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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국정의 본산「세종로 1번지」34년 명멸했던 주역들은 말한다|농지개혁(4)

농지개혁 심의에서 몇 가지 중요문제가 제기됐다.『분배 후 3정보나마 가질 농가는 8만호에 불과해 결과적으로 모든 농가를 영세농으로 전락시킨다』(이성학 의원),『영세농들로선 상환금 농지세 수리세 등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 영세 소작인들은 10년 후의 자기농지보다는 우선의 생계가 더 급하다』(강선명 의원),『2차대전 후의 유럽농지개혁 실패는 농업인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건이 더 나쁜데 농업인구의 분산을 고려해야 한다』(박경현 의원)는 것 등.

사실 그 무렵 남한에선 토지재벌이 있었을 뿐 다른 산업자본이란 거의 없었다. 따라서 토지자본을 다른 산업자본으로 유도해 농업인구를 흡수하는 측면도 요긴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농토는 농민에게」라는 큰 흐름에 떠밀렸다.

논란 끝에 상한선 3정보로|위토는 인정종교기관 농지는 불허|가장 관심 컸던 보상은 15할로 낙착|본회의상정 49일만에 국회통과방청석선 박수 터져

<「자영」문구도 말썽>

국회의 토론은 그런 흐름과 당시의 농촌을 반영했다. 농지상한선, 교육 및 종교기관이 농토, 위토문제도 큰 쟁점이었다. 상한선 3정보를 둘러싼 공방전. 강욱중 의원(함안 족청)-『농지상한선 3정보는 머슴제도를 인정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 있읍니다. 3정보를 머슴 없이 지을 수는 없어요. 역사적인 농지개혁을 하는 마당에 이 머슴제도를 타파하는 뜻에서도 2정보로 줄여야 합니다.』

김승회 의원(진도 무소속)-『남한에는 순소작인이 92만, 땅이 적은 농민이 53만, 머슴이 4만1천명 등 땅을 분배받아야 할 농가가 l백53만5천 호 있으나 분배할 농지는 고작 76만9전정보올시다. 따라서 호당5단보(1천5백평)씩 밖에 돌아가지 않는데 3정보(9천평)라 함은 전혀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닙니까. 최소 3정보는 돼야 교육이라도 시킨다고 하는데 그러면 나머지는 문맹이 돼도 좋단 말이요…』

장병만 의원(칠곡 독촉)-『충청도 전라도는 땅이 많아 머슴을 두고 6∼7정보도 짓지만 경상도는 사람은 많고 땅이 적어 2정보도 부농이다. 3정보로 하면 농촌은 황폐해질 것이다.』

박해정 의원(경산 무소속)-『농민에게 창의와 자유를 줘 경쟁을 시키기 위해서도 3정보가 필요하다. 3정보로 함으로써 그 미만의 땅을 가진 사람이 땅을 늘리려고 노력할 것이요. 만일 2정보로 하면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 도시에 가서 브로커나 협잡꾼이 될 것입니다.』

조영규 의원(영광 한민당)-『나는 일개 소작인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만일 그때 자유경제가 아니었고 2정보라는 제한을 받았다면 조영규가 오늘 양복입고 이 자리에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3정보도 오히려 부족합니다.』

최봉식 의원(울산갑 무소속)-『농지상한선만 갖고 2정보다, 3정보다 논하는데 왜 상한선만 정하고 하한선은 정하려 하지 않는가. 이것은 개혁의 의도인 농가경제의 균형을 외면한 것이다.

당연히 농지소유 하한선을 정해 골고루 땅을 분배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또 진짜 부자는 도시에 몰려있는데 이 거대한 도시재산도 도시빈민에게 분배해야 하지 않겠는가. 만일 상한선만 정한다면 호당 l0정보가 타당하다고 본다.』

이런 논란에 대해 조헌영 산업위원장대리(영양 한민당) 는『옷도 스무 자로 짓는 옷, 다섯 자로 짓는 옷이 있습니다. 어떤 농가는 식구가 30명이나 돼 3정보로도 적습니다. 3정보는 최고 한도입니다. 농민도 국민답게 살려면 더 늘려줘야 한다는 의논도 있었으나 절충점을 취해 3점보로 한 것입니다』고 설명했다. 결국 무기명 표결로 3정보안이 가결됐다.

