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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따뜻한 한끼’ … 레시피 드립니다

‘회장님 요리사’가 음식으로 사회에 따뜻한 손길을 보태는 일에 나섰다. 사회적 기업인 ‘레스토랑 오늘’의 쉐프 박정석(47)씨가 안동 참마를 넣어 아삭거리는 만두속을 명태껍질로 휘감은 명태만두를 내보이고 있다. [사진 SK행복나눔재단]

‘땀 흘려 그걸 한 그릇씩 먹고 나면 마음속까지 훈훈하고 따뜻해지면서 이렇게 화목한 집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는 기쁨인지 감사인지 모를 충만감이 왔다. 칼싹두기의 소박한 맛에는 이렇듯 외로움 타는 식구들을 한식구로 어우르고 위로하는 신기한 힘이 있었다.’ - 박완서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

 밥 한 그릇엔 무한대의 힘이 있다. 혀를 녹이는 진미(珍味)의 세계를 보여주기도 하고, 잊지 못할 사람과의 추억을 장식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이 한끼의 밥으로 감히 ‘세상의 변화’에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 대사관저가 몰려있는 서울 동빙고동 ‘레스토랑 오늘’의 쉐프, 박정석(47)씨다.

 그가 일하는 주방은 여느 레스토랑과는 다르다. 주방에서 분주히 칼질을 이어가는 13명의 요리사의 대부분은 앳된 얼굴의 20대다. 놋그릇을 말끔히 닦는 식기 담당자를 제외하면 전원이 혈기왕성한 청년이다. 이곳에서 ‘전’을 담당하는 대구 출신의 이종현(24)씨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요리학교에 갈 엄두를 못냈다. 그에게 길을 열어준 곳은 SK해피쿠킹스쿨. 전국 식자재 지도를 만들 만큼 요리에 빠져있는 이씨와 같은 젊은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사회적 기업이다. 올 1월 이곳을 졸업한 그는 ‘오늘’의 주방으로 자리를 옮겨와 ‘한식(韓食) 전문가’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얼핏 보면 고급 레스토랑 같지만, ‘오늘’은 점심이 4~5만원선, 저녁이 12~15만원이나 하는 호텔급 프리미엄+ 사회적 기업 식당이다. 부자들의 열린 지갑이 ‘착한 가치 소비’를 이끌고 더 많은 사회적 파급효과를 낼 수 있단 생각에서 시작한 일종의 실험인 셈이다. SK행복나눔재단은 2012년 “전통 한식 요리사를 배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SK해피쿠킹스쿨과 레스토랑을 사회적 기업으로 세웠다. 해피쿠킹스쿨로 한식 요리사가 되고픈 취약 계층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레스토랑을 통해 일터를 만들어주는 ‘순환 생태계’의 얼개였다. 최태원(54) SK 회장의 동생인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이 이 일을 맡고 있다.

 경력 30년의 베테랑 한식 요리사인 박씨는 한때 ‘회장님 전문 요리사’였다. 경기도 파주 태생의 그는 “부엌에 선 어머니의 정겨운 뒷모습 때문에 요리사가 됐다”고 했다. 사업을 하는 아버지의 뒤늦은 귀가. 그 지친 하루의 마무리는 늘 어머니가 정성껏 차린 저녁상이었다. 3남1녀 중 차남이었던 그는 저녁 찬거리를 사는 어머니의 짐꾼을 자처했다. “순대 얻어먹는 재미”에 따라나섰던 재래시장 장보기는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다. 제철 나물 이름을 줄줄 꿸 정도가 되자 아예 요리사가 되고 싶어졌다. 명문대에 진학한 형,누나와는 달리 “대학진학을 않고 요리사가 되겠다”며 고집을 피우는 그를 부모님은 마뜩찮아 했다. 군 제대를 하고는 ‘승부’를 내기로 했다. 호텔신라로 달려가 “설거지 일이라도 시켜달라”고 무작정 졸랐다. 25살의 혈기였다. 당시 호텔신라의 허태학 사장은 ‘설거지 일자리 쟁취’를 위해 출근도장을 찍는 그에게 기회를 줬다. 주부습진을 달고 살았지만 한식을 배울 기회를 얻은 그는 하늘을 날 듯이 기뻤다고 했다.

