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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 눈을 피해라! 직장인들의 인터넷 딴짓 백태(百態)



툭 터놓고 이야기해보자. 사무실에서 단 1분 1초도 딴짓을 안 하는 직장인이 있는가? 때로는 딴짓이 따분한 업무시간에 사원들의 업무 효율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작은 활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업무의 효율성을 책임지고 조직을 관장하는 상사의 입장에선 직원들의 딴짓은 업무태만으로 감시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으로도 게임이나 주식 트레이딩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앱)이 등장하고,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직장마다 부하직원과 상사 사이에는 쫓고 쫓기는 ‘밀당’이 계속된다. 자신의 사생활을 감쪽같이 감추기 위한 첨단 위장술이 등장하고, 그것을 색출해내기 위해 상사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는 직장 내 풍속도를 소개한다.

엑셀파일 눈속임 메신저 프로그램

직장생활 3년 차 유 대리(31)는 나른한 오후 열심히 엑셀 작업을 하고 있다. 평소 점심식사 후에는 꾸벅꾸벅 졸기 일쑤던 그가 오늘따라 그토록 열심히 일하는 건 생소한 모습이다. ‘어제 영업이익 데이터를 정리하라고 시켰지.’ 이 과장은 작업에 열중인 유 대리가 기특하기만 하다. 전날 회식할 때 싫은 소리를 했던 게 괜시리 미안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유씨는 실은 엑셀 프로그램처럼 보이는 메신저를 통해 열심히 상사의 뒷담화를 하고 있는 중이다. 웃지 못할 풍경이다.

카카오톡 PC버전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의 엑셀 시트 버전의 채팅방 배경을 제공한다. 화면에는 대화하는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이 보이지 않는 데다, 엑셀 시트의 줄에 맞춰 대화 내용이 입력되기 때문에 감쪽같이 엑셀 문서작업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카카오톡 엑셀 스타일은 ‘더보기→ 설정→채팅방 설정’에서 바꿀 수 있다. 채팅창 오른쪽 하단의 바로 투명도까지 조절을 할 수 있다.

카카오톡 엑셀 버전에서는 대화창에서 본인이 입력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노란색으로 보인다. 또한 이모티콘까지는 숨겨지지 않는다. 눈치 빠른 상사라면 쓸데없이 엑셀 작업에 열중인 직원들이 있다면 한 번쯤 이를 의심해보라. 만약 엑셀 파일의 중간중간에 노란색 줄과, 익숙한 카카오톡 이모티콘이 있다면 당신의 직원은 지금 메신저를 통해 당신의 뒷담화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신입사원 최모(26) 씨는 별다른 업무가 없는데도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 아직 주어진 업무에서투르다 보니 딱히 할 일도 없는 날이 많다. 사무실에 있는 선배들은 모두 바쁜데 딴짓을 하자니 눈치가 보인다. 그런데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동기 김모 씨는 뭔가 그래프를 작성하느라 바쁜 표정이다. 무료한 최씨는 일이 있는 김씨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지만 사실 김씨는 30분 전부터 게임 삼매경에 푹 빠져 있는 중이다. 사무실의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감쪽 같다.

문서작업처럼 비치는 게임도 등장

‘딴짓 놀이터’는 엑셀·PPT·워드 파일로 위장해 페이스북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해외 사이트 ‘캔트유시아임비지(Cantyouseeimbusy.com)’에서는 업무용 프로그램으로 가장한 킬링타임용 게임 4종을 무료로 제공한다. 게임을 하고 있어도 영락없이 도표를 작성하거나 그래프를 그리는 것처럼 보인다.

‘코스트 커터’는 연속된 같은 색깔의 그래프가 나타나면 클릭해서 점수를 따는 게임이다. 여러 가지 사무실 도표 모양의 게임 배경을 골라 흡사 분기 실적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크래시 플래닝’은 엑셀 표를 작성하는 척하며 할 수 있는 게임이다. 같은 색깔의 엑셀 블록이 세 개 이상 뭉치도록 조정하면 그 블록들이 사라지면서 점수를 얻는다. 모바일 게임 애니팡에서 같은 동물들끼리 붙여 없애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그래프 상에서 마우스 크기의 우주선을 조종하는 선장이 될 수 있는 ‘리더십’ 게임도 직장인들 사이에 인기 있는 게임이다. 우주선이 그래프의 숫자와 충돌하거나 연료가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키패드로 조종한다. 타이핑 작업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MS 워드프로세서처럼 생긴 배경에서 작은 공으로 텍스트를 지워 없애는 ‘브레이크 다운’ 게임도 있다. 자신의 점수와 레벨까지 확인할 수 있어 업무시간 중 같은 게임을 즐기고 있는 전 세계의 직장인들과 순위를 겨루기도 한다.