상한선문제가 끝나자 자경자영도 논쟁거리가 됐다.

자영이란「직접 도구를 들고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을 써서 자신이 농업을 경영하는것」을 말한다. 그런데 원안에는「자경 자영하는 3정보」로 규정했기 때문에 논란이 인 것이다.

한쪽에서는「자영」이란 문귀를 넣으면 3정보 범위 안에서 다시 소작제도가 부활돼 농지개혁의 뜻이 없다는 주장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자영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농업노동이 없어질 것이므로 말이 안된다는 주장이었다. 이재형 의원(시흥 무소속) 은『상공업과 같은 다른 업종에는 종업원을 써서 경영하는데 농업만 자영을 거부한다는 것은 깊이 고려해야 할 문제다. 모든 사회적 모순이 단숨에 해결되지 않는 것을 알진대 자영하는 제도를 남겨두고 점진적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주장, 자영을 인정하는 원안이 통과됐다.

<향교재단 살려달라>

토론이 공공 교육 종교 후생기관의 토지를 인정할 것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에 이르러서는 인륜 도의에 관한 논쟁이 붙는다.

권승구 의원(의성을 대한독촉) 곽형근 의원(인천갑 무소속) 등은『종교 후생단체에 농지를 부여한다면 이것 역시 소작제도를 의미한다. 농지개혁이 소작을 없애자는데 소작관계를 남겨놓는다는 것은 가장 모순된 법이므로 농민들이 집어치우라고 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그러자 유림출신의 김우식 의원(달성 무소속) 이 나섰다.『농민대중을 대표한 우리 국회의원입니다만 저는 또한 5백만 유림을 대표했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 유림들이 향교재산토지를 매수치 말아달라는 진정서가 사무국에 산더미같이 쌓여 있습니다. 요약해서 말씀하면 향교재단을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이귀수 의원(고성 무소속)도 『우리는 공자님을 통해서 동방예의지국이 됐어요. 8 15해방된 원인을 살펴보면 자연적으로 된 것이 아니라 공자님의 교훈에 의한 것이요, 이준 열사 윤봉길 의사 등 선열이 피를 흘린 것은 공자님의 도를 지켰기 때문』이라는 색다른 논리를 폈다.

김명동 의원(공주갑 무소속)도 거들었다.

『농민에게 농지를 분배하지 않고서는 공산당을 없앨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공산당을 배격하려면 공자가 아니고서는 도무지 안됩니다. 우리 나라에 야소교라든지, 불교라든지, 천도교라든지 하는 종교가 활동하는 까닭에 아직까지 공산당이 요만큼 밖에 나지 않은 것은 그 종교의 공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 종교의 땅을 인정하는 것이 즉 농민을 살리는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종교기관의 토지인정은 부결됐다. 다음은 위토문제. 이것은 역시 유림출신의 김우식 의원의 제안으로 분묘 1기당 2단보(6백평)의 위토를 인정하자는 것이었다.

김 의원의 제안설명.『효자지문에서 충신을 구하라는 옛말이 있습니다만 애국심을 배양하자면 조선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분묘 1기당 2단보>

이번 토지개혁에서 조선분묘를 수호하는 토지에 대하여 특별한 은전을 주지 않고 전부 국가가 매상한다면 이것은 정말 중대한 문제입니다. 혹 봉건제도라고 해서 일단 쇄신을 주장하는 분도 계실 줄 압니다만 그러나 봉건사상을 타파하는 것보다 도의관념을 앙양케 함이 효과가 큽니다.』