 “미쳐서 배운 덕”에 새로운 기회가 그를 찾아왔다. 1995년 강원도에 휘닉스파크(현 보광휘닉스파크)가 생기면서 한식담당 주임 자리가 났다. 그는 덥석 자리를 옮겼다. 부임 첫해 초겨울. 2만 포기에 달하는 김장을 하겠다고 나서자, 사람들이 수근거렸다. “그렇게 많이 담가 뭐하냐. 미친 것 아니냐”는 타박이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옆으로 넓게 퍼져 못난이처럼 생긴 고랭지 배추만을 골라 김장을 했다. 4년 뒤, 김치가 4년짜리 ‘묵은지’로 변신하자, 손님 반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건 이건희 삼성 회장이었다. 이 회장이 스키를 타러 휘닉스 파크를 찾았다. 음식을 내놔야 하는데, 딱히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고심 끝에 그가 생각해낸 것은 동해 산 생태를 이용한 생태탕이었다. 뼈를 발라내 순살로만 정갈하게 끓인 생태탕 정성은 통해 입소문을 탔다. 자신감이 붙으며 꿈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후엔 CJ가 ‘한식 세계화’ 사업에 나서면서 VIP를 대접하는 ‘의전 식사’와 한식 연구일을 맡았다.

 한식을 공부할 수록 ‘전통 한식’에 대한 꿈이 커졌다. 2011년, SK가 청년 한식 전문가 양성을 위한 사회적 기업과 사회적 기업 레스토랑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게 됐다. 그는 자원했다. 최기원 이사장은 그에게 ‘한식 면접’을 제안했다. 꼬박 하루동안 치러진 시험에서 그가 상 위에 올린 것은 묵은지 돼지고기찜과 아롱사태 백김치 수육이었다. “뜨겁지 않은 수육과 깊은 맛이 나는 김치의 조합”은 최 이사장의 입을 사로잡았다.

 그는 이곳을 ‘연구소’라고 부른다. 단골 손님들이 꼽는 이곳의 최고 메뉴는 ‘수원식 육개장’(2만2000원)과 ‘쑥떡와플’(9000원). 그의 연구소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수원식 육개장은 사연이 남다르다. SK를 이끌었던 고(故) 최종현 회장은 수원에서 사업을 일구며 맑은 육수에 고추기름으로 짜지 않게 양념한 파와 곱께 찢은 양지살을 각기 따로 내는 수원식 육개장을 즐겨했다. 부친이 즐겨하던 ‘밥상’을 그리워하던 최 이사장은 박 쉐프에게 ‘재현’을 요청했다. 손님들은 국물따로, 고기따로 나오는 수원식 육개장을 신선해했다. 코스 요리에 후식으로 준비한 쑥떡 와플은 워커힐 호텔과 공동으로 개발했다. 외형은 와플이지만 한입 베어물면 쑥떡의 맛을 고스란히 낼 수 있도록 고안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한 식감을 내기 위해 몇달간 쑥떡 반죽만 수천번을 했다. 제대로 된 와플을 내기 위해선 반죽 공급처를 확보하는 일도 큰 일이었다. 시내 방앗간은 모두 돌았을 정도로 정성을 들였다. 고생 끝에 만들어낸 와플은 메뉴에 오르자마자 유명 음식이 됐다. 와플의 고장인 벨기에 출신의 음식평론가가 손뼉을 치고 갈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오늘’은 내친 김에 쑥떡와플의 비법을 재소자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인 행복한 뉴라이프 재단에 기부했다.

 그는 요즘 ‘안동 참마’ 요리에 몰두 중이다. SK가 안동시에 버려져있던 고택을 리조트로 만들어 올 7월 사회적 기업으로 탄생시킨 ‘구름에’를 시작하면서부터의 일이다. 이곳 조식개발을 계기로 안동시는 그에게 마 요리개발을 부탁했다. 안동 마밭으로 달려가 농부를 만나고, 주방에서 마와 씨름을 벌였다. 그렇게 탄생한 마죽, 마전, 마불고기에 전골, 마떡 레시피는 최근 안동시에 전달됐다. 그는 “발상만 전환하면 한식은 한계가 없다”며 “음식으로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세상을 더욱 따뜻하게 만드는 한식 밥상을 많이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사회적 기업=이윤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 기업과는 달리 일자리 창출, 취약계층 보호 등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을 뜻한다. 취약계층을 30% 이상 고용하거나 이들을 대상으로 도시락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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