따로 지시한 일도 없는데 몇 시간 내내 그래프 만들기에 골몰하고 있다면 상사는 한 번쯤 모니터를 자세히 들여다보라. 눈썰미 있는 상사라면 워드 파일에 떠다니는 작은 공이나, 그래프 사이로 새끼손톱 크기의 로켓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론 이 게임에는 이런 비상상황에 대비한 장치도 마련돼 있다. 누군가가 접근하면 눈을 피하기 위해 스페이스 바를 한 번 누르면 끝이다. 그러면 게임이 중단되고 스프레드 시트 배경에서 감쪽같이 공이나 로켓이 사라진다. 스페이스 바를 한 번 더 누르면 하고 있던 게임이 다시 복원되는 식이다.

페이스북 활동도 워드 파일로 위장

‘생산적인’ 딴짓은 사원들의 업무 집중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구글코리아 직원들이 사내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포켓볼을 치고 있다.


KT는 2011년 올레닷컴 홈페이지에서 ‘딴짓 놀이터’라는 프로그램을 제공한 적이 있다. ‘딴짓 놀이터’는 마치 엑셀이나 워드 파일을 작성하는 것처럼 위장해 페이스북을 즐길 수 있는 서비스다. ‘딴짓 놀이터’는 페이스북 계정에 연동된다. 서비스를 실행하고 페이스북 계정에 접근 권한을 주면 맘 편히 SNS를 시작할 수 있다. 이때 페이스북 화면은 엑셀·PPT·워드 등 세 가지 형태로 제공돼 위장을 돕는다. 영락없는 문서 서식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화면을 살펴보면 페이스북 담벼락임을 알 수 있다. 친구의 상태 업데이트도 볼 수 있고 뉴스피드부터 알림 표시까지 페이스북의 기능을 대부분 이용할 수 있다. 담벼락에 사진을 올리거나 댓글을 달 수도 있다.

‘딴짓 놀이터’에서는 그 밖에도 윈도우 탐색기 속으로 문서를 검색하는 척하면서 트윗을 칠 수 있는 ‘몰래 하는 트윗’도 가능하다. 문서 서식 형태의 화면에 뚫린 구멍을 통해 동영상, 웹툰 등을 감상할 수 있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페이스북·트위터 등 SNS를 자주 사용하는 20~30대 직장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단기 프로모션 행사용이라 현재는 지원되지 않는다.

회사원 박모(32·여) 씨는 안타깝게도 사무실 바로 뒤에 상사가 앉아있다. 잠시라도 딴짓을 할라치면 파티션 너머로 흘끔흘끔 쳐다보는 상사의 시선이 뒤통수에 꽂히는 것 같다. 박씨는 이런 감시체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 전 특단의 대책을 강구했다. 역으로 상사를 감시하기 위해 모니터용 백미러를 구입한 것이다. 백미러 각도를 조정하면 뒤차의 접근을 파악하는 자동차 백미러와 똑같은 원리로 상사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다. 컴퓨터 모니터 측면에 작은 사이즈로 붙여서 사용할 수 있어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가격은 1만∼3만 원선. 제아무리 꼼꼼한 상사라도 웬만해서는 모니터 옆에 장식용처럼 붙어 있는 이 작은 백미러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상사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박씨는 거울을 보는 용도로 쓰는 척 가끔 백미러를 잡고 화장을 고치기도 한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보는 각도에 따라서 투과율이 다른 모니터 보안필름도 인기를 끈다. 이 필름을 붙이면 정면에서 가까이 보는 사람만이 모니터를 제대로 볼 수 있을 뿐 주변에서는 컴퓨터 화면을 전혀 볼 수가 없다. 좌우로 30도 이상 벗어나거나 멀리 떨어져 있으면 화면이 어두워 보이지 않거나 화면이 검게 보이는 식이다. 5만~10만 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 딱히 중요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사내 보안을 위한 것’이라고 변명을 늘어놓지만, 몇몇 상사는 되려 의심의 싹을 틔운다. 하지만 최근에는 보안필름을 사용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적발 가능성이 커졌다.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는 컴맹이라도 동료직원이나 상사의 눈을 피하기 위해 단축키를 익혀두는 직장인도 있다. 회사원 김모(32·여) 씨는 업무시간에도 평소 모니터에 두 개의 인터넷 창을 띄워두는 것이 보통이다. 하나는 업무용 창으로 쓰고, 나머지 하나는 온라인 쇼핑을 하거나 뉴스를 보는 딴짓용 이다. 주변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그는 재빨리 ‘Alt+Tab’ 을 누른다. 그럼 인터넷 창이 업무용 화면으로 전환된다.

