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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전국 억새 명산 4곳

억새 산행은 단풍 산행보다 느긋하다. 단풍은 얼른 지고 마는데, 억새는 가을 내내 장관을 이루어서다. 억새 중에서 성질 급한 녀석은 9월부터 흰 머리를 풀어 헤치지만 대부분은 10월 중순이 지나야 하얀 꽃을 피운다.



볼품 없는 터에 억세게 살아남아 … 새하얀 융단을 깔았네요

이때부터 11월 초까지 억새는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환히 빛나는 시기를 보낸다. 이 전국의 유명 억새 산행지 4곳을 소개한다. 억새 명소 대부분이 산 정상부에 있다. 고단해도 감내해야 한다.





화전민의 터전 정선 민둥산



민둥산은 8부 능선부터 정상까지 억새로 뒤덮여 있다. 1970년대까지 화전민이 터잡고 살았던 바로 그 자리다.


강원도 정선 민둥산(1118m)은 이름처럼 산 머리가 민숭민숭하다. 헐벗은 산을 뜻하는 보통명사가 제 이름이 된 산이니, 산을 오르지 않아도 정상이 어떻게 생겼을지 짐작이 간다. 이 밋밋한 산 정상이 가을마다 전국에서 가장 빛나는 산으로 변신한다. 산 머리가 온통 억새꽃으로 뒤덮인다.



민둥산은 억새 군락지가 된 사연부터 남다르다. 1970년대까지 화전민이 수시로 산에 불을 질러 나무가 남아나지 않았다. 박정희 정부가 화전을 금지하고 산림녹화사업을 벌였지만 민둥산은 예외였다. 워낙 바람이 거세고 자연 산불이 많아 나무를 심기 불가능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전제민 민둥산 억새꽃축제 부위원장). 나라에서도 포기한 민둥산에는 참억새만 무성하게 자랐다. 정상에 펼쳐진 억새 군락의 가치를 주목한 건 90년대 들어서였다. 96년부터 마을 주민이 억새 축제를 열었고, 전국에서 등산객이 몰렸다. 지금은 정선군청이 민둥산 억새를 관리하고 있다. 매년 잡목을 베어내고 억새 증식 작업을 벌인다.



민둥산 억새 산행은 증산초등학교에서 출발해 정상을 찍고 발구덕으로 내려오는 여정이 일반적이다. 2~3시간 걸린다. 민둥산 입구에는 소나무와 잡목이 무성하지만, 8부 능선부터 억새 군락지가 나타난다. 자그마치 66만㎡에 달한다. 정상에 서면 거북이 등 모양의 능선에서 은빛 춤을 추는 억새 파도를 볼 수 있다. 함백산·가리왕산·태백산 등 인근 명산도 한눈에 들어와 장관을 이룬다.



산행을 작정한다면 민둥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지억산(1116m)을 지나 화암약수까지 갈 수 있다. 증산초등학교에서 약 6시간 걸린다. 무궁화호 열차가 민둥산 어귀 ‘민둥산역’까지 다닌다. 지난달 19일 시작된 민둥산 억새꽃 축제는 이달 26일까지 이어진다. 정선군 남면 번영회 033-591-9141.





등룡폭포를 지나 팔각정 가는 길의 억새 군락지.
수도권의 억새 명산 포천 명성산



경기도 포천 명성산(922m)은 억새로 명성이 높은 산이다. 억새 군락지 규모는 19만8000㎡로, 다른 억새 산에 비해 작은 편이다. 그러나 수도권에서 가깝고 산정호수를 품고 있어 가을이면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명성산(鳴聲山)을 우리말로 풀면 울음산이다. 궁예(?~918)가 왕건(877~ 943)에게 패한 뒤, 군대를 해산하며 이 산자락에 들어와 서럽게 울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천년 전 한 서린 남자의 울음소리는 들을 수 없지만, 가을 명성산을 오르면 다른 울음소리가 들린다. 산 잔등을 뒤덮은 억새가 저들끼리 비벼대며 우는 소리다. 가을이면 수많은 사람이 억새 우는 소리를 들으러, 억새 우는 모습을 보려 명성산을 오른다.



명성산을 오르는 코스는 다양하다. 억새 군락지를 보려면 산정호수 상동주차장에서 출발해 비선폭포~등룡폭포를 지나는 길이 일반적이다. 억새밭을 만나기 전에도 명성산에는 곳곳에 비경이 있다. 단풍 어우러진 산정호수 산책길이 그렇고, 등산길에 만나는 폭포가 그렇다. 주차장에서 약 1시간30분 걸어 8부 능선에 이르면 억새밭이 펼쳐진다. 시야가 탁 트인 능선에 서면 파란 하늘과 새하얀 억새 융단이 조화를 이룬다. 억새만 구경해도 좋지만 등산객 대부분이 30분쯤 더 걸어 삼각봉(901m)까지 다녀온다. 삼각봉 가는 길 팔각정 옆에 빨간 우체통이 있다. 편지를 넣으면 1년 뒤에 배달해주는 느린 우체통이다.



