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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뎅도 울고 갈 부산 어묵의 ‘지존’

가을바람이 차다. 집 앞 거리에 보이는 붉게 물든 가로수의 이파리도 몇 개 남지 않았다. 불현듯 뜨끈한 국물이 떠오른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눈 맛까지 곁들인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무릇 음식이란 간절할 때 바로 먹어야 맛의 감흥도 커지게 마련이다. 눈앞에 어묵 파는 집이 있다면 무작정 들어갈 일이다.

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5> 부산 삼진어묵

나 같은 ‘꼰대 세대’에게 맛있는 음식을 몇 개 꼽으라면 짜장면과 함께 반드시 어묵이 들어간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탓이다. 김치 쪼가리 몇 개가 반찬일 때 어묵 조림의 기름기는 대단한 맛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고기는 먹지 못해도 그나마 어묵은 만만했다. 이후 포장마차를 전전하며 어묵을 먹었다. 친근한 포장마차의 싸구려 줄 무늬 휘장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뽀얀 김을 내뿜으며 사각의 스테인리스 용기에 곱창처럼 꿰어져 끓던 어묵 꼬치. 불안한 쪽의자에 걸터앉아 소주를 들이켜야 제격이다. 볼품없는 안주와 함께 뜨끈한 국물이 빠질 리 없다.

지금도 마트에 가면 마누라 눈치를 보며 습관적으로 어묵을 집어든다. 누가 뭐래도 나는 어묵을 좋아한다. 유심히 냉장 매대를 보게 된다. 수많은 회사들이 만들었음직한 어묵은 모두 ‘부산어묵’이라 찍혀있다. ‘부산어묵’이 마치 브랜드화된 느낌이다.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진짜 ‘부산어묵’은 어디에서 누가 만드는 것일까.

생선 많이 넣어 직원도 걱정한 창업주 비법
호기심은 해결하라고 있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을 탐문했다. 레스토랑 체인을 몇 개나 운영해서 음식에 조예 깊은 서지희 대표의 자문이 신빙성 높았다. 시중의 ‘부산어묵’은 대부분 부산과 관계없는 상술일 뿐이라는 점, 제대로 된 ‘부산어묵’을 찾고 싶으면 삼진어묵에 가보라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좋아하는 어묵의 본산을 직접 찾아갔다. 부산에 근거지를 둔 삼진어묵을 샅샅이 들여다보게 됐다. 우선 1953년부터 어묵을 만들어 3대째 가업 계승을 이룬 60년 넘는 역사가 눈에 띈다. 일제에 징용됐던 할아버지 박재덕이 어묵 기술을 배워 영도 봉래동 시장 어귀에서 어묵집을 차렸다. 출발부터 주위의 평판이 좋았다. 비결은 간단했다. 신선한 생선을 듬뿍 썼고 깨끗한 기름에 튀겼을 뿐이다. 할아버지는 생전에 한마디를 남겼다. “사람이 먹는 음식이다. 이윤 남기지 말고 좋은 재료를 써라.”

할아버지의 유훈은 후대에 그대로 지켜졌을까. 선대의 업적은 미화되게 마련이다. 먹거리의 불신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만드는 과정을 보게 되면 도저히 먹지 못할 음식이란 얼마나 많은가. 또다시 호기심이 발동했다. 59년 삼진어묵에서 일했던 기술자를 찾아가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이제 칠십 노인이 된 그의 증언은 거짓이 없어 보였다. “사장님이 생선을 너무 많이 넣어 외려 회사가 망하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어묵의 수율을 높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주재료인 생선을 적게 넣고 밀가루와 수분 함량을 높여 중량을 늘리면 된다. 삼진어묵은 지금도 이윤을 높이기 위한 수율을 포기하고 있다. 제대로 된 어묵은 생선으로 만들어야 맞다.

