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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기업들이 낸 보험기금으로 '관치 경영' 우려

고용보험기금과 산재보험기금은 매달 기업과 근로자가 일정액을 내 적립한 돈이다. 실업이나 산업재해와 같은 위기상황이 근로자에게 닥치면 이 돈을 풀어 대처한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그나마 근로자가 근근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적립해 둔 고용보험기금이 실업급여나 직업훈련비와 같은 명목으로 지급된 덕분이었다. 이처럼 고용·산재보험은 노동시장에서 예측 불가능한 충격에 대비한 적립금으로 언제든 일시에 소진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는 적자를 기록하며 고갈위기에 직면했다. 금융위기 여파가 가시지 않은 지금도 당시 적자를 메우지 못해 법정적립금(1.5~2배)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단기성 사회보험으로 분류된다.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처럼 오랫동안 안정적 재정기반을 확보할 수 있는 기금과는 거리가 있다. 장기간 투자해 수익률을 올릴 수 없는 구조다.



[뉴스분석] 언제든 고갈될 수 있는 단기자금
주식 같은 공격적 투자 부적절
비정규직·지배구조 개선 등
정부 정책 목표에 사용될 수도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고용·산재보험에 주주권 행사가 가능한 책임투자 방식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장기적인 수익률 극대화가 명분이다. 그러면서 현재 채권에 70%,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대체투자에 30%를 묻어둔 두 보험기금 전액을 책임투자 원칙으로 운영한다는 복안이다. 주식 투자 비중을 높이겠다는 얘기다. 주식 비중이 높아지면 주주권도 강해진다. 이에 대해 공무원연금공단 자금운용단장을 지낸 유승록 블랙넘버스투자자문 대표는 “경제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단기성 사회보험이란 고용보험의 특성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고용부가 개최한 비공개 전문가 간담회에서다.



 해외에서도 단기성 사회보험으로 장기투자를 하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미국의 캘퍼스(CalPERS·캘리포니아 주정부 공무원 퇴직연금), 네덜란드의 ABP(공무원·교직원 연금), 영국의 EAPF(환경청 직원 대상 퇴직연금)과 같이 장기 안정적 재정기반을 확보한 연기금 정도가 책임투자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 연기금들이 큰 수익을 내는 것도 아니다. 고용부의 연구용역 중간보고서에선 미국 캘퍼스가 183개 기업의 주주로 관여한 이후 5년간 누적수익률이 13.72%에 달했다고 했다. 하지만 부경대 김순호 교수는 국민연금연구원에 재직하던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일부 특정 기업에서 극단적인 수익률을 나타내 전체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것처럼 보이는 평균의 함정”이라며 “실제로는 5년 후 중위수익률이 -17.2%를 기록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경영간섭에 대한 우려도 만만찮다. 정부는 주주권 행사를 통해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묻겠다는 생각이다. 산업재해나 심각한 고용문제가 발생한 기업은 투자대상에서 제외시키거나 주식을 보유한 회사에 대해서는 주주로서 비정규직 고용환경개선, 고용형태공시제와 연계된 간접고용 정규직화, 시간제 일자리 확충, 지배구조 개선과 같은 것을 주문할 수 있다. 정부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관리감독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관치 경영’ ‘연금사회주의’라는 말이 나온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주주권 행사를 제약하는 자본시장법을 11월 중 개정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에서 국민연금에 이어 고용·산재보험까지 주주권 행사에 나서면 정부의 경영개입은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이광호 고용정책팀장은 “안정성이 최우선 되어야 할 고용산재보험으로 주식 등 공격적인 자산매입을 추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정책목표 달성을 위한 경영감시 강화에 기금을 사용하는 것은 민간부문의 투자의사 결정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다음달 초쯤 용역결과가 나오는 대로 고용보험위원회, 산재보험위원회, 자산운용위원회와 같은 주요 의사결정 기구 위원과 전문가 및 노사 관계자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고용부 문기섭 고용서비스정책관은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면 공개하고 전문가를 대상으로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며 공론화 작업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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