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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죽음은 다른 삶으로 가는 과정 … 나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것

어느 티베트 화가가 구아슈(gouache·물과 고무를 섞어 만든 불투명한 수채 물감)로 그린 파드마삼바바.
인생이 여정이라면 그 최종 종착지는 죽음이다. 누구도 피할 길이 없다. 어쩌면 ‘어떻게 살 것인가’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달린 문제다. 웰다잉(well-dying)은 고금의 세계적인 화두다.

<40·끝> 파드마삼바바 『티베트 사자의 서』

세속화가 진행되기 전까지는 어떻게 살고 죽느냐의 문제는 종교가 해답을 제시하는 영역에 속했다. 상당수 종교에 따르면 엉망진창으로 삶을 살았어도 막판까지 기회가 있다. ‘패자부활전’이 있다. 죽기 전 1분 전, 10초 전까지도 말이다.

예컨대 가톨릭에서 잘 죽는 법은 신부를 부르는 것이다. 신부를 불러 죄를 고백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는다.(신부를 부를 수 없는 상황이면 스스로 진정으로 참회하면 된다.) 가톨릭에서는 지옥에 가야 하는 ‘죽을 죄’는 없다. 반성하면 다 용서받을 수 있다. 죄를 용서받았지만 죽은 다음에 연옥에서 죗값을 치러야 한다. 죗값을 다 치르고 나면 천국에 갈 수 있다.

『티베트 사자의 서』의 우리말 판(왼쪽)과 영문판 표지.
14세기에 재발견된 8세기 경전
티베트 불교에서는 죽는 순간뿐만 아니라 심지어 죽은 다음에도 기회가 있다. 죽은 다음에도 몸과 마음이 분리된 새로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성불(成佛)할 수도 있고, 신적인 존재들이 사는 낙원 같은 곳에 갈 수도 있고,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 죽은 다음에 어리바리 방황하면 축생(畜生)이나 더 곤란한 모습으로 다음 세상에 태어날 수도 있다.

좋은 곳으로 가는 길을 제시하는 게 『티베트 사자(死者)의 서(書)』(이하 『사자』)다. 죽을 무렵, 죽는 순간, 죽은 다음에 스스로 읽고 또 남들이 대신 읽어 주는 경전이다. 생사일여(生死一如)다. 생과 사가 다름없다. 하나다. 죽음의 고통이 사라져야 삶의 고통도 사라진다. 『사자』는 생사의 고통을 없애는 유용한 각종 스킬(skill)을 제시한다.

사자의 저자는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蓮華生上師)다. 중국에 보리달마(菩提達磨, 생몰년 미상, 470년 무렵 남중국에 와서 선종을 포교)가 있다면, 티베트에는 파드마삼바바가 있다. 파드마삼바바는 8세기 사람이다. 인도 출신의 그는 부탄과 티베트에 불교를 전파했다. 전설에 따르면 『사자』를 비롯한 문서를 티베트 곳곳에 숨겼다. 아직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자』는 14세기에 세상에 다시 나타났다. 상당수 티베트학 학자들은 『사자』가 후대의 위작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는 한 『사자』의 영문판에 서문을 쓰며 『사자』를 ‘공인’했다.

20세기에는 서양으로 전파됐다. 『사자』의 원제는 『중간 상태에서 청문(聽聞)으로 얻는 해탈(바르도 퇴돌·Bardo Thodol·The Great Liberation by Hearing in the Intermediate States)』이다. 『이집트 사자의 서』에 맞춰 『티베트 사자의 서』라는 제목이 붙었고 이 제목이 굳었다. 『사자』는 정작 티베트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서양에서 불교 입문서로 유명해졌다. 1927년 옥스퍼드대 출판부에서 첫 영역본이 나왔다. 나오자마자 서구 사회에서 고전이 됐다. 나중에 꼼꼼한 번역본이 나온 다음에 옥스퍼드대 번역본에 오역 등 문제가 많다는 게 밝혀졌다.

하지만 옥스퍼드대 번역본은 『사자』를 서양에 알리는 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1875~1961)은 『사자』가 “인간 심리를 다룬 책”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사자』는 특히 미국인들에게 ‘나는 이렇게 쿨(cool)한 사람이야’라는 선언적 의미가 있는 책이었다. 읽지는 않더라도 책꽂이에 꽂아두면 효과 만점이었다. 한때 대항문화(對抗文化·counter-culture)를 상징하는 책으로 부상한 것이다. 또 『사자』는 ‘동양의 단테 『신곡』’이라고도 불린다. 『사자』는 임사체험(臨死体験, Near Death Experience)에서 말하는 것과 일치하는 내용도 많기 때문에 주목받는다.

