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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규제 혁파만큼이나 중요한 시민교육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호주 여행 중의 일이다. 바닷가에 도착하니 거친 파도 위에서 서핑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바닷가 쪽으로 몇 걸음 더 들어가니 흥미로운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안내판에는 상어 그림을 배경으로 ‘Surf at your own risk’라고 쓰여 있었다. 간혹 상어가 나타나기도 하니 서핑을 즐길 사람은 그런 위험성까지 잘 고려해서 결정하라는 것이다. 아마도 과거에 상어로 인한 사고가 발생했던 것 같다. 그 안내판이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상어의 출몰에도 불구하고 바닷가에서의 서핑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을 시민 개인에게 맡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어땠을까. 상어로 인한 사고가 생겨났는데 그 해안을 그대로 방치했다면 언론에서는 해당 관청의 무관심과 태만을 질책했을 것이고 결국 관청은 철망을 치든가 해서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을 것이다. 관청 입장에서는 가장 손쉽게 사고 재발을 막을 수 있고 책임도 면할 수 있게 되겠지만, 사람들은 그 바닷가에서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다. 시민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이처럼 국가가 개입하게 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암 덩어리’ ‘원수’라고 불렀던 관의 규제가 생겨나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모습을 송두리째 드러내 보였다. 국가의 무능이나 ‘관피아’와 같은 구조적 부패의 문제점도 심각한 것이지만, 수백 명의 승객을 가라앉는 배 안에 두고 제 목숨 살리겠다고 도망 나온 선장을 비롯한 일부 선원들의 책임 의식의 결여가 더욱 부끄럽다. 국가의 개입 이전에 세월호 내부에서의 노력만으로도 희생자를 크게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세월호 사건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얼마 전에 있었던 신안 홍도 유람선 구조사건이다. 유람선이 좌초되자 인근 지역 주민들이 유람선과 어선을 타고 제일 먼저 다가와 승객들을 모두 구출했다. 과거에 유사한 유람선 사고가 있었는데 사고가 터지면 관광객이 줄어 지역 경제가 타격을 입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끼리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구조훈련을 해 온 결과였다. 국가의 개입 이전에 시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낸 것이다.



 홍도 유람선 구조사건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국가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게 되었고, 과도할 정도로 국가에 의존해 왔다. 민주화 이후에는 시민들의 권리 의식이 강해지면서 국가의 역할과 책임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형태로 변화해 갔다. 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이 주인이기도 하고 더욱이 세금도 냈기 때문에 국가가 당연히 모든 것을 처리해줘야 한다는 식이다. 불이 나면 소방서가 해결할 일이고, 도둑이 생기면 경찰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것이다. 국민은 그저 팔짱 끼고 정부가 하는 일을 지켜보면 될 뿐이고, 일을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비난하고 책임을 추궁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되었고 이해관계도 복잡해진 오늘날 국가에만 일을 떠맡기는 방식으론 문제가 효과적으로 해결될 수 없고, 더욱이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결국 또 다른 규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국가가 국민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라”고 말한 바 있다. 오늘날까지도 회자되는 이 유명한 연설 문구는 국가라는 공동체가 시민의 참여와 헌신 없이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그러나 요즘 우리 사회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참여하고 헌신하려는 시민의식이 매우 취약해졌다. 극단적인 경쟁이 자기밖에 모르는 모래알과 같은 사회로 만들어버렸다. 아이들에 대한 교육에서부터 ‘우리’가 아니라 ‘나’를 가르치고 있고, 경쟁에서 남을 누르고 혼자 잘사는 방식을 강조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이 보여준 대로 이제는 국가가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국가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의존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월호 사건은 개인의 안전이나 발전 역시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운명을 같이한다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이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공동체의 안전과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국가가 사사건건 시민 생활에 간섭해온 불필요한 규제의 혁파는 매우 시급한 과제이지만, 이와 함께 시민사회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공동체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시민교육의 강화가 절실해 보인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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