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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욕실 문화를 이끈 도전과 응전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찬란한 유산



세계 어느 나라보다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대한민국. 2014년 오늘의 한국을 대표하는 토종 리빙 브랜드는 무엇일까요? 수많은 매체에서 해외 유수 브랜드의 역사를 거듭 이야기하며 그와 얽힌 신화를 쌓아갈 때 정작 우리 것의 소중함은 되새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유럽에 산업혁명이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1970년대 산업화가 있었고, 그 시기를 기회로 활용하여 열정으로 살아남은 기업들이 있습니다. 레몬트리는 창간 13주년을 맞아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우리 브랜드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최초의 현대화된 리빙 문화를 만든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았습니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며 생활을 이롭게 한 이들의 이야기를 찬란한 유산으로 삼아, 리빙 매거진이 나아갈 길 또한 모색해보려 합니다.







Heritage Brand 2



한국의 욕실 문화를 이끈 도전과 응전

로얄앤컴퍼니 박종욱 대표



로얄금속주식회사, 로얄토토 시절, 이들의 기술은 항상 앞서 있었다. 싱글 레버 수전, 온도 조절 장치가 장착된 수전 역시 로얄토토가 국내 최초로 개발한 것들이다. 샤워기 헤드의 디자인도 시대에 따라 그 모양이 현대적으로 바뀌었고, 절수 기능을 적용해 물을 즐겁고 알뜰하게 쓰도록 했다.








우연한 기회에 욕실 사업을 시작하다



삶의 많은 부분은 ‘뜻밖’이다. 로얄앤컴퍼니 역시 그랬다. 언론에 대한 제약이 심하던 1950~60년대 시절, 로얄앤컴퍼니의 창업자 박신규 회장은 대구의 매일신문, 영남신문 기자였다.



정치계나 언론계나 신문지에 싼 돈뭉치를 들고 찾아와 ‘기사 좀 써주세요, 기사 좀 쓰지 말아주세요’라며 비리가 비일비재하던 시절, 박신규 회장은 최연소 사회부장이라는 타이틀을 달 정도로 뛰어나고 강직한 인물이었다.



지금의 로얄앤컴퍼니 박종욱 대표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일화를 빌리자면, “지금에야 웃으면서 하는 이야기지만, 그때 아버지 친구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대단하셨던 것 같아요.



이렇게 이야기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반골 기질이 있다고나 할까요. 기사를 쓰다 보면 정부에서 언론에 압력을 가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면 책상을 뒤엎으면서 왜 못 쓰게 하느냐고 했답니다. 또 어떤 기사를 꼭 써야 한다는 압박이 들어오면 또 왜 이런 기사를 써야 하느냐며 책상을 뒤엎었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따르던 기자들이 유독 많았고, 박신규 기자가 몸담고 있는 신문은 유명세를 탔다지요.” 그런 박신규 회장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현실적인 고민에서 비롯되었다.



딸린 자식이 다섯이나 되었고, 아내와 노모까지 모시고 있던 터라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것. ‘내가 기자 하면서 나쁜 짓을 하지 않고서야 우리 가족이 잘 먹고살 수는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그리고 고민 끝에 박신규 회장은 언론계를 떠났다.



그 후 그의 첫 사업은 제면 사업이었다. 지금이야 쓰는 집이 드물어 추억 속의 물건이 되어버렸지만, 무거운 목화솜 이불을 대신하던 화학섬유 캐시밀론 솜으로 만든 이불을 팔았는데, 사업이 잘되는 편이어서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박신규 회장은 우연찮게 지인으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당시 그 친구는 욕실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병세가 악화되어 더 이상 사업을 끌어나갈 수 없게 되자 박신규 회장에게 자신의 사업체를 경영해달라고 부탁했던 것.



그렇게 박신규 회장이 사람에 대한 의리 때문에 맡게 된 것이 수전(수도꼭지)을 만들던 로얄금속주식회사다. 1970년대 욕실의 개념이 지금과 같을 리 만무하고, 욕실은 그저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와 씻고 용변 보는 본질적인 기능에 충실한 공간일 뿐이었다.



박신규 회장은 다른 수전 회사들과의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기술적 차별화로 욕실 산업에 승부수를 던져야겠다고 생각한 것. 그래서 당시 일본의 욕실 전문 기업 토토와 기술적인 제휴를 체결했고, 회사 이름도 로얄토토로 바꾸었다.



