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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수능 출제 오류 왜 반복되는가

송호열
전 서원대 총장
수능 세계지리 8번 문항에 대한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이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에서 뒤집혔다. 해당 분야에 30년 동안 근무한 사람으로서 판단하건대 이제야 비로소 올바른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여겨진다.



 2012년의 총생산액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유럽연합(EU)보다 규모가 더 크다는 것이 명백한데, 교육 당국은 ‘실제 2010년 이후의 총생산액 및 2007년부터 2012년까지 평균 총생산액이 EU보다 NAFTA가 더 크므로 ㉢이 맞다’고 주장했다. 교육 당국은 진실한 사실이 무엇인지를 밝히기보다 정답만 잘 찾으면 된다는 매우 비교육적인 행태를 보이면서 힘없는 학생과 학부모들을 압박했다.



 이번 출제 오류는 교과서에 실린 2010년 통계지도를 2012년으로 연도만 고쳐 출제하면서 불거졌다. 물론 최신 자료를 사용해 교과서를 제작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교과서 출판까지는 통상 집필기간 1년, 검정기간 1년이 소요되기 때문에 2013년 보급된 이 교과서에 2010년 자료를 사용했다는 것을 문제 삼기는 곤란하다.



 여러 차례 출제에 참여해 온 필자의 경험에 비춰 볼 때 교과서에 제시된 자료들이 이처럼 오랜 시간이 경과한 자료라는 것을 출제 관계자들은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최신 통계 자료 등을 활용해 출제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래서 출제 장소에 가면 작은 도서관을 옮겨 온 것처럼 많은 참고자료를 갖춰 놓았다. 교과서는 물론 각종 참고서, 사전류, 통계 자료, 고전 등 매우 다양한 자료가 구비돼 있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의 1차적인 책임은 출제진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수능 출제의 경우 출제자는 통상 자신에게 할당된 문항 수의 몇 배수를 출제하게 되며, 해당 과목(세계지리)의 출제진이 이 문항들에 대해 검토한 뒤 적부를 심사한다. 적격 판정을 받은 문항은 다시 유사 과목(한국지리) 출제진이 검토하고, 최종적으로는 탐구영역(사회탐구) 전체의 심의를 거치게 된다. 그리고 중간에 투입되는 현장 교사들은 출제 문항의 기출 여부, 적격성 여부 등을 재차 종합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이처럼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수없이 많은 문항이 빛을 보지 못하고 탈락한다. 이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로 문항 오류가 적은 것이다. 하지만 워낙 많은 문항이 탈락하게 되면 출제자는 중압감 속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새로운 문항을 개발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그런 상황이 되면 앞서 언급한 과정을 제대로 거칠 여유가 없어지고, 결국 부실한 문항을 출제하게 되는 것이다.



 수능처럼 인생을 좌우할 정도로 파급력이 막강한 시험의 경우에는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하지만 출제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두 건의 오류는 불가피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출제 문항의 오류가 발견됐을 경우 현명한 대처방법은 무엇일까.



 지난해 말 출제 오류 논란이 불거졌을 때 필자는 세계지리 8번 문항은 명백한 오류로 채점 이전에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2008학년도 수능 오류 때의 물리학계 대응과는 달리 지리학계는 교육 당국과 궤를 같이하면서 문제를 봉합하는 데 급급했다.



 당시 지리학계가 정도를 걸었다면 이처럼 엄청난 후폭풍까지 겪진 않았을 것이다. 수만 명에 이르는 학생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힌 것은 물론 지리학계도 전문성에 치명상을 입었다.



 수능 출제 오류는 최근 네 차례나 발생했다. 이전의 경우에는 채점을 완료하기 전에 오류를 시인하고 복수정답을 인정해 재채점을 함으로써 학생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예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문항을 출제함으로써 세계지리 응시자 전체를 정답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지리학계는 하루빨리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 학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피해를 보상받기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학생과 학부모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는 길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수능제도에 대해서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 수능은 대학수학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걸러내는 장치가 아니라 처음부터 대학 입학사정 자료로 쓰였다. 수능의 변별력이 점점 낮아지다 보니 한 문항 차이로 대학입시에서 당락이 결정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수능 점수를 주요한 입학사정 자료로 활용하려면 적절한 변별력을 갖추도록 출제해야 한다. 단순히 대학수학 능력을 측정하는 절대평가 자료로 활용하고자 한다면 대학 스스로 평가도구를 개발해 자신들이 원하는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여기 찔끔, 저기 찔끔 손볼 것이 아니라 대학입학 전형제도 전반에 대해 근원부터 재검토할 때가 됐다. 수능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필요한 곳에 제한적으로 활용해야 지금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송호열 전 서원대 총장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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