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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디지털 유목민의 공간

친구가 허부드(Hubud)로 떠났다. 허부드는 인도네시아 발리 우붓(Ubud) 지역에 있는 코워킹 스페이스(Coworking Space)다. 요즘 그곳에 전 세계 디지털 유목민(Digital Nomad·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스마트 기기를 들고 다니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이곳은 남녀노소·국적을 불문하고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나누는 작업 공간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트렌드를 살피러 오는 프로그래머들도 있고, 원격으로 일을 하는 스타트업 운영자도 있고, 책을 쓰러 온 작가들도 있다고 한다. 이곳에 가려고 일부러 발리를 찾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만든 시설은 아니다. 외국인 3명이 현지인들과 함께 꾸린 공간이다.

허부드를 찾은 사람들은 사시사철 더운 곳에서 맛있고 신선한 음식을 먹으며 창밖으로 펼쳐지는 푸른 초원을 바라보면서 일을 한다. 운영진은 홈페이지에 ‘인터넷 속도가 한국만큼 빠르진 않다’고 엄살을 부렸지만, 답답할 정도는 결코 아니라고 한다. 대나무로 만든 2층집에선 날마다 작은 세미나와 회의, 소모임이 펼쳐진다. 100시간 일하는 걸 기준으로 모든 공간을 이용하고 각종 모임에 참석할 수 있는 멤버십이 한 달에 170달러(약 17만원)다. “뭐 거기까지 가서 돈을 내고 일을 하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굳이 일을 하려고 지구 반대편까지 갈 정도의 사람들이니 열정만큼은 알아줘야 할 것 같다. 근처에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도 많아 대부분 한 달 넘게 머문다고 했다.

가만 보면 우리 사회에서도 일하는 공간과 방식에 대한 논의는 참 많았다. 재택근무부터 스마트워크, 스마트오피스 등 용어도 다양했다. 하지만 변화를 주도하는 주체는 늘 사업자였다. 정부는 서울역에 컴퓨터실을 만들어 ‘스마트워크센터’라 명했고, 업체들은 사무실 책상들만 재배치해 ‘구글형 오피스’를 만들었다. 출퇴근 시간을 30분~1시간 조정하는 걸로 ‘유연 근무제를 한다’는 기업도 많다. 노동을 하는 자에겐 일터 환경을 선택할 권리도, 옵션도 거의 없다. 프리랜서도 말이 프리(free)일 뿐. 비싼 월세를 감내하고 개인 작업실을 내거나 바쁘게 포럼들을 쫓아다니지 않는 이상, 일을 제대로 할 만한 환경은 찾기 쉽지 않다. 국내에도 코워킹 스페이스가 여럿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스터디 카페’나 ‘벤처 창업센터’ 같은 느낌이다.

허부드가 알음알음 알려진 것도, 트렌드에 민감한 정보기술(IT) 업계에서였다. 직종을 불문하고 서로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자율적이고 상쾌한 공간. 이에 대한 요구는 앞으로도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들은 하루의 절반을 보내는 일터의 환경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될 수도 있다.

예상치 못한 데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설마 정부가 나서서 ‘스마트 코워킹 센터’ 내지는 ‘창조경제 3.0 스페이스’ 따위를 만드는 건 아니겠지?” 한 프로그래머 친구의 말이다.


유재연 사회부문 기자 queen@joongang.co.kr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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