 100년 가는 식당을 만들 거예요.”





연남서식당은 아침에 그날 내놓을 고기를 손질해 간단하게 양념해 판다. 이대현 대표는 “질 좋은 고기를 쓰기 때문에 별다른 양념이 필요없다”고 했다.
서서 먹는 갈빗집, 60년 넘게 서서 먹었다오



3위 신촌 연남서식당

(연남서서갈비)




●대표메뉴: 소갈비 1만5000원(1대 1인분 기준) ●개점: 1952년 ●특징: 의자 없이 동그란 드럼통에 둘러 서서 갈비를 구워먹는 일명 ‘서서갈비집’의 원조. 6·25 전쟁 당시 집 앞마당에 군용 천막을 치고 연탄불에 고기 구워 팔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60년 넘게 이어지며 신촌의 명물이 됐다. 재개발·도로확장 등을 이유로 10번 넘게 자리를 옮긴 것 말고는 양념부터 고기 손질법, 연탄불, 메뉴까지 변한 게 없다. 당일 손질해 양념한 고기만 팔기 때문에 고기가 다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백범로2길 32(노고산동 109-69) ●전화번호: 02-716-2520 ●좌석수: 테이블 22개(의자 없음) ●영업시간: 낮 12시~고기 떨어질 때까지(명절 휴무) ●주차: 가게 옆 주차장(1시간 무료)



지난 10월 30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신촌 노고산지구대 건너편 골목 안. 시계를 1970년대로 되돌린 듯한 허름한 건물 앞에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40대 중년 여성부터 중국·말레이시아 등에서 온 관광객까지 연령과 국적은 각기 달랐지만 모두 한 식당, 그러니까, 연남서서갈비가 문 열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낮 12시가 되자 식당 직원이 가게 앞에서 기다리던 손님들을 자리로 안내했다. 솔직히 딱히 안내랄 것도 없었다. 각자 식당 안 원하는 드럼통(테이블) 앞에 자리 잡고 서서, 늘 해온 것처럼 익숙하게 겉옷을 벗어 가게에서 주는 비닐봉지에 웃옷을 넣고는 고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물론 단골도 많이 있고요. 요즘은 외국에서 온 손님이 많아요. 손님 절반이 외국인이예요. 재미있는 건 외국인들은 미리 인터넷에서 우리 가게를 찾아보고는 옷 넣어둘 수 있는 비닐봉지까지 따로 챙겨오더라고요.”



 이대현(74) 연남서서갈비 대표는 가게가 있는 노고산동에서 나고 자란 이곳 토박이다. 이 대표는 아버지 이성칠(1919~1990)씨가 처음 장사를 시작한 52년, 그러니까 12살 무렵부터 지금까지 60년 넘게 가게를 지키고 있다. 원래 아버지 이씨는 식당으로 출발한 게 아니라 채소 농사를 지어 남대문시장에 내다팔았다. 아내와 자식 넷을 낳고 가정을 이뤘지만 6·25 전쟁 당시 폭격으로 아내와 두 딸을 잃었다. 그러다 52년 먹고 살 궁리를 하던 끝에 집 앞 마당에 군용 천막을 치고 연세대 앞 신촌양조장에서 술을 가져다 한 잔씩 잔술을 팔았다고 한다. 당연히 변변한 테이블이나 의자가 있을리 없었다. 양조장에서 구해온 커다란 술통을 테이블 삼아 장사했다. 이름도 없었다. 손님들은 이씨 고향을 따 김포집으로 부르거나 그저 실비집이라 불렀다. 고기 굽는 불은 식당 주변에 석탄을 쌓아두는 하차장 인근에 떨어진 석탄가루를 뭉쳐 연탄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장남인 이 대표는 학비조차 내기 어려운 가정 형편이라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아버지를 도왔다.



연남서식당은 의자가 없는 게 특징이다. 드럼통 앞에 서서 고기를 구워 먹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홀아비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었겠어요. 푸줏간에서 고기 사다 왕소금 뿌려 판 거죠. 인근 공사판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밥 대신 술과 고기로 속을 채우고 갔어요.”



 워낙 술을 좋아했던 이씨는 오전부터 동네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점심 시간이면 이미 취해있기 일쑤였다. 결국 장사는 아들 이 대표 몫이었다. 어린 나이에 골치 아픈 손님 외상 문제까지 해결해야 했다.



 “다들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이잖아요. 보릿고개도 있었죠. 가을 수확하기 전까진 다들 돈이 없어서 겨울에 먹은 걸 그 다음 가을에 주곤 했어요. 90%가 외상 손님이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도 양조장에서 외상으로 술을 가져왔는데 제때 술값을 주지 못해 내가 보는 앞에서 양조장 주인한테 뺨을 맞은 적도 있어요.”



 장사가 어려웠지만 접을 수는 없었다. 전쟁통에 농사지을 땅을 구하기 어려웠기에 아무리 어려워도 차라리 장사하는 게 나았기 때문이다. 53년 휴전 후 이씨는 신촌로터리 대로 앞(현 우리은행 자리)으로 가게를 옮겼다. 그러나 경찰이 무허가라며 집기를 다 걷어가는 통에 3년 만에 지금 노고산파출소가 있는 큰 길가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제대로 된 가게 형태를 갖춘 건 72년 즈음이다. 지금 가게가 있는 큰 길가에 방 2개 달린 73㎡(22평)짜리 집을 얻었고 집 지붕에 천막을 이어 붙여 박스 형태의 공간을 만들었다. 19㎡(6평) 남짓한 이 자리에 드럼통 6개를 놓고 장사를 시작했다. 이 대표는 “당시엔 네 자리 내 자리 구분 없이 어깨만 끼어넣을 수 있으면 파고 들어가 고기를 구워먹었다”고 추억했다.



