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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전범 1000명, 냉전시대 CIA·FBI 스파이로 활동

1983년 6월 어느 날 오전, 미국 매사추세츠 노우드 시의 아담한 주택. ‘나치 사냥꾼’이라는 별명의 일라이 로젠바움 법무부 특별조사관이 초인종을 눌렀다. 집 주인은 당시 76세의 리투아니아 출신 이민자 알렉산드라스 리레이키스. 재미 리투아니아 교포를 위한 작은 매체에서 일하며 여생을 보내는 평범한 노인인 듯 했지만 로젠바움의 생각은 달랐다.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인상의 이 노인이 사실은 전 리투아니아 보안국장으로, 나치 게슈타포의 지시를 받고 6만명의 유대인을 기관총으로 학살한 주범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유력한 증거는 ‘A. 리레이키스’라는 자필 사인이 들어간 학살 관련 승인 문서였다. 자신만만한 로젠바움이 문서를 내보이자 리레이키스는 짧은 침묵 후 말했다. “그 문서, 진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유대인 6만명 학살 주범도 포함
동구권 정보수집 업무 주로 맡아
처벌 면제 받고 미 거주 보장 받아
덜레스·후버 “국익에 도움” 묵인



 이후 10년간 로젠바움은 ‘리레이키스 케이스’를 파고 들었고 94년, 그의 확신이 맞았음을 증명했다. 그런데 중앙정보국(CIA)이 이상했다. 리레이키스의 추방 조치를 위해 움직이던 그에게 CIA 측에서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이 일에서 손 떼세요.” 리레이키스는 냉전이 한창이던 50년대 CIA가 비밀리에 고용한 첩자였다.



 CIA와 연방수사국(FBI)이 이렇게 비밀리에 고용한 나치 전범 출신 스파이가 1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동독과 당시 소비에트연방 지역에서 암약하는 대가로 CIA·FBI로부터 활동비를 지급받고, 상당수가 나치 전력을 감추고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 같은 내용은 CIA·FBI등의 관련 기밀문서 일부가 해제되면서 밝혀졌다고 인터내셔널뉴욕타임스(INYT)가 28일 보도했다.



 나치 전범을 스파이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건 에드가 후버 FBI 국장과 앨런 덜레스 CIA 국장이다. CIA 내부에서도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덜레스는 “나치 전력이 있어도 국익에 도움이 되면 활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INYT는 “CIA·FBI가 나치 출신 정보원들을 공격적으로 섭외했다”며 “나치 전범들이 미국 정부의 주요 자산이었다”고 보도했다. FBI는 해명자료에서 “당시가 냉전 상황이었다는 것을 감안해달라”고 밝혔다. CIA는 관련 언급을 거부했다.



 전범죄로 처벌을 받는 대신 미국을 위해 부역하며 기사회생한 스파이들은 주로 동독이나 동구권에서 정보수집 업무를 맡았다. 소련이 발행하는 우표의 숨은 코드를 해독하거나 소련에 잠입해 감청 케이블을 설치하는 것도 이들의 임무 중 하나였다. 일부는 미국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세운 소련 침공 계획에도 가담했다. 리레이키스가 스파이 활동 대가로 받은 건 연 1700달러의 활동비와 매달 담배 2보루였다.



 그러나 그가 받은 가장 큰 보상은 56년 CIA 도움으로 미국으로 이주해 보스턴·노우드 등에서 조용히 살았던 40여년의 세월이다. 결국 로젠바움 등의 노력으로 리투아니아로 추방된 그는 건강상 이유로 재판을 회피하다 2000년 자연사했다.



 현재 이런 스파이들 중 생존자는 없다. 그러나 그들의 가족들 중 다수는 미국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뉴욕 시민 거스 폰 볼슈빙(75)이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INYT에 “미국 정보기관은 내 아버지를 이용했고, 내 아버지는 그들을 이용했다”며 “전범을 엄격히 다루는 내 조국(미국)의 가치와는 동떨어진 조치였다. 미국은 내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 오토 폰 볼슈빙은 나치의 엘리트부대였던 친위대(SS) 출신으로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아돌프 아이히만의 멘토로 불린 인물이다. 그의 나치 전력은 81년 들통나 미국 정부는 그에게 추방 명령을 내렸으나 건강 악화로 미국에 남도록 허락 받았다. 약 2달 후 캘리포니아에서 자연사했다.



 역사학자인 아메리칸대학교의 리처드 브라이트만 교수는 이를 두고 “냉전 당시 미국은 소련과 동구권에 대해 정보가 너무 없다는 공포에 시달렸다”며 “나치 전범 스파이들은 그러한 공포가 빚어낸 역사의 산물”이라고 분석했다.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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