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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월요일] 도토리 별미 반세기 … 대전 ‘구즉묵’ 이야기



한국전쟁 직후 어떻게든 돈을 벌어 자식을 키우고자 어머니는 행상을 나섰다. 동네에 지천으로 널린 참나무에서 도토리를 따서는 묵을 쒀 소쿠리에 담아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팔았다. 그러기를 10여 년. “맛있다”는 단골이 생겼다. 집으로 직접 찾아와 사가는 손님도 있었다. 누구는 “아예 식당을 차리라”고 권했다.

멀리 가면 발병 날까 30년째 옹기종기 매일 묵 쑤는 마을



 1960년대 후반 들어 집 마당 평상에 소반을 놓고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기를 또 10여 년. 명성을 얻어 전국에서 손님이 왔다. 그 모습을 본 동네 주민들이 너도나도 도토리묵집을 차렸다. 묵집은 80년대 초반 10여 개에서 90년대 초 30여 곳으로 늘었다. 5년 전 작고한 강태분 할머니가 대전시 봉산동 구즉(九則)마을에서 시작한 도토리묵 장사는 그렇게 20여 년 만에 ‘묵마을’을 형성했다. 이곳의 도토리묵에는 ‘구즉묵’이란 별도의 이름까지 붙었다.



간장 또는 멸치·다시마로 맛을 낸 국물에 채 썬 도토리묵을 넣고 고명을 얹은 ‘묵밥’. 밥은 없지만 끼니를 대신할 만하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다. 묵마을을 일군 고 강태분 할머니가 집에서 손님에게 내던 것이 상품화됐다. [프리랜서 김성태]


 구즉묵이 이른바 ‘대박’을 친 것은 93년 대전에서 열린 엑스포 때였다. 대전에 지역을 대표할 음식이 없었다. 염홍철(70) 당시 대전시장은 “그나마 이름난 식당의 메뉴가 설렁탕·삼계탕·냉면처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며 “도토리묵 역시 흔했지만 제고장 재료를 쓰는 데다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점이 눈에 띄어 향토음식으로 지정했다”고 말했다. 묵마을이 엑스포대회장에서 5㎞밖에 떨어지지 않다는 점도 작용했다.



고(故) 강태분 할머니
 그게 히트했다. 특히 강 할머니가 운영하는 ‘할머니집’에서 내놓은 ‘묵밥’이 잘 팔렸다. 간장으로만 맛을 낸 국물에 묵을 채 썰어 담고, 그 위에 김치·김·깨 같은 고명을 얹은 음식이다. 밥은 들어가지 않지만 “끼니를 때울 만하다”고 해서 ‘묵밥’이라 불렀다. ‘묵말이’ ‘묵사발’이라고도 한다. 원래 강 할머니에게 도토리묵을 사러 먼 데서 손님이 오면 서비스로 내놓던 것을 식당 개업과 더불어 메뉴로 삼았다. 강 할머니의 ‘할머니 식당’을 3대째 잇고 있는 손자 이성렬(36)씨는 “엑스포 땐 손님이 밀려 칼로 일일이 채 썰 수가 없었다”며 “할머니께서 틀에 낚싯줄을 매어 묵 위에서 찍어누르는 식으로 채 써는 방법을 발명해 지금까지 쓰고 있다”고 했다.



 구즉묵은 대통령도 찾는 음식이 됐다. 2002년 한국과 이탈리아 간의 축구 월드컵 16강전을 응원하러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전에 왔을 때였다. 수행원까지 330인분 묵밥을 배달시키는 바람에 온 동네 가게들이 부산을 떨었다고 한다.





 묵마을은 2006년 위기를 겪었다. 봉산동 일대가 아파트와 상가로 재개발되면서다. 묵집들도 모두 떠나야 했다. 아예 문을 닫은 곳도 있지만 강 할머니의 집은 500m 떨어진 지금의 자리에 새로 문을 열었다. 다른 집들은 2㎞쯤 떨어진 호남고속도로 북대전 인터체인지 부근에 모여 새 묵마을을 형성했다. 묵마을 식당 주인들은 “아리랑 노랫말처럼 발병이 날까 10리(4㎞)도 못 간 것”이라고 했다.



