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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의 마음과 세상] 엿보려는 자의 심리

“텔레그램 안 깔아?”

지난 한 달간 열 번 넘게 들은 말이다. 9월 중순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모독적 발언이 “도를 넘어섰다”고 말한 직후 검찰은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 전담수사팀’을 꾸려 인터넷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사이버 명예훼손의 형사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같은 시기 한 정치인이 “경찰 수사 과정에서 카카오톡 대화록을 압수당했고, 3000명에 대한 사찰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이후 지난해 약 2600건의 압수수색 영장, 86건의 감청 요청이 있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세칭 ‘사이버 망명’ 러시가 시작됐다.

당황한 검찰이 “SNS에서 이뤄지는 사적 대화를 검색하거나 수사하지 않겠다”며 여론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대중의 움직임을 거스를 수 없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의 SNS 대화는 대부분 일상의 수다들이다. 검찰이나 경찰이 들여다볼까 봐 걱정할 만한 것은 거의 없다. 이성적으로 설명하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전히 내전을 피해 국경을 넘는 수십만 명의 시리아 난민같이 국외 서비스로 갈아타야 안심이 될 것만 같다. 그 심리적 원인을 이해해야 이 사달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러스트 강일구
그 기저엔 상대가 내 마음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주는 심리적 안도감이 있다. 다섯 살짜리 아이가 조그마한 주먹에 블록 조각을 쥐고 부모에게 “어느 손에 있게?”라고 물어본다. 한눈에 봐도 어느 손인지 알겠지만 반대 쪽 주먹을 가리키면 아이는 깔깔거리며 신나 한다. 아이는 신체적으론 분리돼 있지만 부모가 자기 마음을 다 읽는다고 짐작하고 있었다. 서서히 자기만의 생각을 갖고 싶은 욕구가 발달한다. 이때 이런 놀이를 하면 아이는 부모가 내 본심을 읽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안심한다. 그래서 뻔히 눈에 보여도 짐짓 모른 척 속아 주는 게 아이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좋다. 이런 것이 제공되지 않으면 커튼 하나 없는 집에서 살면서 24시간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 안에 사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된다. 검찰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행위를 하지 않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이 말은 별다른 위안이 되지 않는다. 은밀한 개인의 비밀, 겉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나와는 다른, 나만의 나를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인간의 본능 중 하나다. 또 심리적 안정감의 토대다. 직장 내에 폐쇄회로TV(CCTV)를 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불쾌감을 주는 일이다. 내가 아무리 문제가 없다고 해도 불쾌한 것은 바로 이런 안전함이 훼손됐다는, 그래서 자아의 맨살이 무방비로 드러나 있다는 불안 때문이다. 그래서 찜찜함을 없애기 위해 사이버 망명을 선택한 것이었다.

가끔 아이를 과하게 혼낸 다음 후회하면서 미안해질 때가 있다. 이때 자녀가 로그인한 상태에서 자러 간 사이 아이의 메신저를 열어 보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곤 한다. 마찬가지로 이런 문제는 대부분 지켜보겠다는 사람이 켕기는 게 있을 때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이버 망명 문제는 비합리적 행동을 하는 국민을 탓하기보다 평소에 신뢰를 받지 못했거나 찔리고 켕기는 것이 있었는지 정부와 사법 당국이 한번 잘 생각할 문제다. 그렇기에 ‘잘못한 게 없으면 당당하라’는 말은 국민에게 할 말이 아니라 정부가 자문하는 것이 맞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jh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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