회사에 몸담았던 사람의 말만으론 모자란다. 부산 부평시장 깡통골목 어묵 판매상들의 말을 들어봐야 나머지를 채우게 될지 모른다. “부산어묵의 원조가 어디입니까?” 약간의 의견차를 누르고 삼진어묵을 드는 이들이 많았다. 부산시에서도 가장 오래된 어묵 제조소로 삼진어묵을 공인했다. “삼진어묵이 오래된 이유만으로 원조라고 해도 됩니까?”

상인들은 다음 말을 이어갔다. “삼진만큼 제대로 된 어묵 만드는 집 별로 없어요. 옛날부터 지금까지 맛이 똑같습니다.” 좁은 매장 뒤 ‘부산어묵의 원조 삼진어묵’이라 쓰인 박스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조리 없이 바로 먹는 새로운 어묵도 개발
현재 부산에서 만들어지는 어묵은 국내 전체 생산량의 약 10% 정도다. 나머지 ‘부산어묵’은 부산어묵이 아닌 셈이다. 이름을 뺏긴 어묵의 본가 부산으로선 속상할지 모른다. 부산어묵의 자부심은 맛으로 구별된다. 진짜 ‘부산어묵’은 먹어보면 안다. 생선에 관한 한 까다롭기로 유명한 부산사람들의 제법은 남달랐다. 진짜 ‘부산어묵’인 삼진어묵은 색깔도 맑고 희다. 좋은 재료가 들어가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표시이기도 하다. 여느 어묵에 비해 차지고 탱글탱글한 식감은 당연하다. 끓이면 대개 흐물흐물하게 풀어지는 어묵이 많다. 그 전에는 이유를 몰랐다. 생선 대신 밀가루가 더 많이 들어간 별 볼일 없는 어묵이기 때문이다. 형편없는 어묵은 가라! 좋은 어묵으로 끓여낸 건더기와 국물은 눈과 코를 흥분시키고 혀와 이빨의 호사로 마무리된다.

현재의 삼진어묵은 손자인 박용준이 이끌고 있다. 젊은 경영인의 총기는 어묵으로 새로움을 열어간다. 반찬과 포장마차용으로 머물렀던 어묵을 빵처럼 먹을 수 있게 바꾸어 놓았다. 도넛과 고로케, 바게트 같은 별의별 모양이 다 있다. 어묵을 바로 먹는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쾨쾨한 냄새와 기름 끈적이는 어묵이 아니다. 별도 조리할 필요 없이 바로 먹는 맛있는 음식이 됐다. 과거의 기억에 얽매일 필요 없는 젊은 세대들은 새로운 어묵의 출현에 열광했다. 빵에 식상한 이들의 출출함은 신선한 식감과 맛의 어묵이 책임진다.

이제 어묵은 세련된 인테리어의 베이커리 매장 같은 곳에서 판다. 어묵의 본고장 일본에서도 하지 못한 일이다. 출발을 여는 일은 중요하다. 없던 것을 만들어낸 공로 때문이다. 이를 키워 더 큰 가능성으로 만들어가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살아 움직이지 않는 과거보단 현재를 숨 쉬는 친근감이 바라던 모습이기 때문이다. 몇 곳의 삼진어묵 매장에 연일 사람들이 미어터지는 광경이 펼쳐진다. 누구나 바랐던 좋은 먹거리의 필요와 기대를 충족시킨 결과를 잘 보여준 예다.

삼진어묵을 한 자루 넘게 사서 먹고 있다. 어묵이 이토록 맛있는지 미처 몰랐다. 맛의 감탄만으론 모자란다. ‘어묵을 세계적 먹거리로 키우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라면’과 ‘초코파이’가 세계인의 음식이 된 과정을 떠올리면 못할 것도 없다. 까다로운 우리나라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은 삼진어묵이다. 한국은 이제 남의 눈치나 보는 변방의 나라가 아니다. 스스로 세계 어묵의 중심을 자처하고 새로움을 만들어 가는데 누가 뭐랄까.


윤광준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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