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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5년] 의약분업

최근 일반 의약품은 물론 화장품·생활용품까지 판매하는 ‘드러그스토어’가 국내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관련 제품의 제조는 물론 유통에까지 참여하는 국내 대기업들이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드러그스토어’ 사업에 속속 뛰어들면서 기존 ‘동네 약국’과 화장품 전문점이 고사할 위기를 맞고 있다. 사진은 30일 오픈된 GS왓슨스 명동점. [연합]

2000년 7월 1일 의약분업이 시행된 지 5년이 지났다. 정부는 "국민 의료 향상 효과는 단기간에 계측하기 어렵다"며 종합적인 판단은 유보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 가운데는 의약분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보다 불편해지고 의료비 지출만 늘어났다고 느끼는 사람이 훨씬 많다.



국민 부담 늘어난 '비싼 개혁'
추가 부담액 19조원 추정 … 건보료 두 배 이상 올라
항생제 처방 줄었지만 더 비싸고 강한 약으로 바뀌어

◆ 늘어난 국민 부담=의약분업을 추진하던 1999년 12월 차흥봉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에 "(의약분업을 해도)돈이 더 안들 것"이라고 보고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물론 복지부 내부에서도 추가재정 부담문제를 제기해왔으나 이를 묵살한 것이다. 그러다가 제도를 시행하기 직전인 2000년 6월에야 보사연 자료를 토대로 연간 1조5000억원가량의 부담이 생길 것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의약분업에 따른 의사들의 반발 등을 줄이기 위해 99년 8월(9.0%)과 2000년 4월(6.0%).5월(9.2%) 등 의료 수가를 잇따라 올리면서 추가 재정 부담이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추가 부담 규모는 커졌다. 의약분업이 되면 약물 오남용 감소 등으로 약제비가 줄 것으로 예상했지만 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의사들이 고가의 오리지널 약을 많이 처방하고, 약국 조제료가 신설된 것이 원인이다. 이화여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정상혁 교수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청구된 보험급여청구자료를 분석한 결과 의약분업 시행 이후 5년간 19조7500억원가량이 건강보험재정에서 추가로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됐다. 건보 재정은 건보가입자들이 낸 돈인 만큼 결국은 국민 부담이 그만큼 늘어난 셈이다.



지출이 늘면서 건보 재정이 부실해졌고, 정부는 건강보험료를 대폭 올렸다. 가입자당 월 평균 보험료가 99년 3만5484원에서 2004년 7만2713원으로 105%나 올랐다. 동네의원 이용료도 분업 전에는 2200원에서 지금은 4500원(의원 3000원, 약국 1500원)이 됐다. 같은 기간 건보 재정에 대한 국고지원금(담배 부담금 포함)도 200%가량 증가했다. 국민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을 거라던 정부의 당초 목표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 불만족스러운 의료 혜택=정부는 의약품 오남용 감소와 임의 조제 근절, 그리고 환자의 알권리 신장 등을 의약분업의 성과로 꼽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처방전 한 건당 처방된 항생제 수는 의약분업 시행 전인 2000년 5월 0.9개에서 올 3월 0.49개로 45.6%가량 줄었다. 같은 기간 주사제는 46.8%, 스테로이드제제는 36.8% 줄었다. 의약분업으로 인한 처방전 공개 덕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2001년 시행한 약제 적정성 평가 때문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이 있다. 약제 적정성 평가란 전국 의료기관별 항생제.주사제 등의 처방률과 진료과목별 평균 처방률을 통보해 주는 제도다. 가령 A내과의 처방률이 전국 내과 의원 평균보다 높으면 비교 데이터를 제시하며 처방을 줄일 것을 요구하니 의료기관은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항생제 처방이 줄지만 약효가 강하고 비싼 약으로 바뀌는 문제점도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 자료에 따르면 제약사들이 생산한 항생제 총액이 99년 9982억원어치에서 2003년에는 1조762억원어치로 7.8% 늘었다.



또 정부는 의약분업이 되면 약국 임의조제를 이용하던 환자들이 의료기관으로 향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중증 질환의 조기 발견이 늘어나는 등 국민 의료 향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정 교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이전에 약국의 임의조제가 연간 1억7000만 건이었다"며 "중복 방문과 자연증가율 등을 감안해도 이 중 8~9%만이 약국 대신 의료기관을 찾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약이나 의료기기, 치료 재료 등을 둘러싼 리베이트 감소도 정부가 내세운 의약분업 목표 중 하나였다. 지난 5년 동안 어느 정도 줄어들었지만 중소병원이나 동네의원은 여전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 때문인지 국민의 평가는 인색한 편이다. 본지가 전국 성인 남녀 591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4일 전화 여론조사를 한 결과 의약분업이 의료체계 발전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36.1%에 불과했다.



