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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 하나 더 보태 무슨 소용 … 한국에서 못 받은 학사 자청했죠"



석학이 이제야 학사 학위를 받는다. 주인공은 이정식(83·사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 30일 경희대에서 명예학사 학위를 받기로 했다. 애초에 경희대 측은 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제안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지금 박사 학위 하나 더 있는 게 무슨 소용인가”라며 “한국에서 받지 못한 학사 학위를 달라”고 청했다. ‘명예박사’ 홍수 시대에 그의 ‘명예학사’는 그래서 더 돋보였다.

경희대서 '명예학사' 받는 석학 이정식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



1954년 초등학교 졸업장 들고 미국 유학



 그는 『한국공산주의운동사』(1974) 등 묵직한 저작을 내고 미국 정치학회의 최우수 저작상 등 숱한 학술상을 수상한 정치·역사학자다. 책 15권, 수십 편의 논문을 내놨고 63년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로 임용됐으며 미국 및 세계 학계에서 인정받는 동아시아 현대정치사학자로 자리 잡았다.



 뒤늦은 학사 학위엔 사연이 있다. 그는 만주에서 중학교를 다녔지만 졸업하지 못했다. 부친 작고 후 생계를 위해 쌀 장사, 공장 청소 등을 했기 때문이다.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다가 1954년 미국 UCLA로 유학을 떠났다. 한국에서 학사 학위는 못 받았지만 51년 부산에서 경희대 전신인 신흥대학을 1년 다녔다. 이 경력이 UCLA 입학에 도움이 됐다. 이번에 경희대에서 제대로 된 학사 학위를 받기로 한 배경이다.



 요즘으로 치면 초등학교 졸업장만 들고 미국 유학을 떠난 셈이다. 그런데도 “공부가 어렵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말하자면 ‘공부의 전설’이다. “경제학을 전공하기 위해 유학 갔지만 회계학이 너무 쉽고 싱거워 정치학으로 바꿨다”는 식이다.



 이 교수는 경희대에서 학위 수락 연설을 하며 인생유전과 공부 이야기를 들려줄 계획이다. 대학생뿐 아니라 모든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다. 그를 미리 만나 공부 비법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첫 학기 올 A 비결은 필기 한 것 다시쓰기



 스무 살 무렵. 시장에서 쌀을 팔고 있는 그의 곁으로 친구가 지나갔다. 김일성대학의 멋진 푸른 교복을 입었다. “심정이 어땠겠나. 박탈감·열등감에 잠을 못 잤다”고 말했다. “그 후 공부할 기회만 생기면 나도 나를 멈출 수가 없었는데, 바로 그 기분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공부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교수의 경우엔 콤플렉스가 동력이었다. 51년 전쟁통의 부산에서 사람들에게 “야간대학 어디 없느냐”며 묻고 다녔던 이유다. 한 시간 넘게 트럭을 타고 신흥대학에 도착했고, 집에 돌아오면 접시에 기름을 부어 등불 삼아 공부했다. 미군 부대의 통역관으로 근무할 때는 미군들에게 영어 사전을 있는 대로 다 사다 달라 부탁도 했다.



 미국 첫 학기에 모든 과목에서 A학점을 받았다. “비결은 무슨…” 하던 그는 “타자기 덕분 아니었을까”라고 운을 뗐다. UCLA엔 5센트를 넣으면 몇 시간이고 쓸 수 있는 타자기가 있었다. 이 교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여기에 앉았다. 수업 시간에 받아적은 내용을 일일이 다시 써보기 위해서다. 그는 “내용을 베껴 쓰거나, 다시 정리해 필기하는 것만큼 남는 게 없다”며 “내 식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머리에 다 들어가고, 다시 볼 때도 좋다”고 조언했다. 두 번째 학기부터는 미국 친구들이 이 노트를 빌리러 왔다. 그는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도 이런 아날로그 방식을 써보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간을 이길 수는 없다. “아무리 머리가 비상해도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공부론이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엔 특히 시간이 귀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식당에서 일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부족해서 귀한 것도 알았다. 다른 건 몰라도 틈만 나면 맹렬히 공부했다”고 기억했다.



‘한국 독립사상 기원 연구’ 새 저작 준비



 여든을 넘겼지만 이 교수는 새로운 저작을 쓰고 있다. 한국 독립사상의 기원을 찾고 근대화 과정으로 연결시켜 정리한다는 계획이다. “남들이 연구하지 않은 제목을 찾는 일이 즐겁다”고 했다. 공부가 가장 쉽다는 말일까. 이 교수가 손사래를 쳤다. “쉽다니? 어려워서 기쁜 게 공부다. 가장 큰 비법은 ‘공부의 희열’이다.”



  김호정 기자



◆이정식=1931년 평남 안주 출생. 33년 만주로 이주했다가 48년 평양으로 귀국, 51년 1·4 후퇴 때 서울로 왔다. 『한국공산주의운동사』(1974) 『21세기에 다시 보는 해방후사』(2012)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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