『사자』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없앤다.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통해서다. 죽음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슬픈 것도 기쁜 것도 아니다. 죽음은 삶과 또 다른 삶 사이의 중간 과정일 뿐이다. 죽음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의 시작이다. 죽은 사람은 몸이 없기 때문에 그 누구도 위해(危害)를 가할 수 없다.

사후에 몸과 분리된 의식은 기분 좋은 이미지와 무서운 이미지를 연달아 보게 된다. 모두 자신의 의식 작용이 만들어내는 ‘생생한 꿈’이다. 삶이 여정이라면, 삶과 삶 사이의 죽음도 여정이라는 게 『사자』의 메시지다. 흥미로운 점은 그리스도교 정경(正經)으로 인정받지 못한 『마리아 막달레나 복음』에도 사후 여정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마리아 막달레나 복음』에 비슷한 내용
『사자』에 따르면 죽음은 마지막 기회가 아니라 오히려 최고의 기회다. 몸과 마음이 분리된 사후에는 해탈이 더 쉽다. 그 어느 곳이건 마음대로 갈 수 있다. 해탈이 최고의 목표지만, 해탈에 실패할 경우에는 환생을 해야 한다. 신성한 존재들이 사는 곳에서 태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자』의 세계관은 불법(佛法)이 전해지고 실천되고 있는 곳에서 태어나는 것을 선호한다.

‘흰색 빛’은 신들이 사는 곳의 통로다.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파란 빛’을 따라가야 한다. ‘파란 빛’을 따라가면 모든 중생이 성불하기 전까지는, 성불을 미루겠다는 ‘고집불통의 위대한 인간들’이 가는 우리 세상으로 다시 올 수 있다. 어쩌면 ‘깨달은 인간은 신(神)들보다 위대하다’고 보는 게 불교다. 그렇게 믿는 이들은 신들의 낙원이 아니라 쾌락과 고통이 공존하는 이 세상으로 다시 온다. 성불하기 위해서다.

데드라인(deadline)의 종류는 여러 가지다. ‘예비적 데드라인’ ‘진짜 데드라인’과 ‘진짜 진짜 데드라인’이 있다. 무한정 기회는 없다. 『사자』에 따르면 49일 동안 다음 생에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가 결정된다. 그 기간에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대로, 죽은 사람의 친지들은 또 그 나름대로 노력해야 한다.(우리나라 불교의 사십구일재(四十九日齋)도 유래가 같다.) 『사자』에 따르면 어떤 환생이냐는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협업(collaboration)이 얼마나 잘되느냐에 달렸다. 우선 산 자는 울고불고 소란을 피우거나 지나친 슬픔에 빠지면 안 된다. 모든 종류의 경계인(境界人)은 힘들다. 그렇지 않아도 새로운 상황에 빠져 혼란스러운 망자라는 경계인을 더욱 어렵고 힘들게 만들면 안 된다. 산 자들이 할 일은 그저 『사자』를 열심히 독경하는 것이다.

『사자』의 해설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부처도 좋고 공자도 좋고 예수도 좋다. 사후 49일 동안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을 생각하라. 나를 버리고 이타적인 것만을 생각하라. 자비도 좋고 사랑도 좋고 인(仁)도 좋다. 살았을 때 부족했던 것을 의식에 담아라. 인생은 짧다. 49일이라는 기간은 정말 짧다. 이 49일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현생과 차생(次生)의 행복이나 보람, 성공이 결정된다.

『사자』는 사자를 위한 책이기 이전에 산 사람들, 살아 있을 때를 위한 책이다. ‘생자(生者)의 서’다. 유가족에게는 위로를 준다. 모든 살아 있는 사람들에겐 언젠가 맞이할 죽음을 준비하게 해 주는 책이다. 공부와 아부(‘윗사람에게 하는 칭찬’)는 평소에 해야 하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대비도 평소 살아 있을 때 해야 한다. 당일치기 시험 준비가 통하듯, 죽은 다음에도 기회가 있다는 것을 『사자』는 알려준다. 하지만 데드라인에 쫓기지 않고 미리미리 준비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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