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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금요일] 반부패규범 확산에 쇠퇴하는 '뇌물 비지니스'

다국적 기업 입장에서 세계 2대 강국으로 성장한 중국은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공략은 쉽지 않다. 기업 간 경쟁은 치열하고 문화는 낯설다. 정부 공권력의 특권과 독점권은 강력하다. 접대와 선물이 만연하고, ‘꽌시(關係)’ 등 인맥이 여전히 기업의 생존을 좌우한다. 정공법만으로는 힘들다. 뇌물 같은 검은 거래가 ‘관행’이란 이름으로 기업을 파고 드는 이유다. 영국계 다국적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도 중국에서 검은 거래를 택했다. 2006년부터 회의 규모 등을 부풀려 빼돌린 돈을 정부 부처의 공직자와 의사ㆍ병원 직원, 의료 기관 등에 뇌물로 뿌렸다. ‘기름칠’ 덕에 약값도 인상하고, 판매처도 확보했다. 부패의 사슬은 오래가지 않았다. 2년 전부터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의 주도로 부패와의 전쟁에 돌입하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GSK도 철퇴를 맞았다. 지난달 19일 중국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시 중급인민법원은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GSK에 30억 위안(4억90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고, GSK 중국법인 대표와 임원 등에게는 징역 2~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중국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의 벌금이다. 뇌물과 관련해 다국적기업에 부과된 벌금 중에서도 세 번째로 많은 액수다.

다국적 기업의 해외 진출을 두고 ‘뇌물 비즈니스’라고 불렀다. 특히 개발도상국에 진출할 때는 더했다. 정당한 경쟁보다는 해당국 관료 등에게 주는 ‘급행료’가 효율적이었다. 뇌물 비즈니스는 다국적 기업에는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업 모델이 쇠퇴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반부패 규범’이 확산하면서 뇌물 비즈니스도 효력을 다하고 있다.

규제 당국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기업 입장에서 뇌물은 매력적인 카드다. 레드 테이프(Red Tapeㆍ관료 형식주의)가 만연한 곳에서 뇌물은 사업의 진행 속도를 높여준다. 사업권을 따내거나 허가ㆍ승인을 받아야 하는 경우‘기름칠’의 효과는 비용 대비 상당하다.‘와스타(Wasta) 문화’가 존재하는 중동 지역에 진출한 기업은 더하다. 아랍어로 인맥을 뜻하는 와스타는 영향력ㆍ수수료ㆍ뇌물 등을 포괄하는 상거래 문화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2014년 경제범죄 보고서’에 따르면 95개국의 기업 최고경영자(CEO) 5128명 중 53%가 뇌물이나 부패 관련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지역별로는 아프리카와 동유럽ㆍ중동에서 자원 개발과 인프라 건설 등에서 뇌물이 연루된 경우가 많았다. 뇌물을 달라는 요구를 받아본 CEO도 26%나 됐다. 뇌물을 제공하지 않아 경쟁업체에 졌다고 생각하는 CEO도 29%였다.

하지만 뇌물은 상거래의 기본 질서를 흐린다.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도 뇌물을 그대로 놔 두면 부정부패가 만연해지는데다 사회적 불평등도 확대돼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 때문에 개발도상국도 뇌물을 포함한 반부패 행위 규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 그 최전선에서 활용되는 법안이 미국이 1977년부터 도입한 해외부패방지법(FCPA)이다. 해외 관료에 대한 미국 기업의 뇌물 제공을 엄격히 금지한 이 법을 위반한 사람은 벌금은 물론 최장 20년형을 선고 받는다. FCPA가 탄생한 계기는 75년 ‘록히드 사건’이다. 미 상원 금융감시위원회 등이 미국 군수업체 록히드를 조사하다 일본 고위 공직자에게 뇌물을 건넨 사실을 포착했다. 조사 결과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가 전일본항공(ANA)에 록히드 항공기를 구입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대가로 마루베니 상사를 통해 5억 엔을 수뢰한 것이 확인됐다. 다나카 전 총리는 76년 체포됐다.

당시 금융감시위원장이던 윌리엄 프록스마이어 상원의원은 “록히드 사건이 미국 민주주의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며 해외 부패를 단속하는 FCPA의 제정을 추진했다. 『뇌물의 역사』의 저자인 존 누난은 “역사상 최초로 자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공직자에게 돈을 주는 행위도 뇌물죄로 단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뇌물단속법’이 제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부패 규제에 대한 파장은 컸다. 독일 지멘스도 4억6000만 유로의 비자금을 조성해 각종 인프라 사업을 발주한 아시아ㆍ아프리카ㆍ중동 등의 개발도상국 기업과 공공기관, 정치인에게 뇌물을 뿌린 사실이 적발돼 2008년 사상 최대의 벌금(8억 달러)을 물었다. 영국 군수업체 BAE 시스템스(5억7900만 달러)와 프랑스 정유업체 토탈(3억9800만 달러), 미국의 알루미늄업체 알코아(3억8400만 달러) 등이 최근 5년 동안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란ㆍ바레인 등 중동 국가에서 뇌물 사건에 연루돼 벌금을 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FCPA와 유사한 뇌물방지협약을 제정해 부패 척결에 나섰다. 회원국은 협약을 적용해 해외 뇌물 사건에 연루된 사람을 처벌한다. 한국에서도 2011년 첫 적용 사례가 나왔다. 이 해 5월 인천지검이 중국 국영항공사 지사장에게 뇌물을 제공한 국내 항공물류업체 대표 및 여행사 대표를 뇌물방지법 위반혐의로 기소했다. 캐나다는 다른 나라에서 뇌물 범죄에 연루된 기업에 대해서도 정부 물품 구매 계약 대상에서 제외한다. 캐나다는 최근 러시아 관리에게 뇌물을 줘 미국에서 제재받은 휴렛팩커드를 정부 물품 구매 대상에서 10년간 제외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비상이 걸린 다국적 기업은 전전긍긍이다. 돈을 주자니 ‘뇌물의 덫’에 걸릴 위험이 크다. 안 주자니 일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커졌다. ‘뇌물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세계적으로 강력한 반부패 단속이 지속하는 한 뇌물을 통한 검은 비즈니스는 쇠락할 운명이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인 최승재 변호사는“미국에 지사를 운영하는 국내 기업도 미국의 FCPA의 적용 대상이 되는 만큼 뇌물 등과 관련해 기업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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