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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550> 미식의 뿌리, 그리고 한식

전수진 기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것. 이것이야말로 현대인들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치유 행위다.” 슬슬 군침이 돈다면 여러분은 일본 만화 ‘고독한 미식가’의 팬임에 틀림없습니다. ‘미식’이 일상화된 오늘, 미식으로서의 한식은 어디쯤 와있을까요. 한식을 세계화한답시고 무작정 달려들기 전에 미식이란 무엇인지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미식의 탄생과 뿌리를 짚어봅니다.


여기 1인당 1만2600엔(약 12만3300원)인 돈까스 정식이 있다. “돈까스에 금가루라도 뿌렸나. 왜 이렇게 비싸?”라고 묻는다면 미식의 세계에선 우문(愚問)이다. 미식가들은 이렇게 묻는다. “무슨 돼지고기를 써서 어떤 비밀 레시피로 요리했길래 그럴까.”

 그렇다면 주인장은 ‘뭘 좀 아는 손님’에게만 보여주는 미소로 이렇게 답할 터다. “세계 각지 돼지고기를 조리해보니 (일본) 가고시마 현의 흑돼지와 (스페인) 이베리코 지방에서 도토리만 먹여 키운 돼지가 저희가 추구하는 돈까스의 맛에 맞더군요. 저희가 몇 년간 연구한 끝에 터득한 비밀의 반죽을 입혀 튀겨내지요. 가고시마 흑돼지는 담백하면서도 풍미가 있고, 이베리코 돼지는 고소합니다. 곁들여 내는 미소(일본식 된장) 마늘 특제 소스는 튀김의 느끼함을 잡아줍니다.”

 기자가 지난 6월 도쿄의 한 돈까스 집에서 마주한 풍경이다. 이 집은 돈까스 전문점으로는 유일하게 미슐랭 가이드의 별점을 받았다. 미식 평가의 세계적 기준으로 통하는 그 미슐랭 가이드다. 2014년 도쿄판에서 별 하나(만점은 별 셋)을 받은 이 식당은 돈까스를 미식의 반열에 올렸다는 평을 받았다.

바로크 회화의 거장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지오(1571~1610)가 그린 술의 신 ‘바쿠스.’ 바쿠스가 와인을 권하고 있는 모습이다. 미식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브리야 사바랭의 책 우리말 번역본 표지에도 쓰인 명화다.

 그렇다고 으리으리한 레스토랑은 아니다. 4인 가족이 운영하는 이 작은 맛집에서 아버지는 튀김, 어머니는 서빙, 아들은 고기·야채 썰기를, 딸은 비장의 반죽을 담당한다. 도쿄 도심의 한 백화점 식당가에 있는 아담한 식당은 4인용 방 하나에 대여섯 명이 앉으면 꽉 차는 카운터가 전부다. 미슐랭 가이드마저 “방은 워낙 좁으니 머리 부딪치지 않게 조심하라”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이런 소규모의 업장에서 돈까스처럼 친숙한 메뉴를 취급하더라도 자신만의 장인정신이 갖고 임하면 미식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미식이란 대단한 호화 사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식은 생존을 위해 식욕을 채우는 단순한 섭식 행동이 아니라 오감으로 음식을 음미하는 경험에서 즐거움을 찾는 문화다. 태초부터 미식이 존재했던 건 아니다. 미식도 학습 과정을 거쳐 발전해왔다. 그 기틀이 잡힌 곳은 18~19세기 프랑스다. 미식을 일컫는 말인 ‘가스트로노미(gastronomy)’나 ‘구르망디스(gourmandise)’도 프랑스어에서 왔다.

왼쪽부터 『미식의 생리학』을 펴내며 미식을 정의한 브리야 사바랭(1755~1852), 미식을 즐기는 프랑스 요리의 기틀을 잡은 마리앙투완 카렘(1784~1833), 미식 평론의 장을 열었다고 평가 받는 알렉상드르 그리모 드 라 레니에르(1758~1837).

 ◆미식의 아버지들, 사바랭·카렘·그리모=“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미식의 아버지’격인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1755~1852)이 남긴 말이다. 법률가로 미국·유럽 등지를 여행하며 미식에 대한 경험치를 쌓은 그는 『미식의 생리학』을 1852년 자비 출판했다. 『브리야 사바랭의 미식예찬』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말로도 번역된 이 책은 지금도 미식의 바이블로 대우받는다. 여기에서 그는 미식은 “우리가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쾌락의 원천”이라며 “통찰력 있는 배치, 교묘한 (조리) 기술, 열정적인 감상이자 심오한 판단”이라고 정의했다.

 사바랭은 미식과 폭식도 엄격히 구분했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미식은 과도함의 적이다. 폭식하고 폭음하는 모든 사람들은 미식가의 명단에서 제명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미식은 식욕을 채우는 행위가 아니었다. 일종의 고상한 행위이기도 했는데, 그는 이를 “미식은 조물주의 질서에 대한 암묵적인 복종”이라고 표현했다. 조물주가 인간에게 아름다운 맛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주었으니 그를 건강히 즐기는 게 인간의 도리라는 뜻이다.

 그의 책은 개인적 일화 중심이고 다소 두서없는 면도 없지 않으나 미식의 기틀을 잡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당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미식’이라는 담론을 만들어내고, 미식이라는 문화에 존재감을 부여하고 틀을 잡은 책”(맛 칼럼니스트 박정배)이라는 것이다. 553쪽에 달하는 이 책을 사바랭은 이렇게 끝맺는다. “먹을 수 있는 우주가 여러분 앞에 열려 있습니다.”

