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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꿈은 깃털처럼 가벼운 모피

펜디 여성복을 포함해 모피 부문을 진두지휘 하는 건 칼 라거펠트다. 하지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타이틀을 달고 모피와 남성복·액세서리·키즈 라인까지 브랜드 전체를 아우르는 역할은 실비아 벤추리니의 몫이다. 그는 25년 펜디를 창업한 에도아르도 펜디와 아델 카사그란데 부부의 손녀다. 65년 네 명의 이모들과 엄마가 칼 라거펠트를 영입했던 다섯 살 때부터 브랜드의 역사를 목격한 인물이기도 하다. 칼 라거펠트가 찍은 광고 컷에서 어린아이로 등장한 그를 보면 이를 금세 알 수 있다. 이번 전시와 함께 홍콩 플래그십스토어 리오픈에 맞춰 현장을 찾은 그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펜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의 모피 기술은 어떻게 발전할 수 있나.
“우리의 모피 공방은 로마 본사 맨 꼭대기 층에 있다. 그만큼 가장 중요한 위치라는 얘기다. 우리 장인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늘 실험적이고, 늘 열린 태도를 갖췄다. 무엇보다 ‘불가능한 것은 없다(Nothing is Impossible)’라는 우리의 모토를 그대로 따르는 자들이다.”

(위로부터) 펜디 창업주 부부의 2세손인 다섯 자매들과 칼 라거펠트(앞줄 가운데). 이들은 1965년 라거펠트를 영입해 지금까지 관계를 지속해 오고 있다. / 라거펠트가 찍은 펜디 광고 컷. 오른쪽 소녀가 실비아 벤추리니다. / 펜디의 모피 숄을 두른 벤추리니의 과거 모습.
지금까지 가장 혁신이라고 생각하는 기술은.
“우리는 모피라기보다 옷을 깃털처럼 가볍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모든 라이닝을 없앤 첫 번째 브랜드가 됐다. 60년대만 해도 모피는 무겁고 입기 어렵지 않았나. 엄마를 비롯한 다섯 자매들이 여기에 혁명을 일으켰다.”

모피를 어렸을 때부터 봐 왔는데, 어떤 기억이 있나.
“흥미로운 유년이었다. 학교에서보다 이모들과 엄마, 라거펠트가 함께 작업하는 모습을 보는 게 몹시 재미있었다. 그래서 나는 ‘우유와 패션으로 자랐다’고 말하곤 한다. 태어나서부터 패션을 알아왔기 때문에 패션이 무엇인지도 안다. 흥미롭지만 심각한 사업이라는 것이고, 다음 컬렉션에서 발전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점이 늘 다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지금까지 얻은 성과라면.
“모피가 패션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패션과 모피는 다른 영역이었다. 부의 상징이었다고나 할까. 이제는 새로운 패브릭의 개념으로 실험하고 도전한다. 다른 브랜드까지 모피로 뭔가를 생각해본다는 게 진정한 혁명이다.”

의상에 이어 핸드백으로도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펜디의 더블F가 ‘펀 퍼’ 아닌가. 모피 없는 펜디는 없다. 모피의 유머러스한 느낌을 액세서리로 표현하려는 의도다.”

특별히 좋아하는 펜디 모피 코트가 있다면.
“다음에 나올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다음은 무엇인가.
“내년 2월 런웨이까지 기다려달라. 불가능한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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