명성산 억새꽃 축제는 지난 12일 막을 내렸지만 억새꽃은 11월에도 볼 수 있다. 오히려 인파가 적어 차분하게 억새밭을 거닐 수 있다. 11월 초까지는 단풍도 남아 있어 단풍과 억새가 자아내는 색의 향연도 감상할 수 있다. 포천시청 산림녹지과 031-538-3342.





억새 산행 1번지 영남알프스



간월재 부근에는 약 33만㎡의 억새밭이 펼쳐져 있다.


영남알프스는 경북 경주시·청도군과 경남 밀양시·양산시, 울산광역시 울주군 등에 걸쳐 있는 산악지대를 일컫는 말이다. 처음에는 산악인의 용어였다. 신불산(1159m)·영축산(1081m) 등 해발 1000m 이상 산 7개가 이루는 일대 지형이 유럽의 알프스만큼 아름답다며 부르던 산악인의 은어가 언제부터인가 이름처럼 굳어졌다.



영남알프스는 험하고 깊은 산악지대다. 조선시대에는 천주교 신자가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왔고, 한국전쟁 직후에는 빨치산이 활동했던 땅이었다. 한동안은 화전민이 살았지만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예전에 영남알프스의 억새 명소라고 하면 사자평을 먼저 꼽았다. 사자평 억새밭은 약 413만㎡로, 국내에서 가장 넓은 억새 군락지다. 표충사에서 흑룡폭포를 거쳐 오르면 재약산(1108m) 정상이고, 재약산 동쪽 아래가 사자평 억새밭이다. 사자평 억새밭을 둘러보고 표충사로 되돌아오는 데 약 6시간 걸린다. 왕복 거리는 약 10㎞다.



최근 영남알프스의 인기 코스는 간월재(약 900m)∼신불산(1159m)∼영축산(1081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간월재 부근에 약 33만㎡, 신불산과 영축산 사이에 약 198만㎡ 등 능선 4.5㎞를 따라 억새 군락지가 형성돼 있다. 억새끼리 비벼대는 소리에 장단 맞춰 걷다 보면 십 리(里) 넘는 억새 능선이 금방 끝난다.



간월재 산행 들머리는 울산 울주군의 배내고개·배내골·간월산장 등 어느 곳이든 상관없다. 배내고개에서 시작해 영축산까지 능선을 탄 뒤 함박재에서 통도사로 내려오는 약 15㎞ 코스가 가장 알려져 있다. 코스는 길지만 경사가 완만해 6시간 정도면 넉넉하다. 오는 26일 간월재 등지에서 하늘 억새길 트레킹 대회가 열린다. 울산 광역시 체육 지원과 052-229-3783





다도해 위로 억새 물결 장흥 천관산



억새 흐드러진 산은 왠지 서글프다. 애초부터 억새가 군락을 이룬 산보다는, 사람들이 먹고 살겠다고 발버둥치다 나무를 태워 없앤 자리에 억새가 자란 산이 더 많기 때문이다. 억새 산마다 그때 그 시절의 아픈 사연 한두 개쯤은 품고 있다. 그러나 전남 장흥의 천관산(723m)은 다르다. 천관산 정상 부위 억새밭은 자연스레 생겨났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으로 인해 나무가 자라지 못한 탓일 듯싶다(장흥군청 엄길섭 주무관). 그렇다고 천관산 정상이 평평하지는 않다. 기암괴석이 삐죽삐죽 솟아있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천관산은 지리산(1915m)·내장산(763m)·월출산(809m)·내변산(510m)과 함께 호남 5대 명산에 든다.



천관산이 여느 억새 산과 다른 점은 또 있다. 다른 억새 산은 내륙 깊숙이 박혀 있지만, 천관산은 바다를 등지고 있다. 정상에 오르면 발 아래로 다도해 바다가 펼쳐진다. 날씨가 좋으면 멀리 제주도 한라산까지 보인다. 천관산 억새밭은 능선을 따라 130만㎡ 면적에 펼쳐져 있다. 천관산 억새를 보려면 새벽에 올라야 한다. 다도해 너머로 해가 떠오르면서 억새밭이 황금빛으로 변한다. 태양이 수평선에서 중천에 오르기까지, 억새 뒤덮인 산과 섬 촘촘한 바다가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한다.



천관산 오르는 길은 10가지가 넘지만, 억새밭을 만나려면 장천재에서 출발하는 것이 가장 좋다. 천관산의 기암괴석과 다도해를 두루 만끽할 수 있어 다른 탐방로보다 시간이 더 걸려도 눈이 즐겁다. 정상 연대봉까지 약 2시간30분이면 오를 수 있다. 환희대와 연대봉 사이 1㎞ 길이의 능선은 길과 바위 빼고 죄 억새다. 천관산 도립공원관리사무소 061-867-7075.



글=이석희·최승표 기자 seri1997@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중앙포토, 각 지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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