 사바랭이 음식을 즐기는 행위자로 미식의 틀을 잡았다면 동시대를 살았던 마리앙투완 카렘(1784~1833)은 ‘스타 셰프’로서 미식의 기초를 닦았다. 카렘은 나폴레옹 1세부터 그의 외교장관 샤를르 모리스 드 탈레랑, 대부호 로스차일드 가문에 이르기까지 명사들의 식탁을 책임지며 ‘왕의 셰프, 셰프 중의 왕’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는 디저트계의 천재 셰프로도 명성이 높았는데, 슈 반죽을 높이 쌓아올려 조형미를 뽐낸 피에스 몽테(pi<00E8>ces mont<00E9>es) 스타일은 지금까지 인기가 높다. 그는 또 당시 여러 단품을 한 상에 차려 놓고 먹었던 프랑스 요리에 코스의 개념을 도입한 첫 요리사로도 알려져 있다. 맛 칼럼니스트 박정배씨는 “카렘은 코스 요리를 정착시킴으로써 요리를 즐기는 적절한 온도와 차림새의 기본을 잡은 인물”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카렘이 미식의 아버지로 기억되는 건 뛰어난 요리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19세기의 프랑스 요리』『왕실과 제과인』 등의 책을 남기며 당대의 요리를 집대성했다. 세계 3대 요리학교인 일본 오사카의 츠지조 그룹교의 야기 나오코(八木尙子)는 『레스토랑의 탄생에서 미슐랭 가이드까지』에서 “카렘은 저서를 통해 요리의 사회적 의미를 찾으려 한 최초의 요리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한 명의 동시대인 중 미식가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알렉상드르 그리모 드 라 레니에르(1758~1837)는 본격적 미식 평론가였다. 프랑스혁명 이후 시대는 귀족 계급이 몰락하면서 그들의 전속 요리사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레스토랑을 열기 시작했던 때였다. 우후죽순 불어나는 레스토랑 사이에서 그리모는 옥석을 가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가 정기적으로 낸 레스토랑 비평지인 ‘미식가 연감’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4호까지의 누적 판매부수가 2만2000부에 달했다고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파리 인구는 55만 명 가량으로 추산된다. 그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게 아니라 요리를 감상하고 음미하길 원했다. ‘미식가 연감’은 그가 엄격한 기준으로 선발한 ‘미식 심사 위원회’의 평가 결과를 토대로 했다. 꽤나 까다로운 모임이었던 듯, 신입회원이 들어오려면 기존 회원 10여 명 모두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이들은 식탁 한가운데 하나의 음식을 놓고 여기에 온 신경을 집중해 맛을 보고 평가를 했다.

미슐랭 레드 가이드의 별 둘을 받은 도쿄의 한식당 윤케(尹家)의 정식 중 전 모둠. 마에 갖은 고명을 집어넣어 색감을 살렸다.

 ◆21세기 미식의 지침서 ‘미슐랭 가이드’ & 한식=이런 원조 미식가들의 움직임에 힘입어 프랑스는 미식의 기틀을 닦았다. 여기에 불을 붙인 건 20세기 초 교통의 발달이다. 자동차가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은 여가를 즐기기 위해 프랑스 전역을 누비기 시작했다. 이때쯤 타이어 회사인 미쉐린(Michelin)도 홍보용으로 1900년 여행지 숙식정보를 출판했고, 이것이 오늘날 미슐랭(미쉐린의 프랑스어 발음) 가이드 시초가 된다. 빨간색 표지라서 ‘레드 가이드’라고 불린 이 책자엔 타이어 정보뿐 아니라 도로 법규, 숙박업소와 레스토랑 정보가 망라됐지만 그 중 단연 인기는 레스토랑이었다. 미슐랭은 1922년 레스토랑 정보만을 담은 가이드를 유료로 내기 시작했고, 33년부터는 전문 평가위원을 고용해 레스토랑에서 몰래 식사한 후 별점을 매기는 방식을 도입했다.

 한국판 미슐랭 레드 가이드는 아직 없다. 그러나 한식으로 별점을 받은 레스토랑은 임정식 셰프가 뉴욕에 낸 ‘정식’과 도쿄의 ‘윤케(尹家)’와 ‘모란봉 진구마에’ 정도다. 정식은 이달 초 발간된 2015년 뉴욕판 미슐랭 가이드에서도 별 둘을 유지했고, 내년엔 별 셋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도쿄의 윤미월씨가 운영하는 윤케는 개업 후 7개월만에 별 둘을 받아 더 유명해졌다. 한식과 미식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는 셈이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한식의 주인공인 윤미월씨는 그 비결을 묻자 “기본에 충실하고 손님의 입장에서 요리하는 것”이라는 다소 평범한 답을 내놨다. 특별한 기교가 아닌 요리의 본질에 충실하면 된다는 뜻이다. 지난 6월 윤케에서 전복삼계탕(5만원)을 맛본 히토시 오기의 말에 힌트가 있다. “삼계탕을 너무 좋아하는데 양이 많고 부담스러워 잘 찾지 않게 된다”는 그는 “윤케의 삼계탕은 양도 적당하고 국물도 뜨겁지도 않은, ‘친절한 맛’이 있었다. 먹는 이를 배려해준다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맛 칼럼니스트 박정배씨는 “한식은 지금 껍질을 벗고 진화하는 중”이라며 “많은 셰프들이 소리없이 일하고 있는 만큼 미식으로서의 한식이 세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날도 멀지 않았다”고 전망했다.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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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