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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태조 이성계와 동북아의 ‘체스판’

동북아시아의 ‘체스판’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야당인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석권함에 따라 오바마 대통령의 권력누수(레임 덕)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은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존재감을 높이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경향이 있다.

중국과 일본도 이러한 판세를 읽고 2년 6개월 만에 베이징에서의 중일 정상회담 개최에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더 이상 중국과 외교적 파행을 지속할 수 없고, 중국은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호스트 국으로 경색된 중일관계를 풀어내는 출구로서 다자 회담의 기회를 이용한 것 같다. 미국은, 남북한의 고위급 접촉이 무산된 가운데 북한에 국가정보국장(DNI)을 특사로 파견 오바마 친서를 전달하고 억류 미국인을 석방시켰다.

11월10일자 국내 주요언론은 “돌파구 열리는 북-미, 중-일 관계 지켜만 볼 것인가”, “미.북 접근과 중.일 정상회담, 한국외교는 어디 있나” 라는 사설을 통해 급변하게 움직이는 체스판을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 ‘시대의 판’을 정확히 읽어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외교적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The Annals of King T’aejo'라는 책이 미국 하바드 대학에서 출판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14세기 원명(元明) 교체기에 동북아시아의 체스판이 심하게 흔들리는 세력전이(power transition)의 혼란기가 있었다. 이 때 ‘무(武)’로써 입신하여 젊은 ‘문(文)’의 사대부와 함께 ‘시대의 판’을 정확히 읽은 사람이 있었다. 새로운 왕조 조선을 건국, 세계에서 유례없는 500여년의 장기 왕조를 만들어 낸 이성계라는 인물이다. 이 책은 태조 이성계와 그의 선조들의 이야기가 기록 된 태조실록의 영역본이다.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영문 원서를 통해 세계의 학자들은 태조 이성계와 그의 가족사를 읽고 오늘 날 다시 긴박하게 변화해 가는 동북아시아의 체스판 속에서 한국의 외교 전략을 지켜 보고 있을 것이다.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본관이 전주이다. 그의 직계 선조 이인(李璘)은 신라시대 사공(司空 장관)을 지낸 이한(李翰)의 후손이다. 이한이 태종 무열왕의 후손과 결혼 전주에 자리 잡은 이후 대대로 전주 호족으로 대우 받았다. 이인은 고려조 무신 정중부와 함께 정변을 일으킨 이의방의 친동생이다. 당시 권력자 김부식의 아들이 정중부에게 횡포를 부린 일로 무신들이 분개하여 난을 일으켜 의종을 폐위시키고 명종을 내세워 정권을 잡았다. 이의방이 부귀와 권세를 누리고 정치를 어지럽히자 정중부의 아들에게 살해되고 이인도 개경에 있을 수 없어 고향 전주로 내려간다.

태조실록에서 목조로 나오는 이성계의 고조부 이안사(李安社)는 이인의 손자이다. 이안사는 “관기(官妓)사건”에 휘말려 체포되기 직전 가솔과 추종자들을 데리고 멀리 외가가 있는 동해안 삼척으로 이주한다. 삼척에서 왜구의 격퇴 등 공을 세우고 조정의 요청으로 원(元)의 공격을 막기 위해 함경남도 의주(원산)로 이주한다.

이안사의 무술과 덕망에 따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원의 장군 산지(散吉)는 이안사를 회유 귀화시킨다. 이안사는 산지의 설득에 따라 원의 벼슬을 받는다. 원은 귀화인 이안사에게 원의 조정을 대신하여 현지인을 감독하는 다루가치(overseer)로 임명한다.

고려는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하고 팔만대장경을 조판하여 항쟁하지만 원종은 결국 항복하고 고려는 원의 지배에 들어간다. 그의 아들이 원에 충성을 다한다는 의미의 충렬왕이 된다.