그러나 반대도 거셌다. 김대선 의원(울산을 무소속)은 『과거에 돈푼이나 갖고 위토를 장만한 사람은 그 위토를 가지고 조상을 잘 모시고 과거에 돈이 없어서 헐벗고 굶주린 농민들은 위토 한자리 없어 초상을 위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이들은 불효자가 되라는 말입니까. 이조 5백년 조선사람이 왜 망했습니까. 조상을 껍데기로 숭배했다 그말이예요. 묘지싸움하고 벼슬 팔고…. 시방 또 시퍼런 두루마기 입고 묘지싸움 다니면 우리 나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농지개혁을 안하면 모르겠거니와 한다면 이것은 안됩니다.』

이귀수 의원은『산업위원들도 자기 부모가 있고 선조가 있을텐데 암만 토지개혁을 한다고 선조를 위하는 몇 평까지 농민에게 갈라준다고 하면 농민들도 땅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산업위원들을 책망하고『우리는 수정안을 낸 김우식 의원으로 해서 훌륭한 국회의원이란 말을 듣게 됐어요. 만약 이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우리 동족의 피를 못 받고, 외국사람의 피를 받은 사람이라고 나는 인정해요』라고 몰아붙였다.

곽형근 의원(인천갑 무소속) 도『효도가 물가에 따라 나타난다고 하면 이야말로 돈 있는 계급에게만 효도가 있고 돈 없는 자들은 전체가 불효가 될 것이올시다. 토지개혁을 하는데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러나 이 안은 분묘 1기당 2단보씩 위토를 인정하는 것으로 낙착됐다.

위토문제에 이어 대체토론에서 큰 논쟁이 붙었던 지주에 대한 지가보상문제가 나오자 국회는 아연 긴장했다.

정부매수가격을 몇할로 할 것이냐 하는 것으로 농림부의 원안이었던 l5할, 기획처 안이었던 20할, 한민당과 산업위원회 측의 30할 이외에 10할, 12할, 12할5푼 등 보상률에 있어서 6가지, 수정안으로는 9개가 나왔다.

<관계자들 기뻐 눈물>

49년 4월25일 상오 10시. 분위기는 아침부터 유난히 술렁거렸다. 방청석은 입추의 여지없이 꽉 찼다. 농림부 국회의원 지주 소작인 할 것 없이 이날 결정된 지가 보상률에 비상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김광준 황호현 서우석 황두연 민경직 의원 순으로 발언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날의 토론은 표결방안에 집중됐다.

내용은 대체토론에서 논란을 거쳤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적은 율로부터 높은 율로 순서대로 기립표결하기로 했다.

표결에 들어가 재적 1백52명 중 10할 가 45, 부 11표, 12할 가 48, 부 3표, 12할5푼 가 47, 부 4표로 모두 미결되고, 15할 가 86, 부 3표로 15할안이 가결됐다. 순간 홀 안에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국회는 이 조항(제7조1항)을 끝으로 나머지 조항은 토론 없이 가부표결만으로 처리했다. 회기 말이 닥친데다 예산처리가 급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이틀 뒤인 27일 농지개혁법은 본회의를 통과했다.

순간 중앙청 의사당 안은 금지돼있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회의를 지켜본 이종현 농림장관이 앞으로 뛰어나와 국회의원들과 껴안고 기뻐했다. 강진국 농지국장의 눈에는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3월10일 농지개혁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지 49일 만이었다.

강진국 씨의 회고.『농지개혁법 심의에서 가장 애를 먹은 것이 할 문제와 농지상한선 이었습니다. 농림분과위원회서 한민당은 30할에 5년 상환을 제의 했었죠. 1년의 생산량 중 6할을 내놔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한참 토론하다 김상순 의원이 크게 깨달은 듯,「우리들이 모두 사퇴해야 한다. 1년에 6할 상환이라니 농민들이 우리에게 뭐라 하겠는가」라고 하더군요.

농지하한선문제도 고려했었으나 그렇게 하면 좁은 농토 때문에 모든 농민을 반정보 이하의 영세농으로 만드는 결과가 돼 채택하지 못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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