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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개월 만에 입 연 식물인간 이병 "선임들이 각목 구타"



지난해 9월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던 20대 환자가 눈을 떴다.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지 1년7개월 만에 의식을 되찾은 것이다. 환자는 2012년 2월 자대에 배치된 지 19일 만에 뇌출혈로 쓰러졌던 구모(22) 이병이었다. 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밤낮없이 간병해온 어머니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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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이병의 의식이 돌아왔지만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지기까지는 또다시 1년이 걸렸다. 구 이병의 더듬거리는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선임병들에게 구타를 당해 쓰러졌다.” 군으로부터 ‘선천적인 기형으로 인한 뇌출혈’이란 설명을 들었던 가족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얘기였다.

 구 이병이 뇌출혈을 일으킨 건 2012년 2월 18일. 사고 다음날 군 헌병대가 작성한 ‘중요 사건보고’에 따르면 구 이병은 오전 7시 기상해 아침식사를 마치고 취사 지원을 나갔다. 그리고 생활관으로 복귀한 후 오후 1시쯤 건물 1층에 있는 오락실에서 동료 병사와 함께 게임을 했다고 기재돼 있다. 쓰러지기 직전까지 구 이병이 별다른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후 3시 생활관으로 복귀한 구 이병이 갑자기 “아,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프지…”라고 혼잣말을 했고 “많이 아프냐”는 동료 병사의 물음에 아무 대답도 없이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두 시간 후인 오후 5시쯤 “아” 소리를 지르며 생활관에서 35m 떨어진 화장실로 뛰어가 구토를 했고, 의식이 혼미해져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게 군 헌병대의 사건보고 내용이었다.

 군은 해당 보고서에 구 이병이 쓰러진 이유를 ‘뇌동정맥 기형에 의한 뇌출혈’이라고 명시했다. 뇌동정맥 기형은 선천적인 발달 이상으로 동맥이 모세혈관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정맥으로 연결되는 일종의 혈관 기형이다. 또 외상 여부에 대해서는 보고서에 어떤 언급도 없었다.

 그러나 2년7개월 만에 입을 연 구 이병은 군 조사 결과와 완전히 다른 증언을 했다. 구 이병의 가족에 따르면 그는 사고 당시 상황과 자신을 구타한 선임병들의 이름과 계급부터 구타당한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취사 지원이 끝난 후 선임병 7명이 자신을 생활관에서 약 300m 떨어진 창고 뒤쪽 으슥한 곳으로 불러냈고 다짜고짜 각목으로 뒷머리를 구타했다는 것이다. 구 이병은 “각목으로 맞은 다음 정신을 잃었고, 생활관으로 옮겨진 뒤 잠깐 의식이 돌아왔지만 이후 다시 의식을 잃었다”고 했다. 건국대 박의우(법의학) 교수는 “매우 희귀하긴 하지만, 식물인간 상태는 뇌사 상태와 달리 자연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며 “기억도 온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 이병 가족들은 “군이 구타 사건을 은폐하고 사고로 처리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가족들은 “사고 후 머리 뒤쪽에 외상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구타가 있었던 건 아닌지 의혹을 제기해왔다”며 “그러나 군은 단순히 ‘욕창’이라고만 할 뿐 정확한 원인을 조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군 관련 사고를 주로 맡아온 한 변호사는 “전날 가족들과 통화할 때까지도 멀쩡했던 병사가 식물인간이 됐는데도 구타나 가혹행위 가능성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면 가족들로선 군이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쓰러진 구 이병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사고 후 병원 후송이 지연되는 등의 문제도 추가로 제기될 수 있다”고 했다. 구 이병이 구타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시간과 군이 보고서에 기재한 병원 후송 시간 사이에는 네 시간가량 차이가 있다.

 현재 가족들은 형사소송을 준비 중이다. 구 이병이 가해자로 지목한 병사들은 이미 전역을 한 상태로 고소가 이뤄지면 군이 아닌 경찰·검찰의 조사를 받게 된다. 구 이병의 부모는 “아들이 쓰러진 이유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아서 청와대 신문고와 인터넷 게시판 등에 글을 올리고 국가인권위원회 제소도 했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며 “이제 아이가 의식을 회복하고 정확하게 구타를 당한 사실을 얘기하고 있는 만큼 형사소송을 통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당시 구타·가혹행위 여부를 비롯해 사고 원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실시됐다”고 해명했다. 또한 “병원 후송 뒤 머리 뒤쪽에 붉은 멍이 발견됐지만 욕창으로 판단된다는 담당 의사의 의견에 따라 사고로 결론을 내렸고, 구 이병의 가족들도 당시 이를 납득했었다”고 말했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가해자로 지목된 당시 선임병들은 구 이병의 ‘구타’ 증언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들은 구 이병 측을 무고죄로 맞고소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윤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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