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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담 쌓고 사는 세상 독서 풍토 개선이 먼저다

중앙포토
요즘 달라진 우리 사회의 표정 하나는 사람들마다 얼굴이 없어졌다는 기막힌 현실이다. 전철 속에서도, 길을 걷는 중에도, 심지어는 가족끼리 둘러앉은 식탁에서도 다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서로 간의 대면을 기피하고 있어서다. 이뿐만 아니라 공동 목표를 추구하는 사무실 속의 구성원들도 하나같이 컴퓨터 모니터만 쳐다보느라고 마주 볼 수도, 대화를 나눌 짬도 없어져 버렸다. 그런데 정보의 소통 형식으로는 그 신속성 때문에 탁월한 이 두 요지경은 장차 인간의 두뇌 회전을 극도로 제한함으로써 세상의 역동적 변화상에 대한 이해 수준을 급격히 떨어뜨릴 게 자명해 보인다. 왜냐하면 어떤 분야에 대한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앎의 질서인 지식과 달리 정보는 단순한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에 써먹고 버리는 한낱 기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보란 말 자체에도 이미 그런 가변성, 편의성, 소모성 같은 기능이 적시되어 있다. 요컨대 지식은 숱한 정보들의 물리적 집합인 동시에 인간관계, 사회현상, 세상변화 등을 확실하게 해명한 사유체계일 수 있다. 그런데 이 막강한 권력으로서의 지식은 책을 통해서 얻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책=지식’ ‘인터넷=정보’라는 등식도 통할 법하다.

[기고] 본말 전도된 도서정가제

식자 무교양은 독서 부재 때문
세상사 분별과 인간사 이해에는 책만큼 자상하고 편리한 선생이 달리 없건만, 우리 사회는 이 만만한 평생 반려자를 한사코 따돌린다. 이런 독서 백안시 풍조는 개개인의 무사분주한 일상시간 관리벽에도 기인하지만, 사회적인 기풍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 단적인 실례로는 어릴 때부터 이런저런 유명무실한 재능 개발에, 그 후로는 ‘과외망국’이라는 말대로 입시용 학습에 시달리느라고 독서 체험을 내면화하지 못한 생활습관을 들 수 있다. 우리의 성인 남녀가 대체로 술, 노름, 모임 같은 소일거리에다 엉뚱한 정열을 과시하는 것은 일찍부터 혼자서 즐길거리를 찾는 노력에 등한해서 그렇지 않을까. 또한 학력이 짱짱한 지도층 인사들도 대체로 좋다 싫다, 된다 안 된다, 옳다 그르다 같은 단순한 감정표현 더 이상의 조리 전개에는 어휘력 빈곤만으로도 ‘무식한 인문적 소양’을 유감없이 드러내는데, 들어봐야 재미도 없고 발상이 신선할 리 없다. 이런 식자 무교양, 토론 무시, 억지 주장 같은 폐단도 독서력 부재 때문임은 분명하고, 결국 이런 ‘대세’가 걸핏하면 대통령을 찾아가서 하소연하자는 식의 무분별한 자기주장만 되뇌는 풍조를 낳고 있는 셈이다.

도서정가제, 거대 온라인 서점만 보호
정보 탐색증, 스마트폰 애호증, 책 기피증이 자심한 이런 세태 속에서 도서정가제가 새삼스럽게 화제로 떠올랐으니 어딘가 본말이 전도되었다는 느낌부터 앞선다. 알다시피 이번의 도서정가제 실시는, 그동안 온라인 서점들은 주문받은 책을 일정하게 할인해서 팔 수 있었지만 오프라인 서점은 정가대로 매매했으니 이 불공평을 차제에 시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도서라도 15%까지 할인해도 된다는 이 도서정가제의 골자는 결국 거대기업인 온라인 서점들의 기득권에 대한 추인처럼 보인다. 프랑스는 아예 온라인 서점도 정가대로만 팔라는 간명한 도서유통법을 발효시키고 있다고 한다. 물론 그 취지는 오프라인 서점을 보호, 존속시키겠다기보다도 같은 조건 아래서 영업하게 함으로써 독자들의 차별 혜택을 불식시키겠다는 것이다. 실로 명실상부한 도서정찰제가 아닐 수 없다. 따져 보면 도서할인제 같은 편법이 독자의 주머니 사정에 대한 진정한 배려도 아닐뿐더러 독서 풍토의 진작, 독서 인구의 확충 같은 장기적인 안목과는 겉도는, 좁은 시장을 과점하고 말겠다는 일종의 ‘잔머리 굴리기’ 행태라는 사실이다. 그거야 어쨌든 집에서 책을 받아 볼 수 있다는 편의성 때문에라도 앞으로 온라인 서점의 영업 실적은 오프라인 서점들보다는 상대적으로 훨씬 앞설 게 틀림없다. 따라서 매장 임대료 같은 여러 불리한 조건을 감안하더라도 오프라인 서점의 보호, 육성에 출판 및 유통 전문가들이 중지를 모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 여겨진다.

책은 서점에서 직접 골라야
필자의 사견에 불과하지만 책은 서점에 가서 독자 자신의 고유한 분별안으로 책 표지부터 본문의 활자 크기까지 따지며 알뜰구매에 이력을 붙여야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책광고, 책소개 속의 허풍스러운 ‘정보’에 홀려 주문했다가는 반드시 후회한다는 ‘정보’만큼은 믿어도 좋을 것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더니 책 시장만 법으로 다스려 놓으면 독자들은 저절로 의젓한 지식인 반열에 오를 것이라고?

 세상의 이치가 그렇게 굴러간다면 무엇이 아쉬워서 ‘제발 책 좀 읽어라’는 헛소리로 목이 멜까. 다시 한번 분별해 보면 권위 있는 서평지가 없어서 그럴 텐데, 과장스러운 ‘정보’에 자발적으로 속아줘서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고 나면 반드시 헛돈을 쓰고 말았다고 후회하는 필자의 경험에 비춰 볼 때, 온라인 서점들이 가수요를 부추기는 데는 크게 기여한 듯하다. 온갖 편법 덧붙이기에 일가견이 있는 우리의 체질상 아무리 멀쩡한 ‘제도’도 이내 누더기가 되고 마는 선례를 보더라도 이번의 도서정가제도 임시의 호도책일 것임은 분명하다.


김원우 소설가·전 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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