이안사가 죽자 그의 아들 이행리(李行里)에게 다루가치의 벼슬이 승계된다. 이행리는 여몽 연합군의 일본정벌에도 참여하고 충렬왕을 알현하는 등 왕실과도 관계를 맺는다. 그의 아들 이춘(李椿)은 충숙왕으로부터 물품을 하사받기도 한다. 이춘이 죽자 그의 아들 이자춘(李子春)은 다루가치 벼슬을 습직한다.

이자춘은 중국 전역에서 홍건적의 반란이 일어나고 원의 세력이 예전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마침 원에서 인질로 지내던 충숙왕의 아들 공민왕이 대도(북경)에서 결혼한 노국대장공주와 함께 귀국하였다. 노국대장공주는 원의 황족의 딸이지만 어머니는 중국의 명문 공자의 후손이라고 한다. 노국대장공주는 원의 한림학사로 있는 공소에게 원에서 희망이 없음으로 고려로 같이 가도록 부탁했다. 공소 역시 원의 앞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고려에 귀화하여 공민왕과 함께 고려의 독립을 도왔다.

공민왕은 친원파의 구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신진사대부 양성의 필요성을 느끼고 성균관을 세우고 주자학의 새로운 학풍을 불어 넣었다. 공민왕은 사후 충렬왕이후 충선 충숙 충혜 충목 충정 등 6명의 ‘충(忠)’자 돌림의 왕 이후 처음으로 ‘충’자 없는 왕의 시호를 받게 된다.

이러한 공민왕의 반원 개혁정책을 지지하는 이자춘은 원의 직할지인 쌍성총관부(영흥)를 탈환한다. 공민왕의 권유로 고려의 국적을 회복한 이자춘은 왜구와의 전투에도 승리하여 왕으로부터 수도 개경에 저택을 하사받는다. 이성계는 아버지 이자춘의 뜻을 이어 받아 공민왕의 개혁에 반발하는 권문세족의 난을 진압하고 홍건적 여진 왜구와의 전투에 매번 승리한다.

이성계의 활약으로 공민왕은 탈원(脫元)의 안정적 기반을 이루지만 정치적 동반자 노국대장공주의 죽음에 삶의 의미를 잃게 된다. 노국대장공주의 명복을 빌기 위해 불사(佛事)에 전념하고 정사는 승려 신돈에게 맡긴다. 그의 아들 우(禑)는 신돈의 노비출신 반야와 관계하여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은 몽고고원으로 쫓겨 가고 중국은 주원장이 세운 명(明)이 지배한다. 명은 과거 원의 고토를 인수한다하여 고려의 철령 이북의 지역의 반환을 요구하자 어린 우왕의 섭정 이인임 등 집권세력은 명의 요청을 거부하고 친원 정책을 견지하여 친명 개혁세력을 추방하였다.

탐학과 부패를 일삼는 이인임 권문세력의 대외정책에 반대하는 정몽주 정도전 등 신진사대부들은 위화도 회군을 일으킨 당대의 영웅 이성계를 내세워 재위 14년의 우왕을 폐하고 그의 어린 아들 창(昌)을 새로운 왕으로 세운다. 창왕은 귀양중인 아버지 우왕과 모의 이성계와 대립하자 이성계는 재위 1년여의 창왕을 폐하고 신종의 후손인 공양왕을 세운다. 정도전 이방원 등 이성계일파는 공양왕을 중심으로 고려를 재건하려는 정몽주를 살해하고 결국 재위 3년의 공양왕의 양위를 받아 신왕조 조선을 건국한다.

이러한 조선조 건국을 배경으로 하는 태조실록이 포함된 조선왕조실록이 1997년10월1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지정 되었지만 한문을 모르는 세계의 학자를 위해 호남대학교 최병현 교수가 4년에 걸쳐 영역을 하여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최 교수는 이에 앞서 류성룡의 임진왜란 7년의 ‘반성일기’인 징비록 (The Book of Correction)과 정약용의 행정관(목민관)의 매뉴얼(업무지침서)인 목민심서(Admonition on Governing the People)를 영역하여 우리의 역사를 서양에 알리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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