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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아이들의 하루를 따라가다

형을 너무 좋아하는 ‘형 바라기’ 현수(오른쪽). 목동 월촌초 3학년 추현수군에겐 형이 제일 친한 친구다. 형보다 수업이 더 일찍 끝나는 날도 기다렸다가 같이 온다. 현수 엄마는 “이 동네서 현수만큼 사교육 안 받는 애도 없다”지만 현수 생각은 다르다. “바쁘고 힘들다”는 거다. 하지만 현수는 “학원 시험은 싫어도 이걸 안 하면 공부를 못하게 되니 빼먹고 싶지는 않다”고도 했다. 김경록 기자

 


너희들 대체 친구는 언제 만나?
江南通新이 하루 동안 동행한 요즘 아홉 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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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 인생에 처음 맞는 아홉수다. 그래서일까. 영화나 소설 속 아홉 살 꼬마들은 뜻밖의 삶의 수난을 겪곤 한다. 심지어 첫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선생님을 연적 삼아 당돌한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영화 ‘여선생 vs 여제자’).



신랄한 시선으로 어른의 위선을 조롱하는 만만찮은 아홉 살(소설 『아홉살 인생』)도 물론 있다. 더이상 여덟 살 꼬맹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설프게 어른과 ‘맞짱’ 뜨려는 십대도 아닌, 어린이로선 꽉 찬 나이, 그게 바로 아홉 살 인생이다.



『아홉살 인생』의 작가 위기철은 ‘지나치게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면, 아홉 살은 세상을 느낄 만한 나이’라는 문장을 인용하며 ‘다행히 내 아홉 살은 지나치게 행복한 편이 아니었고, 그리하여 나 또한 세상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적었다. 그렇다면 과연 문학이나 영화 속 이미지가 아니라 2014년을 살아가는 진짜 아홉 살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



대치동·목동 등 교육특구에 사는 아홉 살부터 강북 공립초, 사립초, 대안학교 등에 다니는 다양한 아홉 살을 직접 만나 하루 동안 동행하며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봤다.





학원



예상대로 아홉 살 인생의 중심엔 학원이 있었다. 다니는 학원 수의 많고 적음만 차이가 날뿐 학원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아홉 살은 없었다. 하루 일정에 ‘학원’이 빠져 있는 아이는 송도 채드윅국제학교에 다니는 박소은양 딱 한 명이었다. 소은이도 강남통신이 동행한 날(화요일) 말고 다른 요일엔 사교육을 받았다. 영작문과 수영은 방과후수업으로, 바이올린은 학원에서 배우니 말이다. 심지어 부모가 사교육에 휘둘리기 싫어 대안학교에 보낸 박현선(꽃피는학교 3학년)양도 학습과 관련한 건 아니지만 피아노학원엔 갔다.



가장 바쁜 학생은 사립인 중대부초에 다니는 민선(가명)이었다. 민선이 엄마는 취재 전 “다른 애들처럼 빽빽한 스케줄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라며 “민선이는 학교 친구들보다 스케줄이 훨씬 여유롭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만나보니 따라다니기에도 벅찼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엄마 차를 타고 수학 공부방에 가 한 시간 수업 듣고, 곧바로 속독 학원에서 2시간 동안 공부한 후 오후 6시30분에야 집에 돌아왔다. 11시간 만의 귀가였다. 저녁식사 후 학교 숙제와 학원 숙제를 끝내고, 중간고사 시험공부까지 다 하느라 밤 11시30분이 되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시험 기간만 아니면 두 살 아래 남동생에게 잠깐 동화책 읽어주며 놀 시간이 있지만, 중간·기말고사 보기 3주 전부터는 시험공부 하느라 아예 여가 시간이 없다. 지금이 딱 그랬다.



교육특구인 목동이나 대치동 아홉 살의 스케줄도 만만치 않다. 목동 월촌초 추현수군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곧장 논술학원부터 들렀다. 1시간30분 동안 토론과 글쓰기를 배우고 오후 3시 집에 들어왔다. 잠시 엄마가 챙겨준 간식을 먹고 논술학원 수업용 책을 읽으니 한두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후다닥 짐을 챙겨 오후 5시부터 7시까지는 영어학원에 가서 수업을 들었다. 꽤 바쁜 하루, 하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또 다른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 식사 후 1시간30분 동안 엄마에게 영어를 배웠다. 다음 주 같이 보기로 한 영화 ‘원스’ 스토리 등을 영어로 미리 훑는 거다. 학교, 학원, 그리고 가정학습이 다 끝나고 현수는 밤 10시30분이 조금 넘어서 두 살 위 5학년 형과 함께 같은 방으로 자러 들어갔다.



