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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품은 '야신' … '보살'들이 해냈다

‘감독 김성근’의 12번째 팀은 한화 이글스다. 김 감독을 간절하게 원하는 한화 팬들이 1인 시위, 온라인 청원운동 등을 벌여 한화그룹을 움직인 결과다. 사진은 SK 사령탑이었던 2011년 직접 방망이를 들고 수비훈련을 시키는 김성근 감독. [중앙포토]


지난 1주일 동안 프로야구에는 ‘가짜 뉴스’가 떠돌았다. ‘대전 모 호텔에서 김성근 감독을 봤다’, ‘김성근 감독의 지인이 대전에서 집을 알아봤다’, ‘김성근 감독이 김승연 한화 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등의 소문이 돌았다. 실체가 없지만 일부는 기사로 만들어졌다. 지난 25일 밤, 한화 구단은 김성근 감독과 3년 계약(계약금 5억 원·연봉 5억원)을 했다고 발표했다. ‘가짜 뉴스’가 며칠 사이 ‘진짜 뉴스’로 탈바꿈한 것이다.

7년간 하위권, 1인 시위에 영입 촉구 영상
김승연 회장, 내부 승진 계획서 급선회
3년 20억 계약 김 감독, 프로 7번째 팀



 한화가 김 감독과 접촉했다는 소문은 이달 초부터 있었다. 김 감독은 2년 전 한화로부터 감독 제안을 받았으나 당시엔 독립야구단 고양원더스 감독을 지내고 있어 거절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달 원더스가 해체되자 김 감독이 한화로 갈 것이라는 소문이 더 커졌다. 급기야 지난 22일 김 감독이 직접 나서 “나는 대전에 간 적도 없고, 한화 구단과 만난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한화 구단이 나를 어려워 한다. 데려가지 않을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한화는 이정훈 2군감독이나 한용덕 단장특별보좌역을 감독으로 승격할 방안을 추진했다. 그런데 구단주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결정이 늦어졌다. 야구단과 그룹 밖에서 들려오는 한화 팬들의 목소리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화가 매년 꼴찌를 해도 믿고 응원하는 ‘보살팬’으로 불린다. 그러나 신임 감독 선임에 대해서는 ‘보살팬’들도 보고만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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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팬이 인터넷에 올린 ‘우리는 한화 이글스 팬입니다’라는 동영상은 10만 건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각종 포털사이트와 야구 관련 커뮤니티에서 ‘김성근 감독을 원한다’는 한화 팬들의 청원이 이어졌다. 본사 앞에서 1인 시위까지 벌인 이도 있었다. 마치 ‘불매 운동’을 하는 것처럼 야구 팬들이 소비자 운동을 벌였다. 결국 한화 그룹이 팬들의 목소리를 들어 김성근 감독과 계약했다. 김 감독은 “김승연 한화 구단주와 팬들에게 감사한다. (나를) 밀어줘서 감동을 받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재일동포 투수 출신인 김 감독은 혈혈단신으로 한국에 온 비주류다. 부상으로 일찍 은퇴한 그는 27세 나이에 마산상고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학연도 지연도 없었지만 오직 실력만으로 아마추어(마산상고·기업은행·충암고·신일고)와 프로(OB·태평양·삼성·해태 2군·쌍방울·LG·일본 롯데·SK) 감독 또는 감독급 코치를 지냈다. 지난 3년 동안에는 원더스에 몸담으며 45년 동안 지도자 생활을 했다.



 과거 김 감독은 외인구단의 리더였다. 하위권 팀의 전력을 4강권까지 끌어올리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러자 “큰 경기에 약하다. 우승은 할 수 없는 감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김 감독은 2007년 중위권 팀 SK를 맡은 뒤에는 네 번이나 한국시리즈에 올라 세 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우승 청부사’로 불렸다.



 비주류였지만 주류를 이겼고, 구단과 싸우면서도 승리를 이뤄낸 ‘김성근 리더십’은 야구계를 뛰어넘어 사회현상으로 진화했다. 그는 명강사이기도 하다. 20대 대학생부터 50~60대 기업 임원진까지 김 감독의 리더십과 철학을 들으려 한다.



 김 감독의 리더십은 뛰어난 언변과 논리, 그리고 가슴에 있다. 쌍방울과 SK 홍보팀장을 지냈던 박철호 대한야구협회 홍보이사는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차가워보여도 속은 다른 분이다. 선수들에게 쓴소리를 해도 결국 ‘잘 되라’는 말이다. 보너스가 생기면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까지 챙길 정도로 세심한 분”이라고 설명했다. 김 감독이 2002년 LG에서 준우승을 하고도 해임돼 야인(野人)이 되자 제자들이 힘을 모아 마련한 회갑연을 연 것은 당시 큰 화제가 됐다.



 선수단을 확실히 장악한 뒤에는 확실한 성과를 요구한다. 선수의 능력과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한 뒤 독특한 훈련으로 기량을 끌어올린다. 노장이지만 전략을 짜고 실행하는 순발력은 젊은 감독보다 빠르다. 그러나 김 감독은 구단과 항상 대립했다. 그는 “야구는 감독이 한다”며 팀 운영의 전권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구단이 선수 영입과 관리 등의 계획을 짜고, 감독이 경기 운영을 하는 현대 야구의 흐름과는 맞지 않는 인물이다. 특히 그가 2011년 SK 구단과 심하게 대립하며 해임된 뒤로는 다들 껄끄러워 했다.



 김 감독은 고집 때문에 수없이 해임통보를 받았다. 반면 팬들에게는 그게 소신과 열정의 모습으로 비춰졌다. 김 감독이 팬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팬들이 구단주를 움직인 것이다. 한화는 2008년 이후 7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 다. 김 감독은 “한화에는 젊은 선수들이 많아 가능성이 있다”면서 “ 선수는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파르타식 훈련을 통한 변혁을 예고한 것이다.



김효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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