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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갓집에 온 듯 한 없이 편한 한옥의 하룻밤

1~3 구름에 리조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서운정의 마루와 방. 특히 이 고택은 방 하나를 욕실로 개조해 부티크 호텔 못잖은 시설을 만들었다. 4 공간 속에 다른 공간이 숨어 있는 칠곡고택 사랑채.
구름에 리조트의 가을 풍경. 오르막을 따라 있는 고택 일곱 채가 단풍을 배경으로 단아한 정취를 자아낸다. ⓒ표기식
캠핑은 글램핑이, 호텔은 부티크 호텔이 대세로 자리 잡는 요즘이다. 단 하루를 자더라도 색깔이 분명하면서 불편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들이 많아지면서다. 음식이나 패션에서 나타나는 ‘스몰 럭셔리(작은 호사)’의 흐름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안동 전통고택 리조트 ‘구름에’

지난 7월 문을 연 경상북도 안동의 전통고택 리조트 ‘구름에’는 이 새로운 트렌드를 영리하게 파고든 경우다. SK행복나눔재단이 문화체육관광부·경상북도·안동시와 MOU를 맺고 추진한 이 사업은 1975년 안동댐 수몰 지역에서 옮겨온 고택들을 현대 건축의 손길을 거쳐 숙박 단지로 바꿔놨다. 기존에 생겨난 고택들이 ‘전통문화 체험’에 초점을 맞췄다면, 구름에는 ‘럭셔리 스타일’ 자체에 방점을 찍었다. 한옥의 장단점을 공략, 옛 가옥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는 요소들을 곳곳에 녹여냈다. 하룻밤 50만원에 이르는 가격도 과감하게 책정했다. (성수기 최고 한 채 가격 기준 )

이처럼 새로운 공간으로 입소문이 퍼져가는 차에 가을 끝자락인 지난달 30일 구름에를 찾았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내세운 ‘모던 한옥’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라는 궁금증을 품고서다. 안동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구름에 달 가는 듯’ 마음이 둥실거렸다.

물감을 쓱쓱 칠한 가을 수채화
세 시간 반을 달려와 도착한 구름에 리조트는 ‘가을 수채화’였다. 물감으로 쓱쓱 붓칠한 듯한 단풍 아래 고택이 눈앞에 들어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택의 기와지붕이었다. 입구에서부터 100여 m 오름길이 펼쳐지는데, 그 사이사이 고택 7채가 보일 듯 말듯 자리를 잡고 있었다. 150~400년 전 지어진 문화재급 가옥들이다.

고택들은 각기 규모와 컨셉트가 달랐다. 입구와 가장 가까운 계남고택은 퇴계 이황의 8세손이 1800년대에 지은 종갓집 건축물. 그래서 리조트 중 가장 컸다. ㅁ자 구조에 안채(방 4개와 욕실 1개), 사랑채(방 2개와 욕실 2개), 중간방(방 1개와 욕실 1개)으로 꾸며져 있는데, “와인 동호회나 회사 워크숍 장소로 쓰고 싶다며 문의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는 얘기를 리조트 측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좀더 걸어 올라가니 팔회당재사가 나타났다. 안동의 고성 이씨 법흥 탑동파가 조상 3대를 모시려 마련했던 곳이다. 붉은 갈색 나무 기둥들과 천장 및 서까래가 여느 한옥과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안채(방 2개, 욕실 1개)와 작은 방(방 1개, 욕실 1개)으로 구성된 집은 대청마루 말고도 안채 방 하나와 작은 마루가 연결돼 있었다. 홀로 경치를 즐기며 차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었다.

객실 중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을 물으니 리조트 측은 단박에 서운정을 꼽았다. 방 하나와 욕실 하나뿐인 이곳이 뭐가 독특할까 싶었는데 욕실 문을 여는 순간 답이 나왔다. 욕실이 외부에 있는 기존 고택과 달리 방 하나를 욕실로 바꿨는데, 두 명은 너끈히 들어가는 깊고 큰 욕조가 시선을 압도했다. 보디클렌저까지 갖춘 유기농 어매니티들도 눈길을 끌었다.