엄마는 “이 동네서 현수만큼 사교육 안 받는 애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입을 열었다. “논술 학원은 현수가 워낙 좋아하는 거고 학습지 하나에, 첼로 선생님이 일주일에 한 번 오시고…. 학원다운 학원은 일주일에 세 번 가는 영어 학원 하나뿐이에요. 주변 엄마들이 그래요. 그 많은 학원 두고 이렇게 아무 것도 안 시킬 거면 왜 목동 사느냐고. 사춘기엔 어차피 다 공부에 손 놓으니 그 전에 진도 쭉쭉 빼야 한다고도 하죠. 그럴 때마다 내가 애들 인생 망치는 거 아닌가 싶어 불안해요.”



대치초 3학년 배진우군 엄마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이 동네서 진우만큼 느슨한 일정을 소화하는 애가 드물다는 거다. 학교 수업이 5교시까지 있는 목요일, 진우의 방과 후는 2시간짜리 과학실험학원과 1시간30분짜리 논술 과외로 이어졌다. 가방 정리까지 마치면 밤 10시가 훌쩍 넘었다. 진우 엄마는 “애가 전혀 힘들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친구 만날 수 있어서 학원 가는 걸 좋아해요. 대치동 애들은 학원가는 걸 학교 가는 것처럼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서울 월촌초 3학년 추현수군이 그린 그림.


친구



현수(목동 월촌초)를 만난 날 현수는 학교와 학원, 집을 계속 오갔다. 이날이 일주일 가운데 제일 바깥 출입을 많이 하는 날이다. 학원 갈 때 말곤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나가봤자 같이 놀 친구도 없고, 어쩌다 친구 만나 놀다가도 다들 학원 셔틀버스만 오면 사라져 버리잖아요.” 그래서 할 일이 학습지 딱 하나밖에 없는 화요일이나 아무 학원 스케줄이 없는 목요일에도 그냥 집에만 있는단다. 물론 현수가 워낙 형을 좋아하는 ‘형 바라기’라 집에 있으면 두 살 위 형이랑 놀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립초인 내발산동 가곡초에 다니는 여종민군은 엄마가 워킹맘이고 하나뿐인 형도 같이 놀아주기 어려운 바쁜 중3이라 친구가 더 간절할 법하다. 게다가 대치동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육열이 덜한 동네니 운동장이나 놀이터에서 친구랑 놀 시간이 좀 더 많지 않을까. 하지만 종민이는 “같은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아무리 친해도 방과 후에 놀기가 어렵다”고 했다. 친구 사귀고 같이 놀기 위해서라도 학원을 다녀야 한다는 얘기다. 여러 학원에서 자주 만나다보면 붙어다니는 시간이 길어져 금방 절친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혁준이랑도 그렇게 친해졌어요. 목요일 과학학원을 같이 다니는데 그날은 내내 같이 놀거든요.”



그나마 공립초에 다니면 동네 친구가 곧 학교 친구라 오가며 우연히 만나 잠깐이라도 놀 수 있다. 하지만 각지에서 모인 사립초는 이마저도 어렵다. 그래서 교우 생활에 있어 학원이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가장 빽빽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민선이(사립 중대부초)는 “학원 다니는 게 힘들기도 하지만 친구랑 놀 수 있기 때문에 솔직히 재미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대안학교도 딱히 동네 친구가 없다는 점에서는 사립초와 비슷하다. 하지만 학교 파하자마자 바쁘게 학원에 가야할 필요가 없기에 다들 방과 후에도 학교에 남아 학교 친구끼리 한 시간 넘게 놀았다. 수업도 놀이 위주로 짜여져서인지 여가 시간에 대한 열망이 다른 아이들보다는 아무래도 덜 했다. 현선이(꽃피는학교)는 귀가 후에도 네 살 동생을 데리고 엄마와 집 근처 놀이터에서 놀다 집에 돌아와 다시 동생과 술래잡기·김밥말이 놀이를 했다. 그리고 앉아서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현선이네 학교는 학교에서 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휴대폰 사용을 금지하기 때문에 방과 후 전화나 SNS메신저로 연락을 주고 받을 수가 없어 이렇게 편지를 자주 쓴다. 이날은 생일을 맞은 주헌이한테 줄 생일 축하 편지를 썼다.



사교육을 많이 하든 적게 하든, 공립학교든 아니든, 학교나 학원으로 연결되지 않은 동네 친구가 있는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할 일 없으면 무조건 밖에 나가 아무 골목길에서 동네 친구랑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던 시절은 이제 사라져버린 거다.





