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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의 보수 이야기] 우리 경제에 석회보다 두엄을 뿌려라

복거일
소설가
아직 소작농이 많았던 1950년대 말엽, 시골 중학교의 농업 시간. 비료를 설명하시던 선생님께서 소작인의 농사는 소작 기간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셨다. 오래 소작한다고 믿는 소작인은 농토의 지력을 꾸준히 유지한다. 소작이 올해로 끝난다고 판단하면 소작인은 석회를 좀 많이 뿌린다. 산성인 흙에 알칼리성인 석회가 섞이면 자양분이 많이 빠져나와 작물들이 잘 자란다. 덕분에 그해는 소출이 높지만 거름을 많이 해서 지력을 보충하지 않으면 다음 해부터는 소출이 평균을 밑돌게 된다.



 사람의 판단에 시평(time horizon)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배웠다. 사람마다 자신의 처지에 맞는 시평을 고르고 거기에 맞춰 판단한다. 임기가 5년인 대통령에겐 시평은 5년을 넘을 수 없으므로 5년 안에 효과를 볼 정책들만 채택된다.



 최경환 부총리의 경제 정책은 석회와 비슷하다. 경기를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우리 경제의 체력을 고갈시킨다. 원체 다급한 상황이라는 점도 있지만 최 부총리의 시평이 짧을 수밖에 없다는 사정도 그런 정책이 나오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걱정스럽게도 응급 처방으로 고갈된 경제의 체력을 다시 채우려는 노력은 눈에 잘 뜨이지 않는다. 중장기적 처방들을 담은 법안들이 국회에 묶여 있다는 사정도 있지만 아무래도 미흡하다.



 민간 대기업들에 투자를 늘리라며 사내 유보에 과세하는 반자본주의적 방안까지 내보였지만 정작 정부는 투자에 나서지 않았다. 전망이 어두우면 위험에 민감한 기업들은 사업 계획들을 다시 검토하고 투자를 줄이게 된다. 위험을 무릅쓸 수 있는 정부가 먼저 투자에 나서는 것이 자연스럽다.



 정부의 투자는 효과를 보는 데 대체로 오래 걸린다. 반면에 부총리나 장관의 시평은 한 해를 넘기 어렵고 대통령도 임기까지다. 그런 사정이 현 정권이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을 조금은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어찌 됐든 이제 정부는 서둘러 투자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민간 기업들도 자신감이 생기고 투자할 기회도 열린다. 기업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큰 사업들은 정부가 나서서 기본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법적 조치들을 취하고 이어 기업들이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효과적이다. 우리나라처럼 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가 촘촘하고 정책이 수시로 바뀌고 ‘민원’이라 불리는 NIMBY 현상이 극성스러운 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우리가 경제 발전을 이룰 때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일했다. 정부의 ‘시장 설계’ 기능이 지금처럼 위축되면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는 체력이 달리게 된다.



정부 투자로는 사회기반시설(infrastructure)에 대한 투자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원래 정부의 고유 기능인 데다 경기 부양에 늘 쓰이고 투자 효과도 비교적 크므로 지금 적절한 방안이다. 아울러 우리 건설 기업들이 일감이 적어 무척 어렵고 정부가 매긴 엄청난 과징금을 내야 하므로 가장 필요한 곳으로 돈이 흐르도록 할 것이다.



 당장 필요한 사회기반시설들 가운데 이내 떠오르는 것은 관광시설이다. 그동안 여가는 크게 늘었지만 여가를 즐길 관광시설은 그리 늘지 않았다. 그래서 어지간한 관광지들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린다. 국민의 절반이 모여 사는 수도권에서 가족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관광지들은 많지 않다.



 게다가 중국인 관광객들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관광지들을 개발하고 시설들을 마련하는 일은 경제적으로도 중요해졌다. 문명이 발전해도 지리적 조건은 바뀌지 않으므로 예측 가능한 미래에도 중국 사람들은 한반도에 많이 찾아올 것이다. 우리는 긴 시평으로 이 일을 살피고 장기 계획을 마련해 필요한 투자를 시작해야 한다.



 이내 착수할 수 있고 건설업에 작지만 뜻있는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업은 한강 연안의 테마공원이다. 한강은 천혜의 관광자원이지만 지금은 거의 빈 물길이다. 하남의 미사리나 김포에 테마공원을 세워 서울을 찾아온 중국 관광객들이 유람선을 이용해서 찾게 된다면 다양한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찾는 값싼 숙박시설을 제공할 수 있다. 서울은 땅값이 너무 비싸 대중 숙박시설을 세우기 어렵다. 테마공원과 값싼 숙박시설이 세워지면 빠르게 오락, 공연 및 문화 시설들이 따라 들어설 것이다.



 중국 관광객들 가운데는 젊은 연인들이 많아 서울의 사진관들이 호황을 맞았다고 한다. 미사리에 젊은 연인들을 주요 고객 계층으로 삼은 테마공원을 세우는 것은 멋진 방안으로 보인다. 우리의 전통문화와 현대적 감성을 현대기술로 구현한 테마공원은 현 정권이 내세운 창조경제를 실현하는 마당을 제공할 것이다.



 지력을 보존하는 데는 두엄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고 농업 선생님은 가르치셨다. 경제의 체력을 보존하는 데는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하는 것보다 좋은 것도 드물다.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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