 고기가 주메뉴가 된 건 이무렵이다.



 “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다들 조금씩 먹고 살만해졌어요. 부자도 많이 생겨났죠. 전에 술만 마시던 사람들이 고기를 찾더라고요. 원래 우리집은 술 한 병에 갈비 한 대를 묶어 팔았는데 손님들이 왜 사장 마음대로 파냐고 항의하길래 고기를 메뉴로 따로 떼 팔기 시작했어요.”



 손님을 모은 데에는 사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전화다. 통신 상황이 열악해 전화기가 드물던 70년대 이 가게엔 전화가 있었다.



① 고기 힘줄을 제거해질기지 않다. ?② 80년대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③ “연탄불이 꺼지면 가게가 망한다”는 속설을 믿기에 이 대표는 가게에 나오면 연탄부터 간다.


 “70년대 지금 홍대앞은 솔밭이었어요. 그때 이 주변이 개발되면서 집들을 짓기 시작했죠. 집 지을 때 필요한 목재소와 철물점 등이 생겼고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고기 먹으러 많이 왔어요. 그러면서 전화로 신촌의 서서먹는 갈비집으로 오라고 다른 손님을 더 부른 거죠. 전화가 있으니 일종의 사랑방 역할을 하게 된 거예요. 이때부터 가게 이름이 서서갈비가 됐어요. 가게 이름을 손님들이 지어준 셈이죠.”



 이 가게의 정식 이름은 연남서식당이다. 이 대표가 79년 서서갈비로 상호 등록을 하려 했지만 누군가 이미 등록한 상태라 할 수 없이 이 대표가 살던 연남동에 서서갈비의 ‘서’자를 붙여 연남서식당으로 정했다. 이 가게가 인기를 끌자 서서갈비라는 이름의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심지어 같이 일하던 직원이 나가 따로 차리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집은 모두 그리 오래 가지 않아 문을 닫았다. 원조 맛을 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솔직히 특별한 비결은 없어요. 옛날 서울 사람들이 석쇠에 구워먹던 불고기 양념 그대로예요. 간장·마늘·설탕·통깨·참기름·후춧가루 7가지가 전부죠. 간단하니까 맛있는 거예요. 손님들은 소고기 먹으러 오잖아요. 다른 데 가면 열 몇가지, 스물 몇가지 양념 넣었다고 하는데 그건 소고기가 아니라 소세지 아닌가요.”



 연남서식당은 매일 아침 그날 판매할 고기를 손질하고 양념한다. 별다른 숙성 과정이 없다. 대신 고기를 손질할 때 힘줄과 기름을 잘 제거한다. 이게 고기가 연한 비결이다. 고기는 딱 하루치 정해놓은 분량만 팔기 때문에 다 떨어지면 가게 문을 닫는다. 그래서 어쩔 땐 오후 7시에 가도 헛걸음을 하기도 한다.



 이 대표가 고기질(質)만큼 신경쓰는 건 바로 연탄불이다. 가게가 문을 닫은 시간에도 연탄불을 켜놓는 것은 물론 매일 새벽 가게에 나와 연탄을 간다. ‘연탄불이 꺼지면 망한다’는 옛 속설을 믿기 때문이다.



 모두가 편한 걸 찾는 요즘, 의자를 놓을 생각은 혹시 없을까. 하지만 이 대표는 단번에 “그럴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민 간 손님이 몇십년 지나 아들 데리고 한국에 놀러와서 명동이랑 남산 등 유명한 곳에 다 데리고 갔는데 아들이 시큰둥하더래요. 그런데 우리집 갈비를 먹고는 ‘여기가 한국’이라고 했대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앞으로도 예전 그대로 이어갈 거예요.”





1·3위 어떻게 선정했나



江南通新은 레스토랑 가이드북 『다이어리알』 이윤화 대표와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배한철 총주방장, 롯데호텔 무궁화 천덕상 셰프, 더플라자 허성구 총주방장, 맛집 파워블로거(비밀이야) 배동렬씨, 『주식9단 서울맛집 유랑』 저자 이영승씨의 추천을 받아 6개 식당을 후보로 추렸습니다. 이후 후보 식당 6곳을 10월 8일자 江南通新에 공지한 후 일주일 동안 독자투표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삼원가든과 벽제갈비가 각각 1,2위로 뽑혔습니다. 그러나 2014년 2월 26일자 ‘맛대맛 라이벌’ 돼지갈비편에서 벽제갈비 계열사인 봉피양이 1위를 차지해 소개된 바 있어 3위인 연남서서갈비(연남서식당)를 소개합니다.





글=송정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라이벌 (34) ‘매운탕’ 결과는 11월 19일 발표합니다.



현재 진행 중인 ‘간장게장’ 투표는 온라인 江南通新(joongang.co.kr/gangnam)에서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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