계속 변화하는 것이 기업의 살길이라 여기던 박신규 회장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일지도 모른다. 토토의 앞선 기술력을 습득해 제품을 생산해낸 결과, 욕실 시장에서 단연 선두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로얄토토가 만든 제품은 국내에서 모두 ‘최초’였다.



하나의 레버로 물의 온도를 조절하는 싱글 레버 수전 역시 로얄토토가 처음이었고, 지금도 대중목욕탕에서 볼 수 있는 온도 조절 장치가 달린 수전 또한 국내 최초였다.



지금은 기술이 평준화되면서 어느 브랜드에서건 만들 수 있는 제품이 되었지만, 그 시절에는 획기적인 제품으로 통했고 설비업자들 사이에서 ‘고급 욕실에는 로얄토토 제품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의 브랜드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박종욱 대표가 로얄앤컴퍼니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찍은 임직원 사진. 박신규 회장과 박종욱 대표 두 부자가 함께 찍은 몇 안 되는 사진 중 하나라고. 10월에 오픈할 로얄앤컴퍼니의 화성센터에는 옛 시절 욕실용품과 카탈로그처럼 브랜드의 역사를 읽을 수 있는 물건들을 전시할 예정이다.








가격 경쟁력보다 ‘가치’ 경쟁력



도발이라면 도발이었다. 로얄은 수도꼭지 만드는 회사, 대림은 세면대 같은 도기를 만드는 회사. 이렇게 마치 암묵적인 역할 분담이라도 한 것처럼 하나의 품목만 생산했다.



“욕실은 정말 좁은 공간인데, 정말 많은 것이 들어갑니다. 세면대도 들어가고, 거울, 수납장, 샤워기, 욕조도 들어가고요. 그런데 전부 다 다른 회사에서 만든 것이니 디자인적으로 볼 때 제각기 따로 놀 수밖에 없죠.



욕실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욕실이 좀 깔끔하고 정돈되어 보였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죠. 그래서 다 한번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들 하나씩 만드는데, 우리 회사만 세면대도 만들고 양변기도 만들고 수도꼭지도 만들고 했습니다.



그게 토털 욕실 브랜드로서의 첫발을 내디딘 순간일 겁니다.” 그렇게 로얄토토는 토털 욕실 브랜드로 나아가면서 다른 브랜드보다 한 발 더 앞서나갔다.



그러나 어느 기업에건 위기는 있기 마련. IMF도 하나의 큰 위기였지만, 박종욱 대표는 중국이 새로운 생산 기지로 떠오른 것 역시 경영인으로서 딜레마에 빠질 수 있는 큰 위기라 말한다.



“모두들 중국 OEM 방식으로 저가 제품을 생산해서 국내에 들여왔죠. 사람들은 일단 가격이 싸다는 것에 혹할 수밖에 없어요. 지금이야 욕실의 가치에 대해 사람들이 조금씩 인지해가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욕실은 여전히 본질적인 기능에만 충실한 공간이었거든요. 우리 기업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가격 경쟁력에서 뒤처지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중국 OEM 방식을 수용했지요.” 박신규 회장이 새로운 선진 기술을 최초로 국내에 들여와 변화를 만들어낸 것처럼 박종욱 대표 역시 기업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이제는 가격이 아니라 다른 기업들과 달리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 것. “쉽게 생각하면 이겁니다. 모든 욕실 기업이 저렴한 제품을 생산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럼 국내 욕실 산업 시장에는 온통 ‘저렴한 것’들이 가득하겠지요.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까지 싸게 팔 수 있을 것이냐 하는 한계는 분명히 존재할 겁니다. 어느 한 기업은 좋은 제품, 좋은 욕실 문화를 위해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의 소비자들은 좋은 제품을 쓸 수 있는 기회조차 가질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러한 기업이 필요하다면 로얄앤컴퍼니가 하겠다는 겁니다.”



브랜드의 가치를 만들어야 할 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박종욱 대표는 브랜드의 가치는 기술적인 차별화에서 오는 가치, 또 다른 하나는 브랜드를 소비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에서 얻어지는 가치, 두 가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두 가지 모두를 만족시킬 때 소비자들은 비로소 브랜드의 가치를 인식하고 그 브랜드를 소비할 것이라 생각했다. “욕실 브랜드가 왜 갤러리를 만들고 레스토랑을 운영하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이 공간을 만드는 데도 돈이 한두 푼 든 게 아닙니다. 레스토랑에 있는 가구만 하더라도 디자이너의 작품들이라고 해서 꽤 많은 돈을 들였지요.



