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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유산업 죽이는 불합리 규제

고공행진을 하던 기름값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한 푼이 아까운 서민의 입장에선 반갑겠지만 국가적으로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국가 경제를 떠받들어 왔던 기간산업인 정유산업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품목 1위를 차지하던 휘발유·경유품의 수출이 위험한 수준으로 줄고, 정유사들이 적자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자칫하면 정유산업과 석유화학산업이 통째로 무너질 수도 있는 위기다. 에너지정책에 대한 국가 개조 수준의 개혁이 필요하다. 기름값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를 철폐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원유와 석유제품의 국제가격이 떨어지고 수요가 줄어드는 게 문제의 발단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동의 산유국들이 직접 정유산업에 뛰어들고, 중국도 정제시설을 크게 확충하고 있는 마당에 미국까지 공급 과잉의 동북아 석유시장을 넘보기 시작했다. 영업이익률이 2% 수준에 불과한 대표적인 박리다매의 장치산업인 한국 정유사의 매출이 심각한 수준으로 줄고 있다. 미국이 셰일가스 생산을 확대하면 석유화학산업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의 경쟁력까지 위협받게 돼 사정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국제시장의 변화는 어쩔 수 없지만 국내 사정은 안타깝다. 기름값에 대한 정부의 잘못된 규제가 정유산업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우리 경제의 규모와 복잡성이 정부의 시장 개입으로 좌지우지되는 수준을 넘어선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단통법 사달이 가장 확실한 증거다. 원유(原乳) 가격 규제도 실패했고, 도서 정가에 대한 정부의 개입도 실패할 게 뻔하다. 대통령의 강력한 규제 철폐 요구가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는 것은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에너지 분야가 그렇다.

기름값이 묘하다는 대통령의 묘한 발언으로 등장한 알뜰주유소가 기름값 인하에 기여했다는 일부 전문가의 지적은 궤변이다. 휘발유·경유가격이 떨어지는 건 석유제품과 원유의 국제가격 하락 때문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상식이다. 알뜰주유소의 품질 관리가 부실한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알뜰주유소의 낮은 기름값은 시장 경쟁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국민 혈세 투입에 의한 착시현상이다. 작지 않은 규모의 지원금과 세제 혜택이 전부가 아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석유공사가 알뜰주유소를 위해 기름을 만들고, 농협과 도로공사도 작지 않은 부담을 떠안고 있다. 모두가 소비자가 세금으로 채워 줘야 할 부담이다.

국민과 국가 경제를 무시하는 잘못된 규제는 훨씬 더 많다. 실패한 전자상거래시장을 핑계로 일본산 경유를 수입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관세를 깎아 주고, 바이오디젤 혼합의무까지 면제해 줘서 L당 53원의 특혜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1조원의 무역흑자를 날려 버렸다는 지적도 있었다. 물론 소비자에게 돌아온 혜택은 없었고, 책임지는 공직자도 없었다. 국가 기간산업 육성과 보호를 위해 일해야 할 정부부처가 오히려 우리 정유사 죽이기에 발 벗고 나섰던 셈이다.

석탄·원목·철광석에 대해서는 관세를 면제해 주면서 원유에 대해서는 3%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도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 기름값 안정이라는 애초의 기능을 상실하고 오래전부터 산업통상자원부의 쌈짓돈으로 변질된 수입분담금과 비현실적인 신재생에너지산업의 육성을 핑계로 억지로 정유사에 부담을 떠넘긴 바이오디젤 혼합의무도 철폐해야 한다.

소비자와 정유사가 죽어가는 마당에 정부의 배만 불리는 불합리한 유류세도 개편해야 한다. 기름값의 절반을 넘는 과도한 유류세의 폐해는 심각하다. 농어민·택시·화물차·시내버스에 지급하는 다양한 보조금이 모두 유류세에서 나온 것이다. 산업과 통상정책에 매달리면서 전력과 석유정책 모두를 엉망으로 망쳐 버린 산업부에서 에너지와 자원 업무를 떼어내 에너지자원부를 만들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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