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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우리 이혼했어요

백화점 수퍼에 갔다. 찐 만두와 커피를 들고 막 문을 나서는데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젊은 여자와 장이라도 보러 왔는지 편안한 차림새다. 저 여자가 새 부인인가. 빈약해진 머리숱만 빼면 남자는 예전 그대로다.



 20년 전, 분당의 한 아파트에서 우리는 만났다. 오랜 외국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그 집이나, 우리 집이나 달라진 환경 때문에 매우 힘들어했었다. 그나마 씩씩한 나는 대충 맞춰 살아가고 있었지만, 공주같이 예쁜 그 집 부인은 영 힘들었던 모양이다.



 만나서 얘기 좀 하잔다. 세 번쯤 봤나. 빵집에서 울며불며 하소연하던 그 여자. “그렇게 나를 사랑하던 사람이 여기 와서 180도 바뀌었어요. 퇴근하고 술집이다, 미팅이다 매일 밤 12시예요. 사랑이 식은 게 확실해요.” 12시에 퇴근하는 남편이 미운 건 이해하겠는데, 사랑 받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그녀가 이해하기 힘들었고 안쓰럽기까지 했다.



 얼마 후 그녀의 이혼 소식을 들었고, 20년이 지난 오늘 그 남편을 만난 거다. ‘이렇게 울 시간에 재밌는 일을 찾으라’ 했던가, ‘적극적으로 남편의 사랑을 뺏으라’ 했던가. 그때 뭐라 조언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소문에는 재혼해 아이 둘을 맡아 키우는 남편이 친정 엄마랑 둘이 살며 아이들 만날 날만 고대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전 부인을 매우 부담스러워 한다고 했다. 이혼에도 좋은 이혼, 나쁜 이혼이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하고 나서 행복한지 아닌지가 그 기준 아닐까.



 ‘우리 결혼했어요’란 TV 프로가 있다. 연예인의 가상 결혼생활을 통해 ‘젊은이들의 결혼관을 유쾌하게 풀어보자’함이 그 취지라 한다. 결혼을 한 번 경험해 본다는 의미에서 결혼의 실체를 알려주는 좋은 프로다. ‘님과 함께’라는 가상 재혼생활을 다루는 프로까지 나왔다. 결혼의 실패(?)를 경험한 커플의 좌충우돌 재혼기다. 웃어넘기기엔 씁쓸함이 남는다. 그만큼 현실적이다. 내친김에 ‘우리 이혼했어요’란 프로는 어떨까. ‘가상 체험’ 프로들이 막연한 상상만으로 섣부르게 내지르지 않도록 결혼이나 재혼을 현실화시키는 데 일조했듯이, 이혼도 현실에서 체험할 기회를 좀 주자.



 이혼. 자존심을 얻는 대신 잃는 것도 많다. 이혼하면 펼쳐질 구체적인 나의 삶을 한번 상상해 보면서 얻을 것과 잃을 것을 꼼꼼히 따져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게다.



 그나저나. 겨울이 오기 전에 가슴 뛰는 사랑을 찾든, 새 일거리를 찾든 ‘그녀가 지금은 행복해 한다’는 소식이 듣고 싶다.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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