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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상고법원 도입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부구욱
영산대 총장
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지난 6월 사법정책자문위원회의 상고법원 신설 건의를 계기로 촉발된 사법개혁 논의 과정에서 더 이상 상고심 개혁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 대해선 별 이론이 없는 것 같다. 이제 대법원 외에 일반적인 상고사건을 담당할 상고법원을 설치할 것인가, 아니면 대법관 수를 30명 이상으로 늘릴 것인가로 논의가 좁혀지고 있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국민의 권리구제를 위하여 상고사건 규모에 맞게 재판부 숫자를 확대하더라도 전자가 아닌 후자의 방안은 적절하지 않다. 대법원의 핵심적 기능을 표류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법령 해석의 통일과 함께 그를 통한 사회의 가치 기준과 방향을 정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 임무의 수행 여부는 일반에게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의 성쇠, 나아가서는 흥망을 좌우할 수도 있는 중요한 임무다. 현재의 법령해석이 국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수시로 점검하면서 바람직한 방향을 고민하는 문제는 굳이 비유하자면 숲을 보는 일과 같다. 반면 국민의 권리구제는 나무 하나하나를 잘 살피는 일이다. 나무를 보는 사람이 숲을 보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한때 남의 땅을 오래 점유한 사람이 땅 주인을 상대로 시효취득을 주장하면서 소유권 이전을 구하는 사안에서, 대법원이 악의적인 점유자의 손도 들어준 때가 있었다. 그 판례는 우리 사회의 인심을 사악한 방향으로 유도했다. 남의 땅을 무단으로 사용하고도 고마운 마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 시점 후 주인한테서 땅을 뺏으려는 사건이 전국 곳곳에서 폭증했다. 국가사회는 이러한 상식에 반하는 사건 처리에 엄청난 인력과 비용을 지불한 것이다. 법령해석의 깊이와 적정성이 역사의 큰 방향을 정할 수 있다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대법원은 현행 판례가 법실증주의라는 명분 아래 국가 사회의 방향을 잘못 설정한 점은 없는지 심각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국회에서 제정된 법률도 헌법정신과 국리민복의 이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에 반하는 법률 규정의 해석을 결국 헌법정신과 이상에 맞게 바로잡을 책임도 대법원에 있다. 대법원은 판결을 통해 국가 통치의 일익을 담당하는 것이고, 그 시대의 발전과 피폐에 그리고 역사에 공동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대법원은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서의 위와 같은 임무에 비추어, 분쟁에 관한 사실심리를 항소심에 맡기고 주로 법령해석의 당부를 판단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미국에서처럼 대법원의 사건 부담을 법률심의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상고허가제도가 결국 폐지되고, 심리불속행 제도 또한 심한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고심이 국민의 권리 구제를 외면할 수 없는 사정이라면, 상고법원 제도가 대안일 수밖에 없다. 30명 이상의 대법관이 동일한 권위와 자격을 가지면서 국가사회의 방향을 논의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국민의 권리구제를 염두에 두고 상고법원 법관이 아닌 대법관 수를 대폭 늘린다면 대법원의 핵심적 기능 수행은 어려워질 것이다.



 결국 사법제도가 지향할 바는, 항소심까지는 적어도 분쟁의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모습이다. 이것이 분쟁으로 인한 사회비용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이는 국가 발전 잠재력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따라서 상고법원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사실심을 다루는 법원의 신뢰가 생길 때까지의 한시적인 것이어야 한다. 법원은 존경받는 법관상 확립, 복잡다기한 사회 현실에 대응한 법관의 전문화 등에 진력해야 한다. 대법원까지 세 번은 재판을 받으려는 국민 정서보다는 판결에 승복할 수 없는 것이 상고사건이 폭증하는 정확한 원인일 것이다.



 상고심 개혁논의가 그동안 방치되었던 대법원의 파행을 하루속히 정상화하면서 관행적으로 행해지던 사법현실에 대한 근원적 성찰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정착에 따른 영역별 법조 전문화와 함께, 사회 경험과 인품을 갖춘 변호사 중에서 법관이 선발되는 법조 일원화의 실현은 항소심이 사실심의 최종심으로 기능하는 바람직한 모습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상고법원 설치는 현시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다. 더 이상 미루는 것은 지금 현실에서 많은 국민을 권리구제의 사각지대로 모는 것과 다름없다. 다만 상고법원을 어디에 둘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일 수 있다. 대법원과 상고법원이 상고사건을 나누어 심리하게 된다는 점에서 대법원 옆에 병설하는 방안이 합당한 면이 있다. 한편 대법관급의 경력을 가진 법관을 상고법원에 보임하고, 법령 해석과 판례 통일을 위한 특별상고도 허용하겠다는 것이므로 반드시 대법원 옆에 병설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차후 과거 고등법원 상고부 설치 시의 부정적인 경험을 유념하면서 현안 상고심 개혁의 과제와 지역 균형발전의 국가적 과제 등을 감안하여 조화롭게 결정할 문제다. 그럼에도 상고법원 제도 도입이 어디에 둘 것이냐의 문제로 지연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부구욱 영산대 총장·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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