그런데 ‘이러한 공간을 운영하는 브랜드에서 만드는 욕실 제품이라면’ 하고 생각해주는 이가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갤러리로얄이 존재하는 것이고, 10월에 오픈할 화성센터를 만드는 이유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사장이 뭐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싸게 팔아서 당장 4~5년 좀 더 벌자고 사업하는 것은 저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지 않더라고요. 어차피 우리가 이 사업을 시작했고, 한 세대의 욕실 문화를 책임지고 이끌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은 소비자들에게 가치를 인식시키고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사업은 현실인지라 뜻이 좋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미래가 보장된 것 또한 아니지만 말입니다.(웃음)”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 사람들이 즐겁게 식사하고 여유를 즐기는 레스토랑, 최첨단 욕실을 체험할 수 있는 전시장까지. 갤러리로얄은 로얄앤컴퍼니의 새로운 비전이 투영되어 있는 곳이다.








새로운 세대를 이끈다는 마음



“내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스스로 놓기란 쉽지 않습니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지 않겠다는 것은 여태 머물러 있던 항아리에서 빠져나오지 않겠다는 의미거든요. 그것을 놓고 그 항아리에서 빠져나와야 다음 성장이 가능한 것이죠.”



박종욱 대표는 경영권을 이어받고 2009년 일본의 세계적인 욕실 제품 기업인 토토와의 협력 관계를 정리했다. 이는 과거 박신규 회장 시절에는 선진국과의 기술력 차이를 줄이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길을 스스로 개척해야 할 때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창업자가 만든 성공 논리를 가지고 계속해서 기업을 운영하는 2세, 3세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2세 경영자는 제2의 창업을 해야 합니다. 회장님이 회사를 이끌던 시대는 아파트가 처음 생기기 시작한 때라 국내 건축 산업과 욕실 산업이 성장하는 시기였지만, 지금은 환경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성숙기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성장기에 쓰던 경영 방식을 고수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직원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종욱 대표는 “이제 로얄앤컴퍼니는 소비자에게서 새로운 니즈를 창출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소비자는 현실에 익숙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대한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고. 때문에 기업이 혁신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겨울에 출근 준비를 할 때 말입니다. 욕실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머뭇거리는 순간이 언제인지 아십니까? 바로 처음 샤워기 물을 트는 순간입니다.



한겨울에 샤워기를 트는 순간 나오는 차가운 물이 발등에 몇 방울 튀는 것이 별거 아닌데 소름 끼치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샤워기 리모컨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양치하는 동안 샤워기 물 온도를 미리 맞춰 틀어놓고 겨울에도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샤워 부스 안에서 샤워할 수 있거든요.



물 낭비라고요? 아니지요. 찬물 틀어놓고 김이 올라올 때까지 버리는 물은 어떻고요. 애초에 원하는 온도의 물이 세팅되어 나오니 훨씬 물이 절약되는 셈입니다. 샤워기 리모컨을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소비자는 없거든요. 소비자는 써보지 않으면 그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죠.



그래서 브랜드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뒤이어 박종욱 대표는 아버지가 자주 하던 말을 빌려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버지는 ‘언덕을 달리는 두발자전거의 페달을 멈추면 안 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업은 변화할 때보다 머물러 있을 때 더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경영은 결과론이기 때문에 우리 기업이 훗날 성공한다면 더할 수 없이 좋은 것일 테고, 실패하면 무모했다는 소리를 듣겠지요.(웃음)”



한 나라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기까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많은 고난과 선택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일본 브랜드와 협력을 꾀할 때, 남들은 중국으로 생산 기지를 옮기고 있을 때 몇천억을 들여 국내에 거대한 생산 공장을 포함한 복합 공간을 조성할 때, 이들의 선택은 얼마나 많은 고민과 분석에서 시작되었을까.



‘좋은’ 욕실 문화를 선도하기 위해 결코 단순한 장사꾼이 되지 않겠다는 마음이 이들을 성공으로 이끄는 요인 아닐까.











기획_김은정 | 사진_전택수(JEON Studio)

레몬트리 2014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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