신성식.김정수 기자



남은 문제와 보완책은



약사가 의사 처방전 없이 약을 조제하는 임의조제는 의약분업을 시행한 지 5년이 지났는데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의약분업을 한 이후 올해 4월까지 총 190건의 임의조제를 적발해 행정처분을 했다. 의사가 처방한 약품을 약사가 같은 성분의 다른 약품으로 조제한 뒤(대체조제) 의사에게 이를 통보하지 않은 경우도 321건이나 적발했다. 본지 설문조사 응답자 591명 가운데 19%가 의약분업 후에도 임의조제한 약을 복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대한약사회 최헌수 홍보부장은 "의사들이 처방 의약품 목록을 내놓지 않고 처방약을 자주 바꿔 약국마다 재고 약품만 쌓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로 인해 지난해 말 전국 1만9000개 약국의 재고 약품이 516억원어치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등 자원 낭비는 물론 약국이 심각한 손실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기관과 약국의 담합도 문제다. 지난해 9월엔 같은 건물에 위치한 의원과 약국이 서로 짜고 실제 진료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진료기록을 허위로 작성해 건강보험 진료비(약제비)를 청구, 10억여원을 챙겼다가 적발된 사례도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재국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불법행위들을 적극 단속하고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부는 의료기관이 약국 조제용과 환자 보관용으로 처방전을 두 장씩 발행하도록 시행규칙을 마련했으나 처벌 규정이 없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정우진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지금이라도 국회 등 제3의 기관이 의료비 부담 변화나 국민 건강 증진 효과 등을 정확히 평가, 돈이 덜 들면서 국민의 불편을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환자를 의약분업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도 환자들의 불편을 줄이는 방법으로 제시된다. 의사협회 권용진 대변인은 "노인, 3세 미만 소아환자, 정신질환자, 장애인, 암환자 등은 병원 내에서도 약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1, 2급 중증 장애인과 6세 미만의 소아암 환자 등만 분업 예외로 지정돼 있다.



일부 전문가는 약제비를 절감하기 위해 ▶종합병원 내에 외래 약국을 허용하거나▶일반약 소량 포장 허용(지금은 10알 이상 포장)▶일반 의약품 수퍼 판매 허용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성식.김정수 기자



지금 분업 예외 지역선



"매일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는데 처방전 없이 '프로스카'를 살 수 있나요?"



"물론이죠. 몇 통이나 드릴까요?"



30일 오전 의약분업 예외지역인 경기도 가평군의 한 약국에서 약사와 기자가 나눈 대화 내용이다. 전립선비대증 치료약인 프로스카는 탈모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최근 수요가 늘고 있다. 이 약은 의약분업 지역에선 처방전이 없으면 살 수 없다.



그러나 본지 취재 결과 서울 인근 예외지역에선 이 같은 전문 의약품을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었다.



5년 전 의약분업 실시에 따른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도입됐던 예외지역에서 오남용이 우려되는 전문 의약품이 규정량을 초과해 팔리고 있는 것이다. 약사법(21조)은 농어촌 지역에 의료기관이 없거나 의료기관과 약국의 거리가 1km 이상일 때를 예외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822곳의 예외지역에 395개의 약국이 있다.



서울 등 대도시 인근 예외지역 약국에는 최근 프로스카.노레보(사후 피임약).제니칼(비만 치료제) 등 전문 의약품을 구입하려는 도시 손님으로 북적인다. 병원이 없는 농어촌 주민의 불편을 덜어주려던 당초 취지가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시 은평구 경계에서 자동차로 5분만 달리면 있는 예외지역 약국 2~3곳에는 도시에서 온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약사법은 예외지역 약국들이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있는 전문 의약품의 분량을 5일치로 제한하고 있지만 본지 기자가 방문.통화한 결과 일부는 한 번에 한 달치 이상의 약을 판매하고 있었다.



특히 오남용 위험 의약품으로 지정돼 예외지역에서도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비아그라 등 성 개선 치료제가 경기도 안성시 일대에선 그냥 팔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약국은 당국에 적발돼도 3일~1개월의 업무정지 처분만 받고 있어 단속에 실효성이 없다.



예외지역 규정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도시와 맞닿은 읍.면 등은 길 하나를 두고 '예외지역'과'적용지역'으로 나뉘는 등 부작용이 많다는 것이다. 김창보 건강세상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정부의 기계적인 예외 규정이 오히려 시민들의 의약품 오남용을 부추길 수 있다"며 "관련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의약분업 평가단을 구성해 예외지역에 대한 집중 단속을 벌일 방침이다.



정강현.권호 기자





*** 바로잡습니다



7월 1일자 5면 '의약분업, 그 후 5년'기사에서 인용한 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이름은 '조재진'이 아니라 '조재국'박사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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