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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은근과 끈기 한국인과 딱 맞는 바이올린

지난 9월 ‘2014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26)가 열정적으로 연주하고 있다. 세계 최고 권위의 이번 콩쿠르에서 5명의 한국인 연주자가 입상했다. [중앙포토]
지난 9월 열린 세계 최고 권위의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여섯 명이 올라가는 결선에 한국인 다섯 명이 올라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0년 대회에서 한국인 둘이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하며 콩쿠르 30년 만에 첫 쾌거를 이룩한 지 4년 만에 이번엔 아예 한국이 휩쓸어버린 거다.

콩쿠르 휩쓰는 한국 연주가들

물론 콩쿠르 입상자들이 모두 프로 무대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하거나 혹은 예술적으로 인정받는 건 아니다. 그래도 분명 경이로운 건 사실 아닌가? 비단 인디애나폴리스만 아니라 근 몇 년간 열린 대다수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의 한국인 점유율과 성공률은 상상초월이니. 흡사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발전이 올림픽 메달보다 어렵다는 쇼트트랙과 비슷한 수준이다.

사실 바이올린은 지난 한 세기 이상 유대인들의 점령지였다.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만 봐도 알 수 있듯 바이올린은 한 많고 굴곡진 삶을 살아온 그들의 악기였다. 하인리히 빌헬름 에른스트, 요제프 요아힘,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부터 야샤 하이페츠, 나탄 밀스타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예후디 메뉴인, 아이작 스턴, 레오니드 코간, 이를 이은 이차크 펄먼, 기돈 크레머, 핑커스 주커만, 조슈아 벨, 길 샤함, 니콜라이 츠나이더까지.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중 유대계가 아닌 사람을 찾는 게 더 힘들 정도로 그 점유율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이 독점 현상에 제동을 건 1970~80년대 몇몇 비유대계 바이올리니스트의 선봉장은 단연 우리의 정경화 선생님.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을까? 30년이 지난 지금 유대계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자리를 우리가 이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어쩌다 이렇게 바이올린을 잘하게 된 걸까? 자타가 공인하는 한민족의 예술성은 그저 기본 중의 기본일 텐데?

얼마 전 여러 음악가 친구들과 함께 놀던 자리, ‘제일 연습을 많이 해본 게 하루 몇 시간이었는지’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악기 구조상 5~6시간을 넘기기 힘든 관악기군에 비하면 8~9시간쯤이 되는 나는 꽤 많은 편. 그런데 10대 초반부터 바이올린 신동으로 유명했던 친구 A가 고백했다. “난… 거의 안 자고 이틀 내리?”

혹 바이올린이 예체능 통틀어 가장 많은 훈련을 필요로 하는 종목 중 하나 아닐까? 물론 온몸을 다 쓰는 일부 체육 종목은 일정 시간 이상 훈련이 불가능한 데다 훈련 외에 포괄적으로 발전에 투자하는 시간을 다 합치면 절대비교가 힘들겠지만, 평균 너덧 살에 시작해 10대 초반까지의 연습량이 7~8시간을 쉽게 웃도는 종목이 과연 몇 개나 될까?

그렇다면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왜 이렇게 죽도록 연습을 할까. 피아노처럼 이미 만들어져 있는 건반을 누르는 게 아니라 한 음 한 음을 일일이 잡아 만들어내야 한다는 사실이 큰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내 친구 바이올리니스트들은 모두 이 감각이 떨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상당하다. 거장 하이페츠마저 사흘만 연습 안 해도 온 청중이 다 안다고 했다니. 하루하루 차곡차곡 쌓아야 하는 바이올린 테크닉은 원리와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더 먼저인 피아노 테크닉과는 좀 달라 보인다.

몇 년 전까지 국제콩쿠르를 휩쓸고 다니던 친구 B의 회고.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콩쿠르를 나가야 하는데, 딱 한 부분이 죽어도 안 되는 거예요. 날마다 500번씩 연습해도 레슨만 가면 꼭 틀리는 게 너무 화가 나 그 부분을 매일 1000번씩 연습했어요. 그랬더니 정말 콩쿠르에서 안 틀리는 거 있죠.”

체형에서부터 성격까지, 바이올리니스트에게 필요한 수십 가지의 조건이 있을 테지만 비전문가인 내 눈에 가장 띄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이 집념의 마인드다. 지판 위 좁게는 1㎜ 간격으로 다른 음정을 내는 바이올린. 설렁설렁 느긋한 성격으로 이 실낱 같은 음 사이 간격을 칼같이 맞춘다는 건 어쩐지 잘 상상이 안 간다. 목표에 대한 강한 집착과 그에 준하는 노력, 과연 한국인의 주특기 아닌가. 물론 좀 다른 이유도 있다.

근래 유럽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C. 그는 손이 나보다 2㎝는 작다. 미국과 유럽을 동시에 종횡무진하는 친구 D는 심지어 키도 나보다 10㎝ 작다. 물론 내 손이 체격에 비해 크기도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그들을 보며 저런 천재성들이 바이올린이었기 망정이지 다른 악기였으면 어쩔 뻔했나 여러 번 생각했다.

아무리 우리 민족의 음악성이 남다르다 해도 작은 우리의 체격으로 잘 다룰 수 있는 악기는 생각보다 많지 않으니. 횡격막을 비롯한 몸통 자체가 넓을수록 좋은 관악기는 말할 것도 없고 첼로 같은 악기만 해도 딱 벌어진 규격의 서양인 사이즈 아닌가. 물론 바이올린도 큰 손이 좋다고는 한다. 파가니니도 손이 계속 자라는 마르팡증후군 덕에 신기에 가까운 테크닉을 구사했던 거라 하니까. 그럼에도 고음부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음 사이의 간격 때문에 손이 작으면 오히려 유리하기도 하고, 악기 자체가 크지 않으니 굳이 체격이 클 필요도 없는 것. 우리에게는 과연 안성맞춤인 악기다.

이게 다일까? 요즘 최고의 스타 친구 E. 그는 아직도 어린 시절의 추억 때문에 바닷가가 싫단다. 가족들이 다같이 바닷가에 가면 햇살 내리쬐는 해변을 눈앞에 두고도 무조건 스케일과 아르페지오를 다섯 시간은 연습해야 겨우 밖으로 나가 놀게 허락해 주시던 그 시절 부모님 덕이란다. 그러고 보니 유대계 바이올리니스트보다도 더 유명했던 게 ‘Jewish Mother’, 유대인 엄마들이었다. 자식의 성공을 위해 엄청난 희생을 감수한 극성 부모들이 없었더라면 유대인 바이올리니스트들도, 한국 바이올리니스트들도 모두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가지. 개인적인 견해로 요즘 드높아진 한국 바이올린의 위상은 셀 수 없이 많은 국제 수준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을 배출해오신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김남윤(작은 사진) 교수님을 위시한 여러 훌륭한 스승님들의 공헌 덕이라 생각한다. 실은 가장 첫손으로 꼽아야 할 우리의 저력이다.


손열음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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