하지만 Alt+Tab 단축키는 웬만한 직장인은 대부분이 아는 ‘고전’에 속해 상사들을 속이기도 쉽지 않다. 상사들 중에는 직원들의 책상으로 다가갈 때 그들의 손놀림만으로도 그 사실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 요즘은 이 같은 현장 포착을 피하기 위해 ‘더블모니터’라 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나왔다. Alt+Tab 외의 단축키를 사용해서 화면전환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꼼꼼한 상사들이라면 직원들의 작업표시줄을 유심히 살피곤 한다. Alt+Tab이나 더블모니터로 작업전환을 하더라도 화면 하단의 작업표시줄까지 숨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작업 표시줄에 온라인 쇼핑몰이나 스포츠뉴스 창버튼이 있으면 딱 걸린 거다. 놀랍게도 요즘은 이런 상황에 대비한 프로그램도 나왔다. F2키 하나만 누르면 바탕화면이나 작업표시줄에서 모든 창을 깨끗하게 감춰주는 ‘보스키’라는 프로그램이 등장한 것이다. 이쯤 되면 영화 <캐치 미이프 유캔>에 버금가는 쫓고 쫓기는 각축장이다.

‘생산적인’ 딴짓 허락하는 기업들

이들 직장인의 마음 한구석이 찔릴 만한 통계가 있다. 잡코리아 좋은일연구소가 2013년 전국 직장인 남녀 61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다. 이 조사에서 우리나라 직장인의 97.1%가 ‘업무시간 중 딴짓을 한다’고 답했다. 회사에서 딴짓을 하는 이유를 복수로 묻자 ▷나름의 휴식이다(67.2%) ▷ 업무가 손에 안 잡혀서(34.2%) ▷시간이 남아서(26.2%) ▷ 업무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16.3%) 등의 답변이 나왔다.

모든 일이 그렇듯 딴짓 프로그램의 남용은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조직의 업무 효율의 저하다.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채모(27) 씨는 “확실히 딴짓 프로그램을 쓰면 눈치를 덜 보게 되니까 업무의 밀도가 낮아진다. 회사에도 본인에게도 마이너스가 된다”라고 말했다. 직장 내에서 개인의 신뢰도 하락을 부를 뿐만 아니라 야근의 누적을 부르기도 한다. 비효율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몇몇 기업은 사원들의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특단의 방법을 쓴다. ‘비생산적인’ 딴짓을 막기 위해 업무시간에 ‘생산적인’ 딴짓을 권장하는 것이다.

구글코리아에서는 수면실·탁구대·게임기 등 휴식에 필요 한 모든 것을 비치해 놓고 ‘업무 시간의 20%를 딴짓에 써도 좋다’는 ‘20% 프로젝트’를 시행한다. 이 회사의 직원인 공우석 (가명·30) 씨는 “자유시간이 충분히 보장되니 오히려 업무 집 중도가 높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매분기 스스로 목표를 정해놓고 결과물을 내면 되는 시스템이라 쉴 때는 쉬는 것도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직원이 행복한 회사’를 표방하는 제니퍼 소프트에는 회사 내에 수영장을 설치해놓았다. 직원들이 눈치를 볼까 봐 아예 근무시간에 틈을 내서 수영을 즐기도록 권장한다. 직장문화 서비스 오피스N의 이윤진 팀장은 “직원들로 하여금 업무의 집중도를 높이고 애사심을 갖도록 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딴짓용 프로그램이 남용되는 세태는 기업문화의 변화를 부르기도 한다. 직장인의 업무 집중도가 떨어지는 이유 중에는 과도하게 많은 근무시간이나 상습적인 야근 등이 이유로 꼽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고용노동부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주간 근로 시간은 OECD 34개국 중 멕시코에 이어 2위로 나타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8 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직장인들이 근무 시간 외의 야근이나 과도한 노동시간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로 딴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돌아볼 일이다.

윤재원 월간중앙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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