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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세상탐사] 국가를 믿고 살아야 하나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지금 ‘공산당 선언’을 쓴다면 이렇게 시작할 게 분명하다. “하나의 유령이 세상을 배회하고 있다. 위기라는 유령이….”

그야말로 도처에 위기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견뎌냈더니 이젠 투자와 금리, 물가, 소비가 동시에 바닥을 기는 복합 위기다. 저성장 위기, 고령화 위기, 조기퇴직 위기, 청년실업 위기는 이미 더불어 사는 이웃처럼 된 지 오래다.

노상강도처럼 직접 목숨을 노리는 위기들도 주위에 상존한다. 건물이 무너지고 다리가 붕괴되는 게 결코 과거형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여객선이 침몰하고 체육관 지붕이 내려앉으며 지하철 환풍구가 추락하는 위기가 현재 진행형임이 확인됐고, 미래형으로도 계속될 게 틀림없는 사실이다.

위기는 이 나라 국경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9·11 테러는 경제 요인이 아닌 위기도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암울한 전주곡이었다. 테러의 글로벌화는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처럼 테러리스트들이 국가권력을 참칭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발칙한 테러리스트들이 세계(미국과 미국에 동조하는 국가들)를 상대로 전쟁(테러)을 선언하는 지경까지 됐다. 그것은 테러가 더욱 무차별화되고 잔혹화하는 걸 뜻할뿐더러 한반도 또한 더 이상 테러 청정지역이 아니라는 의미도 된다. 이 땅에서도 언제 ‘외로운 늑대(자생적 테러리스트)’가 울부짖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여러 차례 해프닝을 겪었듯 에볼라 바이러스 같은 치명적 전염병 또한 더 이상 먼 나라 일이 아니다. 서부 아프리카처럼 창궐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 그 자체가 위기가 된다. 입국 금지, 취항 금지 같은 예방적 조치들은 물론 발병 의심과 온갖 유언비어 난무 같은 사회적 불신만으로도 상당한 비용을 치러야 하는 까닭이다.

더 큰 문제는 국가가 더 이상 이러한 위기들을 막아주는 우산이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예방은커녕 극복조차 하기 어렵다. 치유는 더욱 기대난이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반년이 넘도록 여전히 물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알몸을 보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그 같은 국가의 무기력증이 비단 대한민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 최강 미국이 세계 최고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지고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나도 많이 목격하고 있다. 유럽의 두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 카를로 보르도니가 함께 쓴 『위기의 국가』는 바로 이런 모습의 국가를 조망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두 사람은 오늘날 국가가 국경 밖은 말할 것도 없고, 국경 안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상실한 상태라고 의견을 모은다. 국가가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가져야 할 두 개의 조건은 권력과 정치다. 권력은 사태를 처리할 능력이며 정치는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국가는 정치의 통제를 받지 않는 초국가적인 세력(글로벌 금융자본이나 다국적 기업 같은)에 자기의 권력을 지속적으로 빼앗겨 왔다. 오늘날 국가의 위기는 이처럼 권력과 정치가 분리되는 상황에서 빚어졌으며, 위기에 맞설 짐을 개인에게 전가하고 스스로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국가 없는 국가(state without a state)’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권력을 쥔 초국가세력은 유권자들의 불만에 귀 기울일 의무도 없고 불만을 가라앉히기 위해 희생할 생각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정치 또한 변질되지 않을 수 없다. 권력을 상실한 국가의 정당들은 “현실 문제로부터 대중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만들어진 가공의 문제들을 두고 경쟁하는 집단”으로 축소된다. 정당 간의 정치게임은 계속되지만 그 게임은 사회적 의미를 갖지 못한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유권자들은 위기로부터 스스로 돌봐야 하고 자신의 복지를 스스로 챙겨야 한다.

두 학자가 말하는 전 지구적 현상은 우리의 현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어째서 위기가 그치지 않는지, 국가가 왜 그리 무능력한 건지,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은 어떻게 생겨나는지 대답을 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믿지 못할 국가와 딴짓하는 정치인들 속에서 위기와 친해지는 수밖에 없을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언제 어디서든 현실이 될 수 있는 위기에 눈을 부릅뜨고 개개인의 지혜를 발휘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능력도 의지도 없는 국가만 믿고 있다 갑자기 들이닥친 위기 속에서 영문도 모른 채 질식사하는 것보단 낫지 않겠나.


이훈범 중앙일보 국제부장 cielble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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