TV대신 독서



강남통신이 만난 아홉 살 가운데 평일에 TV를 보는 학생은 엄마가 직장에 가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는 종민이(내발산동 가곡초)뿐이었다. 현수(목동 월촌초)네는 TV를 안방에 들여놨고, 진우(대치초) 집 거실 역시 책만 잔뜩 꽂혀 있는 서재로 꾸며져 있었다. 진우는 “친구들 집도 우리집처럼 거실 벽면이 온통 책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집에 이렇게 책이 많지만 학교 도서관에서 매일같이 책을 또 빌려온다. 진우는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빌려본 사람한테 상을 준다”며 “경쟁이 치열해 하루라도 책을 안 빌려오면 상을 받지 못한다”고 얘기했다. 이날은 『호랑이 식당, 범희네』와 『우리 반에는 도깨비가 산다』를 빌려왔다. 책 대신 TV를 보고 싶지는 않을까. 하지만 진우는 “두 살 때부터 TV가 없었다”며 “최근 다시 들여놓기는 했지만 안 봐 버릇해서인지 별로 보고 싶지 않고 엄마가 영화나 EBS 다큐를 다운 받아서 1.2배속으로 보여주는 걸로 충분하다”고 했다.



현수도 마찬가지다. 논술학원과 영어학원 사이, 그리고 저녁 식사 전에 잠깐씩 여유 시간이 있었지만 TV 리모컨이 아니라 책을 집어들었다. “엄마가 시켜서가 아니라, 책 읽는 게 재미있어서”란다. 이날도 식사 시간까지 『아하! 세계엔 이런 전쟁이 있었군요』라는 책을 못 덮고 계속 읽다 엄마한테 잔소리를 들었다.



민선이(중대부초) 집에도 TV가 있지만 온 가족이 민선이를 위해 평일엔 TV를 켜지 않는다. 민선이는 TV 보는 대신 독서 습관을 기르기 위해 올 초부터 일주일에 두 번 2시간씩 뇌개발 속독학원에 다니고 있다. 민선이는 “학원에서 글을 읽으면서 동시에 이해하고 생각하는 방법, 중요한 내용을 암기하는 법 같은 걸 알려준다”며 “글이 쉽게 이해가 되다보니 책 읽는 게 전보다 재미있어졌다”고 말했다. 잠자기 1시간 전은 매일 책을 읽는단다. 하지만 이달 30~31일 치르는 중간고사 범위가 고지된 3주 전부터는 시험공부에 돌입하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다. 이날도 밤 11시30분까지 과학 공부를 하다 잠이 들었다.



국제학교에는 도서관 수업이나 프로젝트 수업이 많아 끊임없이 책을 읽어야 하는 분위기다. 지금 소은이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 과제는 CNN에서 발표한 ‘세계에서 건강한 나라 10개국’ 중 한 나라를 골라 자료 조사를 하고 그 나라의 장점을 발표하기다. 소은이는 “난 덴마크 코펜하겐을 맡았다”며 “관련 도서를 도서관에서 계속 빌려 읽고 있다”고 말했다.



몇몇 대안학교는 교칙으로 TV 보기와 인터넷 사용을 금지한다 . 현선이가 다니는 꽃피는학교도 그렇다. 뉴스를 봐야 하는 아빠 때문에 TV를 없애지는 않았지만 현선이는 TV를 잘 보지 않는다. 그래도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있다.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이다. “주말에 ‘런닝맨 할 시간이면 엄마 아빠 옆에서 슬쩍 눈치를 봐요. 그러면 ‘이것만 보라’고 가끔 허락 해줘요. 그 외엔 딱히 TV 생각이 안 나요. TV보단 술래잡기가 좋고, 책도 자주 봐요.” 무슨 책인가 봤더니 논술 학원에서 교재로 쓰는 점잖은 권장도서류가 아니라 만화책 『메이플스토리』였다.





스마트폰, 그리고 운동



초등생의 스마트폰 중독이 문제라는데 강남통신이 만난 아이들 중 스마트폰을 가진 아이는 진우(대치초)와 소은이(채드윅) 두 명뿐이었다. 진우는 메신저로 체험학습이나 축구 같이 하는 친구들과 일정을 조율하거나 취미 생활인 UCC를 만드는 용도로 쓰고 있었고, 소은이는 비상용이었다. “소풍이나 캠핑 가는 날처럼 유사시에 엄마랑 연락하려고 갖고만 있다”고 했다. 둘 다 “스마트폰으로 게임은 전혀 안 한다”고 말했다. 민선이는 구형 2G폰을 쓴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실어나르려고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엄마와 연락하기 위한 용도다. 현수나 현선이, 종민이는 휴대폰이 아예 없었다.



남학생은 모두 운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그냥 동네 친구나 형제들이랑 같이 놀듯이 운동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현수(목동 월촌초)만 형과 함께 틈날 때마다 줄넘기를 했고, 다른 애들은 모두 운동 하려고 돈 내고 학원에 다니거나 클럽에 들었다. 종민이(내발산동 가곡초)는 운동 겸 놀이 공간으로 엄마 손에 이끌려 일주일에 한 번씩 달리기와 줄넘기 가르치는 생활체육학원에 등록해 다니고 있다. 진우(대치초)는 월요일마다 친구들과 팀을 짜 축구를 한다. 돈을 내면 강사가 가르치는 클럽형 수업이다.





박형수·김소엽·전민희·정현진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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