순간적으로 어떤 그림이 떠올랐다. 봄이나 가을, 욕조를 둘러싼 창호 문을 활짝 열고 바람을 맞으며 몸을 씻는다면…. 보통 호텔이라면 할 수 없는 경험이라는 짜릿함이 더하리라. 서운정과 비슷한 규모의 청옹정(방 1개, 욕실 1개)의 욕실 역시 원기둥 형태의 세면대가 설치됐는데, 창을 열면 저 멀리까지 시야가 탁 트이는 구조였다. 닫혀 있지만 열려 있고, 열려 있지만 닫혀 있는 한옥의 매력을 제대로 응용한 아이디어였다.

5 고택의 소박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풀 장식. 6 욕실 내에는 수건과 목욕용품이 깔끔하게 구비돼 있다.
첨단 보안키와 고무신이 공존하는 곳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전망이 최고라는 박산정(방 2개, 욕실 1개)까지 한 바퀴를 돌고나니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고택마다 은은한 불빛이 흘러나왔다. 특히 디딤돌 같은 오브제에 넣어둔 간접 조명이 근사했다.

이 정도 하드웨어를 갖춘 ‘스타일리시 고택’의 소프트웨어는 디테일에 있었다. 일단 방 열쇠는 자동차 키 같이 생긴 첨단 스마트키. 개폐 버튼을 눌러 작동시키는 것이었다. 여닫이 창호 문에 이게 필요할까 싶었는데, 얼마 안 돼 이해가 갔다. 창호 문을 열면 자동 잠금장치를 단 유리문이 하나 더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 말고도 깨알 같은 소품들이 눈에 띄었다. 슬리퍼 대신 꽃 그림이 그려진 고무신을 비치한다거나 야생화를 말려 마루와 방, 욕실에까지 장식하는 소소함까지 시선이 갔다.

방 안에는 옛날 베갯잎에 놓인 자수를 끼운 액자와 30년 안동 명주, 장인이 만들었다는 침구가 가지런히 개켜져 있었다. 숙박객 중에는 실제 고무신·이불을 사 가고 싶다고 문의하는 이들도 제법 있다고 한다. 화장대에 놓인 숙박 안내문에는 TV도 없는 깊은 밤을 염두에 둔 것인지 와인과 안주, 간단한 간식을 위주로 하는 룸서비스 메뉴가 적혀 있었다.

모든 방이 찼지만 아무도 없는 듯한 호젓함
이튿날 아침, 빗소리에 잠이 깼다. 후두득후두득 소리가 마치 욕실 샤워기를 틀어놓은 것 같았다. 리조트 밖으로 아침 산책을 나가기 위해 리셉션에서 우산을 빌렸다.

‘까치구멍집’이라 불리는 리셉션에는 마흔여덟 동갑내기 김상철·김정희 부부가 총지배인으로 24시간 상주하는데, 둘은 이미 관광객들이 묵는 고택을 7년여 관리한 경력이 있다. 남편 김씨와 잠시 얘기를 나눴다.

“고택에서 지내는 매력이 뭘까요?”

“음…. 어젯밤 여기 방이 10개가 찼는데요. 혹시 다른 숙박객들을 보셨나요? 참 신기한 게 여기는 모두가 있는데 아무도 없는 것 같은 호젓함이 있어요. 그냥 어디 돌아다니고 놀거리가 딱히 없어도 다들 한옥에 머무는 자체를 휴양으로 생각하는 거죠. 오늘 같은 날이면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만 들어도 시간이 후딱 가요.”

묻지도 않았는데 그는 다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다고 제가 손님들과 접촉하지 않는 게 아니에요. 호텔처럼 필요한 서비스만 제공하는 것도 아니죠. 짧은 시간 동안 오히려 다양한 사연을 듣게 되죠. 장애인 아들과 함께 온 어머니나 남편을 사별하고 친정어머니·시어머니와 함께 온 분도 자연스럽게 마음을 터 놓으세요. 화려하지 않지만 외갓집 같은 느낌, 그게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나 봐요.”

그의 말처럼 어제 내내 보지 못했던 다른 숙박객을 아침 식당에서야 마주쳤다. 역시 한옥인 그곳에선 객실마다 테이블이 미리 지정되고, 안동의 식재로 만든 반찬과 디저트가 제공됐다. 식당 옆 카페에 들르자 메뉴판에선 로스팅으로 이름난 홍대앞 카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전통과 현재, 지방과 서울이 공존이 모닝 커피에 더해졌다.


안동(경북)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구름에 리조트, 표기식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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