 2006년 재개발 공사가 시작되기 직전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묵마을에 들렀다. 원래는 강태분 할머니의 원조집에 가려 했으나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 시위 때문에 북대전IC에 먼저 자리를 잡은 ‘산밑 할머니 묵집’에서 묵으로 저녁을 먹었다.



묵마을 원조 묵집인 강태분 할머니의 식당. 1990년대 모습이다. 지금은 500m 떨어진 곳으로 옮겼다.


구즉묵마을에서 맛볼 수 있는 도토리묵 요리들.
 구즉마을이 재개발됐지만 동네에 도토리나무는 많이 남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유명세를 탄 지금은 도토리가 부족해 전국 곳곳에서 도토리를 구한다. 단 요즘은 예외다. 햇도토리를 막 거둔 데다 작황까지 좋아서다. 전부 구즉마을 도토리로 묵을 만든다. 이상복(60)씨는 “햇도토리로 묵을 만들면 쌉쌀한 맛이 더 나고 묵에 탄력이 더해진다”고 말했다.



 예전처럼 집집마다 가마솥에서 묵을 쑤던 풍경은 사라졌다. 새로 옮긴 묵마을은 2012년 ‘여울묵영농조합’을 만들어 반쯤 자동화된 시설에서 공동으로 묵을 만든다. 기계에서 도토리를 까서 말린 뒤 가루를 내어 4~5일 물에 담가 놓는다. 그래야 떫은 맛이 사라진다고 한다. 앙금을 건져 사람 키만 한 원통형 솥에서 끓인 뒤 식히면 묵이 완성된다. 영농조합 김효식 공장장은 “중요한 것은 도토리 가루와 물의 비율, 그리고 약간의 첨가물”이라면서도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5월 생긴 구즉묵마을 체험관 모습. 체험관에서는 직접 도토리묵을 만들어볼 수 있다.
 다들 이렇게 함께 묵을 만들건만, 떨어져 있는 원조 할머니집은 예외다. 원조 할머니집을 운영하는 이성렬씨는 “도토리 가루와 물, 소금과 식용유가 재료의 전부”라며 “옛 방식 그대로 도토리묵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 역시 구체적인 방법은 밝히지 않았다.



 강 할머니집을 빼면 묵은 함께 만들지만, 국물과 김치 같은 고명, 그리고 묵을 찍어 먹는 양념장은 모두 다르다. 여기가 일종의 승부처인 셈이다. 어디는 멸치 또는 다시마 국물 육수를 사용한다. 묵은 김치를 얹어내는 곳도 있다. 값은 1인분에 5000~6000원으로 대부분 비슷하다. 대부분 묵과 어울린다는 보리비빔밥을 메뉴로 함께 갖췄다. 토요일인 지난 1일 충북 청주에서 이곳으로 묵을 먹으러 온 김원중(54)씨는 “도토리묵이 다이어트와 성인병 예방에 효능이 있다고 해 아내와 자주 온다”며 “집 주변에서 파는 도토리묵보다 탄력이 있고 고소함이 더하다”고 했다. 



원조 할머니집에서는 간장만으로 국물 맛을 낸다. 이곳에선 아직도 강 할머니가 생전에 담근 간장과 된장·고추장을 사용한다. 앞으로 3~4년은 더 쓸 수 있다고 한다. 엑스포 때부터 20여 년간 강 할머니 식당을 찾는다는 신용호(50·대전시 자양동)씨는 “엑스포 때 처음 왔을 당시 테이블에 와서 도토리묵에 대해 설명해주던 할머니 모습이 기억난다”며 “만드는 방법과 간장·된장이 그대로여서인지, 할머니 손맛이 지금도 느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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